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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05 조회수1,024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6월 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The first is th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Lord alone!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Mk.29-31)
 
 
제1독서 티모테오 2서 2,8-15
복음 마르코 12,28ㄱㄷ-34
 
 
점점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서 위기감을 느낀 악마들이 회의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무능하게 만드는 법을 토의하기 시작했지요. 이에 악마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의견들을 말합니다.

“몸을 꼼짝도 하지 못할 중병을 주는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도록 해서 절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의견이 악마들의 마음에 딱 맞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중병이나 실패를 통해서 오히려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중 어떤 악마가 벌떡 일어나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모든 인간들 마음에 미루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내일 하자, 천천히 하자!’ 이렇게 미루는 마음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정말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중병이나 실패는 오히려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미루는 마음들은 하느님과 점점 멀어지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하느님은 과거의 하느님도 또한 미래의 하느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재의 하느님으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과거에 연연하고 있고, 미래만을 걱정하면서 과거와 미래에만 머물러 있으니, 현재라는 시간에 계시는 하느님을 과연 어떻게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미루는 마음이 아닌, 지금 당장 실천하는 마음을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들은 ‘지금 당장 여기에’ 이루어져야 할 것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 이것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사랑의 계명이야 말로 모든 계명 가운데 으뜸가는 계명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사랑의 계명은 과거에 한번 행한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또한 앞으로 할 것이라는 계획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실천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행한 사랑을 자랑스럽게 말하기를 좋아하고, 또 앞으로 행할 사랑만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행해야 할 사랑을 소홀히 하고 있는지요?

지금 당장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이 말을 직접 듣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할 일을 미루지 마십시오.




정직이 바꾼 판정(‘좋은생각’ 중에서)

미국 플로리다 주 신문에 실렸던 이야기다.

그날 야구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선수는 겨우 일곱 살이었다. 경기 중에 1루수였던 태너는 땅볼을 잡아 2루로 달리던 주자를 태그 했고 심판 벤슨은 주자가 아웃이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태너는 심판에게 자기가 주자를 태그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심판은 판정을 번복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 태너 팀의 감독은 그 경기에서 사용한 공을 정직에 대한 상으로 어린 태너에게 주었다.

2주 후 다른 경기에서 태너는 유격수로 뛰었는데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경기에서도 심판을 보던 벤슨은 이번에는 주자가 세이프라고 선언했다. 갑자기 굳어진 태너의 표정은 ‘판정이 틀렸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너 주자를 태그 했니?” 벤슨이 물었다. “예.” 상대팀 감독이 항의했지만 벤슨은 결국 판정을 번복했다. 이전 상황에서 태너가 정직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심판은 이번에도 태너를 믿고 그의 정당함을 인정해 준 것이다.

태너는 정직함 덕분에 심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항의하는 상대팀 감독에게 심판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렇게 정직한 아이가 있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아이를 믿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진실에 대한 확신 오랫동안 그를 지켜 준다. 그것이 바로 신뢰이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오늘의 신뢰를 악용하기 때문에 내일의 신뢰마저 상실한다. 하지만 끝까지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Mk.12.24)
 
 

이별보다 슬픈 - Ma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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