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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께서 하신 일과 하지 않으시는 일>...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19 조회수492 추천수5 반대(0) 신고
 
 
 
 

<예수께서 하신 일과 하지 않으시는 일>... 윤경재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마태 12,15-21)



  이 대목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다섯 가지 사화의 말미를 장식합니다. 공관 복음서 저자들은 공생활 초기에 유대인들과 갈등한 예화를 똑같이 거론했습니다. 그 갈등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오해 속에 활동하셨는지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 상과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자 했던 메시아 상이 너무나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갈등의 결과를 예상하시고 물러나시되,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이렇게 비밀을 지키라는 엄명은 마르코 복음서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특히 1901년 신학자 브레데(W. Wrede)의 저서 ‘메시아의 비밀’이 출간 된 이후 마르코 복음서 저자의 본래 의도가 밝혀졌습니다.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역사적 예수를 사실적으로 서술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만연하던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해결할 방법으로 메시아의 비밀이라는 신학적 방법을 창안했다는 점입니다.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예수께서 메시아로서의 자기 정체를 의도적으로 숨겼으며,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정체와 그 의도를 몰랐다고 기술합니다. 모든 비밀은 수난과 영광이 드러난 이후에야 올바로 판명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사람들이 제대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브레데의 저서가 나오기 이전에는 마르코 복음서가 예수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책으로 여겼으며 복음서 연구를 통하면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브레데 연구 이후 역사적 예수를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그 이후 신학자들은 복음서 연구 방향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으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각 복음서 저자들이 의도한 신학적 입장과 사상을 밝히는 쪽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마태오 저자가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엄명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아보면 그의 신학적 의도를 엿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저자는 예수님을 구약에서 예언된 인물로 묘사하는 데 복음서 기술의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 곳곳에 구약 대목을 인용해서 보충 설명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복음서를 모세 오경과 비슷한 구조로 엮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섯 개의 담화문과 그 실례를 모아 놓은 구조가 바로 오경을 본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 저자는 다섯 개의 갈등 사화와 예수님의 처신이 구약 이사야 예언서에 이미 예언된 내용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많은 일을 하셨으나, ‘~을 하지 않으실 분’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이 대목은 이사야 예언서 ‘야훼의 종의 노래’ 네 편 중에서 종이 하지 않을 행동을 발췌해 인용한 것인데 히브리 원문도 아니고 70인 역본에서 가져오지도 않았습니다. 마태오 공동체가 읽던 성경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즉 마태오 공동체는 예수야말로 구약에서 예언된 “오실 분”이라는 사상을 굳게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럼으로써 예수께서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정된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과 희망을 주시는 참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오 복음서에서 기록된 다섯 개의 논쟁 사화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러 이 세상에 오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논쟁하는 대상이 바리사이만이 아니라 요한의 제자와 일반 백성까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는 대목에서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이라고 반응합니다.


  마태오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당신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는 것이오?”라는 비난을 듣자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단식 논쟁 대목에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라고 하시며 당신의 신원을 언뜻 드러내 보이십니다.


  제자들이 안식일 밀을 뜯는 대목에서는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하고 비난하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도저히 그들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병자를 고치시는 대목에서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민중마저 들고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을 잡아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니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떤 일들을 하셨고 어떤 일들을 하지 않으셨는지 언급하는 마태오 저자의 신학 사상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구약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점입니다.




어지신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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