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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 15일 연중 제11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15 조회수719 추천수6 반대(0) 신고
 

6월 15일 연중 제11주일 - 마태오. 9,36-10,8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파견하셨다.”


<사목직의 본질은 '측은지심'>


   어느 이른 아침, 한 아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언젠가 이곳에서 잠시 살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아이 몰골을 보니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했습니다. 우산도 없이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걸어온 것입니다. 제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옷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바람이 불어 날씨도 꽤 쌀쌀한데 반소매, 반바지 차림이었고, 추위에 입술이 새파랬습니다. 누구에게 얻어터졌는지 얼굴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지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누구하고 싸웠냐? 언제 집에서 나왔냐?" 등등 물어볼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아이 몰골을 보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2층으로 뛰어올라가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았더니 우물쭈물했습니다. 큰 대접에 우유를 잔뜩 붓고 콘프레이크를 가득 채워 주었지요.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습니다. 한 그릇, 또 한 그릇, 모두 네 그릇을 순식간에 먹어치웠습니다. 아마도 며칠은 족히 굶은 듯했습니다.


   그제야 아이 얼굴을 마주보고 제가 물었습니다.


   "집에서 엄마와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여긴 웬일이냐?"


   아이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신부님 보고 싶어서요."


   우산도 없이 장대비를 온 몸에 철철 맞으며 저희 집에 들어 선 아이, 옷이 비에 흠뻑 젖어 떨고 서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솔직히 반가움보다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음에 화도 났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드는 마음은 '짠한' 마음, 측은지심이었습니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 처지를 눈여겨보신 예수님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여 쉴 새도 없이 침략당하고, 끌려가고, 농락당하는 당신 백성의 처량한 모습에 예수님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자 없이 우왕좌왕하고 갖은 사악한 세력들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죽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던 동족의 모습,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윌 대로 야윈 양떼의 몰골에 예수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결국 사목직의 본질은 '측은지심'입니다. 방황하는 양떼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 어떻게 해서든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양떼를 생명의 길로 돌아서게 하고픈 목자 마음이 사목직의 핵심입니다.


   양떼들이 비록 불순종하더라도 불충실하더라도, 배반과 타락의 길을 걸어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큰마음으로, 측은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마음이 진정한 사목자의 마음이겠습니다.


   오늘도 이 시대 길 잃고 헤매는 양들-재소자들, 길거리 청소년들, 노숙자들, 에이즈 환자들, 환락가 사람들-의 고통 앞에 함께 눈물 흘리며, 그들 구원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계시는 사목자들을 주님께서 축복해주시고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업,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가련한 인간들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 측은지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측은지심은 덕 중의 덕입니다. 예수님의 측은지심으로 인해 부족한 우리가 구원됩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덕 역시 측은지심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영육간의 고통들, 영육간의 배고픔과 목마름, 좌절과 한계, 너무도 무거운 십자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십니다. 하루 온종일, 당신 백성을 향한 구원사업에 매진하십니다. 밀물처럼 다가오는 그 많은 사람들을 단 한명도 물리치지 않으시고 대면하십니다. 그들 고통 앞에 함께 눈물 흘리시고 잘 해결되도록 아버지께 간절히 청하십니다.


   당신 혼자 힘으로는 중과부적임을 절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업의 협조자로 열두 사도들을 뽑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께서 소유하셨던 능력과 자질을 똑같이 부여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우리 협조를 강력히 요청하고 계심을 저는 강하게 느낍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가 주님의 두 손이 돼드리고, 두 발이 돼드리는 날들이 되길 빕니다. 주님의 목소리가 되어드리고, 주님 기적의 능력이 돼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가진 바를 기꺼이 내놓고 나누는 한 주간이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461번 / 나는 주님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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