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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바오로 사도는 어떤 분이셨는가?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10 조회수591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 바오로 사도 탄생 2000년 주년

           -바오로 해-

 (2008년 6월 28일 ~ 2009년 6월 29일)


1) ‘바오로 해’를 지내는 목적.

바오로 사도의 정신과 영성을 깊이 알고

바오로 사도를 본받아,

신앙 안에서 성 가정을 이루어 모범적 삶을 살고

선교활동에 열성적인 사람들이 되어,

이웃가정에 전파하여 본당 공동체가 활성화되도록 하자는 것.


2) 취지.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이방인의 사도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여

‘바오로 해’를 선포하셨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바오로 사도의 선교정신에 따라

인류복음화에 노력하는 뜻 깊은 기획을 마련한 것임.


3) ‘바오로 해’ 기본 실천 방향.

① 새 가족 찾기  - 선교 교육.

② 우리가족 찾기 - 쉬는 교우 찾기 운동.

③ 사도 바오로의 서간 읽고 묵상하기.

④ 해외 선교 - 선교사제 양성.

⑤ 신학생 선교 교육 - 바오로에 관한 신학적 연구.

⑥ 교리교사교육 -교구 선교사 교육 강화


4) 성 바오로 사도의 생애와 선교여행.

ᄀ) 바오로 사도의 생애

① 출생과 성장

바오로 사도는 킬리키아 수도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의하면 바오로가 예수님보다 10여 년 늦게 출생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바오로는 서기 5년~10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다 식 이름은 사울이며,

로마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로마식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출생지의 언어인 당시 공용어인 희랍어에 능통하였으므로

그로 하여금 희랍과 로마 지역의 선교사로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어려서부터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도록 철저히 교육받았으며,

바리사이파에 가입하했고, 천막을 만드는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선교 활동에 임했다고 한다.


② 회심.

신약성경에는 스테파노의 순교 후 바오로가 처음 등장한다.

그 당시 바리사이로서 바오로는 율법을 구원의 방편으로 여겼으며

다혈질적 유다 인으로서 앞장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였다.


33년경 다마스쿠스 교회를 박해하러가던 도중 바오로는 빛과 함께

들려 온 예수님의 목소리를 통해 예수님을 체험한 후 그리스도인으로

돌변한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삶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자신의 회심을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보고 예언자적 소명으로 여기게 된다.


이후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선교활동을 시작한다.

36년경에는 예루살렘의 두 지도자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후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선교하였고, 안티오키아에서 유다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에게도 전교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의 교회를 창립하였다.


바오로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지중해 동부 지역으로 광범위한 여행을

하게 되는데, 이때 안티오키아를 거점으로 삼았으며, 예수를 섬기는

안티오키아 시민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렀다.


ㄴ) 바오로의 선교 여행.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도가 된 바오로는 안티오키아를 이방인 선교의 발판으로

삼아 자신을 온전히 선교열정에 투신하였다. 바오로는 아시아 현재 터키의 일부,

시리아와 유럽,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지금의 요르단과 예루살렘

으로 가는 모든 길 전체를 여행했다.


① 제 1차 선교 여행(AD. 45년~49년경 -사도 13-14장)

키프로스에서 그리고 남쪽에서는 안티오키아로부터 아나톨리의 남쪽 등을

여행하면서 바오로 사도는 같은 민족인 유다인들에게 선교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선교의 역량을 집중하였다.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는 여러 곳에 공동체를 건립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면서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부활과 기쁜 소식을 설교하며 선교하였다. 1차 선교 여행을

끝내고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교회역사상 첫 공의회인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하였다.

(사도 15, 1-21)


② 제 2차 선교 여행(AD. 50~52년경 - 사도 15, 36-18, 22)

바오로가 2차 선교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바오로가 유럽에 첫발을 디뎠다는 것이다.

실리스와 티모테오와 함께 한 두 번째 여행은 그리스 트로아스에서 다다넬스 해류까지,

그리고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 아테네와 코린토까지 유럽지역을 광범위하게

선교하였다. 


특히 필리피 공동체는 바오로에게 선교와 생계를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한다.

필리피에서는 감옥에 갇혔다 풀려나기도 하였고, 코린토에서는 고발까지 당하면서

선교의 열정을 불태우고 그의 선교 거점인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③ 제 3차 선교 여행(AD.50~52년경 - 사도 18, 23-21,16)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와 티토와 함께 아나톨리와 그리스에서 만든 교회를

다시 방문했다. 이 3차 선교 여행의 중심은 27개월 동안 머문 에페소 공동체였다.

이곳에서 많은 위험을 경험했고, 고통 속에서 감옥에 갇혀 있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때에 여러 서간을 집필하는 은총의 시기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 에페소 공동체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신앙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선교 여행은 바오로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끝나게 된다.


④ 로마 여행.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칠 즈음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오로는 유다인과

로마 총독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고 로마로 호송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집을 찾아 방문하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며, 복음전파자

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네로 황제 치하에서 67년 경 로마 대화재 사건

중 참수하여  순교하였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행은 언제나 고난과 위험, 생명의 위협까지 늘 동반되었으나,

바오로 사도는 그때마다 선교의 열정과 지혜로서 벗어났으며,

항상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였으며, 우리의 주님이시다’라는

기쁜 소식을 힘차게 전하였다.


또한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통해 이방인 그리스도 신자들의 신앙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행으로 그리스도교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ㄷ) 집필한 서간.(기원 후 53년 ~ 58년)

① 갈라티아서             ⑥ 로마 서.               ⑪ 티토 서.                    

② 코린토 1서.            ⑦ 콜로새 서.

③ 필리피 서.              ⑧ 테살로니카 1서.

④ 필레몬 서.              ⑨ 테살로니카 2서.

⑤ 코린토 2서.            ⑩ 티모테오 1, 2 서.


                              수원 교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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