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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찬미와 감사의 삶" - 2.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1 조회수451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 2.1 연중 제4주일                                          
신명18,15-20 1코린7,32-35 마르1,21ㄴ-28

                                                       
 
 
 
 
"찬미와 감사의 삶"
 


주일은 주님의 날이자 찬미의 날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주일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입니다.

하여 우리 수도자들이 바친 주일의 아침기도는
온통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찬미와 감사로 지내는
하루이자 일주간이요 평생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참 좋은 최고의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뿐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께서 지어낸 만물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알렐루야.”

“숨 쉬는 것 모두다, 주님을 찬미하라. 알렐루야.”

아침기도 시
우리 수사님들이 힘차게 노래 불렀던 세 후렴들입니다.

찬미의 종교가 우리 그리스도교요,
찬미의 사람이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위해
이 거룩한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긍정적이며 낙관적 인생을 살게 합니다.

영육이 하나로 통합된 전인으로 살게 합니다.
 
찬미의 기쁨이며 찬미의 행복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삶과 더불어 저절로 따라오는 영육의 건강입니다.
 
하여 저는 고백성사 시
다음 바오로의 말씀을 가장 많이 처방전의 보속 말씀으로 드립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상황이 좋든 나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기도하며, 감사하며 살 때
하느님의 축복이요 앞길이 열립니다.
 
혼인을 했든 혼인을 하지 안 했든 상관없습니다.
 
바오로의 말씀처럼 혼인했다 하여
꼭 세상일을 걱정하여 마음이 갈라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혼인했어도
부부가 함께 찬미와 감사의 삶에 전념하면
주님의 일을 걱정하게 되고 마음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독신이냐 결혼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찬미와 감사의 삶이냐 아니냐가 문제입니다.
 
함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수도공동체나 부부공동체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공동체 대부분의 문제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 중에 주님 안에서 저절로 해결되거나 해소됩니다.


걱정도 두려움도 불안도 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더욱 복잡해지는 삶입니다.

본질의 진실함과 단순함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분열된 마음을 치유하여 온전한 전인으로 만들어주는 게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익부빈익빈의 진리입니다.
 
찬미와 감사로 기초부터 차근차근히 믿음을 축적해나가면
언젠가 영적부자가 됩니다.
서두르지 않고 항구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독서 신명기의 모세가 말씀한 예언자는 바로 우리 주님을 가리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어 모세는 자신의 말에 이어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이
그렇게도 권위가 있고 능력이 넘쳤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널려있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의 거짓 예언자들을 찾아 나설게 아니라
이런 권위 있는 주님을 찾아 나서 만나야 치유의 구원입니다.
 
이래서 주일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복음의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
주님을 떠난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갈린 마음 사이로 들어오는
온갖 세속의 더러움으로 오염된 생각이요 마음이요 영혼이요 몸들입니다.
 
바로 이래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이야기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그대로 오늘날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더러운 영이 들린 이들이 상징하는바
갖가지 정신 분열이나 우울증 등 온갖 정신질환들입니다

죄와 사람을,
더러운 영과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 없습니다.

주님의 빛나는 현존에 도저히 숨어있을 수 없자
뛰쳐나와 소리치는 어둠의 세력 더러운 영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보다 주님의 정체를 잘 아는 더러운 영들이요,
더러운 영의 정체를 잘 아는 주님이십니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주님을 속일 수는 없으며,
사람의 눈을 피할 수는 있어도 주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합니다.
 
태양 빛 앞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밤의 어둠처럼,
주님의 현존의 빛 앞에 자취 없이 사라진 더러운 영들입니다.
 
회당 안에 있던 이들의 반응에 그대로 공감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 구나.”

정작 필요한 건 권력이 아니라
이런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권위요
이런 권위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권위 앞에는 누구나 기꺼이 승복합니다.
 
바로 이런 권위에, 권위 있는 지도자에 목마른 현대인들입니다.
 
이런 권위의 빛이 사라질 때 어김없이 스며드는 더러운 영들입니다.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쫓겨난 더러운 영들은
어디선가 호시탐탐 하느님을 떠나
어둠 속에 있는 이들 안으로 들어갈 길을 노려보고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찬미와 감사로
하느님 중심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늘 찬미와 감사로 주님의 현존의 빛 앞에 사는 것이요
갈림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몸 약해도, 병 있어도 살 수 있지만
마음이 갈리면 참 살기가 힘듭니다.
 
갈린 마음 사이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무질서와 혼란의 어둠이요,
온갖 유혹에 질병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치유해주신 똑같은 주님은
오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권위 있는 말씀으로 우리 안의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시고
당신 성체로 우리와 하나 되심으로
우리의 분열된 영육을 온전히 치유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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