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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명쾌하고 분명한 의사 소통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14 조회수770 추천수12 반대(0) 신고

 

 

 

 복음: 마태 5,33-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대강 알 수 있고

끄덕끄덕하는 고개짓이나 박수를 통해서, 내 말에 동의를 하는 지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명확한 것은 아무래도 그 사람의 말이나 글이다.

단순히 동감이나 반대, 好, 不好를 표명하는 몸짓과 표정과는 달리

언어를 통해서는 그 사람의 속 깊은 생각을 들을 수 있고,

나와는 다른 의견까지 청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과 글이 주는 파급효과는 그 사람의 깊은 속에서 나와,

듣는 이, 읽는 이의 깊은 속내까지 침투하고, 크게 파장을 일으키며 두고두고 기억나게 한다.

 

그러니 말이, 글이 얼마나 중요한가?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분명하고 명쾌하게 말하라 하신다.

 

생각해보면, "예, 아니오."가 분명할 때는 아직 철 모르는 아이 적일 때였던 것 같다.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할 때가 많다.

 

"엄마랑 아빠랑 누가 더 좋으니?"하고 묻는 생각없는 친척들에게

"아빠가 더 좋아." 했다가 당장 엄마의 핀잔을 들었던 기분 나쁜 기억이 있다.

아니, 별 생각없이 한 말 한마디로 두고두고 후회했던 일이나, 

또 대수롭지 않은 말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일이 반복되면서

섣불리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체득해 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의 생각만 봐도,

젊은 날엔 강력하게 '아니오" 했던 것들이, 점차 "예"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러니 나이가 먹어갈 수록 점점 더 말 한마디의 무게를 실감하며 조심스러워진다.

 

그런 우리를 보고 오늘 예수님은 예, 아니오의 입장 표명을 분명하게 하라고 명하신다.

분명하게 말했다가 이제껏 수없이 손해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씀에 선뜻 "예! 알겠습니다" 하는 대답이 나오질 않을 것같다.

 

 

 그런데 여기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긍정, 또는 부정은,

자기를 기준으로한 "好, 不好"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 바로 위에는 하느님께 대한 맹세, 하느님께 대한 서약을 거론하고 있다.

하느님께 속하는 거룩한 것들을 자신을 위한 어떤 수단으로 만들지 말라는 경고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아래 말을 파악한다면,

거룩한 것들을 자기 주장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 생각 만으로 긍정과 부정의 의견을 밝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 말씀을 이리저리 뜯어내어 자기만의 억지 주장을 퍼뜨리는 일.

교회의 가르침을 이용하여 자기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일.

교부들의 좋은 말씀을 뜯어다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에 쓰는 일 따위는,

얼핏 보면 그럴 듯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말씀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종교나 교회, 또 신앙에 대한 이야기만 말하고 있을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흔한 이야기다.

 

분명하게 자기의 의견이나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말끝을 흐리는 사람.

말끝을 흐릴 뿐 아니라 수상한 수사(隨辭)나 조사(助辭)를 붙여 어중간한 태도를 나타내는 사람.

그 교묘한 점 하나, 조사 하나가 교묘한 분열을 조장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사랑, 정의, 평화'라는 거룩한 것을 자주 들먹인다.

하느님, 교회, 제단, 성경을 팔아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는 것만큼이나 악한 짓이 아닌가.

 

작곡가는 악보에 찍은 한개의 숨표나 쉼표 안에도 무수한 말을 담는다.

그처럼 사람의 침묵 속에도 무수한 말들이 들어있다.

꼭 필요한 침묵, 생각 깊은 침묵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은 수동적인 공격을 위해서도 침묵한다.

 

그러니까 문제는 말이나 침묵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원이 선이냐? 악이냐?

그것이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한 길 물 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열 길을 꿰뚫을 눈이 없기에 사람의 속은 사람이 모른다.

하지만, 우리 머리카락 수까지 알고 계시는 하느님과 자신 만은 알리라.

 

그런데 자기 자신도 이따금씩 자기 기만에 속을 때가 있다.

내 자신도 내 자신이 속일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악이 선에서 나오는 줄 본인도 깜빡 속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한 긍정과 부정이 먼저가 아니라,

내 말과 글, 또는 침묵이 지금 선악의 샘,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지 먼저 거짓없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즉 "예" 라는 선의 샘에서 나오는지, "아니오"라는 악의 샘에서 나오는지,

그것부터 명쾌하고 분명하게 양심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 언어의 기원이 선에서 나올 때, 비록 서로의 입장은 달라도 이해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악에서 나올 때, 의사 소통은 막히고 영원히 합치점을 찾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수단으로만 삼으려는 악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종일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들.

핸드폰이란 괴물을 늘 손에 들고 다니며 알게 모르게 언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

 예전보다 더 많은 말, 더 많은 글(문자)을 주고 받고 산다.

잠시도 말이나 글을 주고 받지 않으면 불안한 시대다.

 

 

그럴수록 내가 종일 쏟아놓는 언어들이 악에서 기원하는지, 선에서 기원하는지

순간순간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 할 것은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하고,

"아니오!" 할 것은 누가 뭐래도 아니오 라고 명쾌하게 말하는 멋진 신앙인이 되고 싶다.

 

 

 
Into The Light - Fukada Ky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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