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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02) 100회 특집에 관한 시련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9 조회수450 추천수0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930         작성일    2004-04-27 오전 10:13:26 
 
 
 

2004년4월27일 부활 제3주일 화요일 ㅡ사도행전7,51-8,1;요한6,30-35ㅡ

 

      (102) 100회 특집에 관한 시련

                                                    이순의

            

ㅡ성찰ㅡ

사노라면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내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이 진정으로

합당한 일인지 또는 신께서 원하시는 일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언제나 답이 없

으신 분은 그분이시지만 주님의 소리를 응답해야 하는 몫은 항상 나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무엇의 정체가 나의 사사로움에서 기

인한 이기심에 뿌리를 두었는지 아니면 공공의 질서에 해로움은 끼치지 않을 여력이

되는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고 여러 날을 냉정해 지려고 무척 노력하면서 고민한다.

처음 묵상 글을 쓰기 시작 할 때는 별스런 목표점이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냥 써 보

다가 하루하루 횟수가 많아지면서 번호를 붙여 보았고 번호가 높아지면서 스스로에

게 기대감이 커 갔다. 내가 100회를 쓰게 된다면 예수님께 팡파르를 울려 드리고 싶었

다. 글도 자축의 글을 쓰고 싶어서 첫 구절을 뭐라고 근사하게 시작할지에 대하여  혼

자 웃곤 하였다. 그리고 100회가 가까워 졌다.

 

고무된 희극을 간드러지게 쓰고 싶었는데....... 그만 99회째에는 묵고 묵어서 곰삭은

묵상 글에 진국을 실어서 짜느라고 탈진을 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여러 날 동안 꼼

짝도 하기 싫었다. 아니 혼을 실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생각만 100회가 눈앞에서 어

른거릴 뿐 도저히 영상이 떠오르지 않는 백지상태로 누워 뒹굴고 말았다. 아무 생각

이 없어져 버렸다. 생각을 하려고 해도 생각이 없었다.

여러 날 동안 시간이 가고 아무런 생각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100회 특집이라는 구체

적인 대안도 없이 글을 썼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팡파르로 시작하겠다는 여흥은 간

데없이 평소처럼 조용히 한 줄 한 줄을 열심히 써 내려갔다. 몇 시간은 족히 숨도 안 쉬

고 열심히 썼다. 거의 마감을 지으려고 커서를 올려 보니 평소보다도 많은 양의 글이

완성되고 있었다. 손가락이 불편해서 멍먹한 아픔이 느껴졌다. 끝마무리를 하기에도

충분한 내용이어서 다시 커서를 제 위치로 옮기고 마무리 작업을 막 끝냈다.

그런데 순간에 쪽지 하나가 깜박거리다가 사라지더니 곧바로 "작업 중이신 모든 내용

 

이 삭제됩니다."라는 작은 네모가 떴다.

여러 번 경험을 해 보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떤 조치도 불가능한 나의 한계를 알고

있었으므로 숨통이 막혀버렸다. 저절로 아들이 원망스럽다 못해 때려주고 싶었다. 그

렇게 부탁을 했었다. 컴퓨터를 같이 사용하니까 본인이 사용하지 않을 때는 모든 창을

닫아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었다. 그런데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서 컴퓨터를 켜면

아들의 모든 쪽지가 전달되도록 되어있다. 심지어 게임의 무슨 병기나 무기를 구한다

는 내용까지 떠서 깜박거리다가 써 놓은 모든 글을 삼키고 사라져 버린다.

늘 생각했었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분명히 써 놓은 글을 구하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

고 M사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했다. 신기하게도 내 컴퓨터의 모든 작동을 상대편에

서 해결하고 있었다. 이것저것이 떴다가 사라지고 다시 불러져 오고........

그러나 사라진 글을 복구하지 못한 것 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져 버렸다. 내 컴퓨

터에 내장된 모든 기억장치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컴퓨터의 전원조차도 켜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멍청멍청이가 되어버렸다. 결국은 아들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컴퓨

터 작동이 익숙한 사람을 필요로 할 때까지 보류하기로 하고 말았다.

글이 사라진 이유보다 아들에게 혼이 날거라는 걱정이 나를 더 화가 나게 했다. 글은

내가 썼지만 원인은 아들이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혼자서 점령한 탓인데 꾸지

람을 들어야 하는 몫은 또 엄마의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몹시 화가 나게 했다. 혼자 속

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모든 해결

사인 컴퓨터! 내가 쓰는 모든 것을 기억해 주고 도와주는 해결사가 바보 멍텅구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공연한 짜증만 늘어나게 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들이 오고 화를 낼 틈도 없이 M사의 기술진과 협의해서 치료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

었다. 그러나 켜고 꺼지는 일은 가능해 졌지만 컴퓨터 안의 모든 내장된 기억은 사라져

버려 포멧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끄고 아들의 신경질이 시작 되었다.

시험기간에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이런 일로 시간을 뺏어먹는 사람이 엄마가 맞느냐

고 화를 냈다. 너의 작은 배려가 부족해서라고 반문을 했지만 엄마가 글을 안 쓰면 된

다고 윽박질렀다. 아들의 극단적인 결단이 내려졌다.

"중간고사 시험이 끝날 때까지 컴퓨터 고치지 마세요."

내 생각은 그렇게 많은 양의 글이 사라져버린 이유가 아들의 이기심 탓인 거 같은데

아들의 생각은 엄마가 글을 써서 컴퓨터가 바보등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죄인으로 더

이상의 꾸지람을 듣고 싶지 않아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그런 날에는 예전 같으면 성

당에 가서 앉았다가 오는데 지금은 딱히 갈 데가 없어서 pc방에 앉아 있다. 인터넷의

여기저기를 들릴 줄도 모른다. 마냥 가톨릭에서 머물다가 말거나 오지도 않고 보내주

는 사람도 별로 없는 편지창만 열었다 닫았다 하거나 그냥 멍청히 앉아 있다가 돌아

온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 메신저에 유일하게 올라있는 분의 창이 열려서 반가웠다. 문을 두

드리니 응답을 해 주었고 컴퓨터를 고장 내서 아들한테 혼나고 도피중인 하소연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엄청난 양의 글을 상실한 속상함과 글을 그만 쓰라는 경고 같다는 무

능함의 한계도 모두 털어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그런 말을 했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하여도 약해 보이지 않고 큰 산처럼 보인다는 격려와 100회를 보러 오시겠다

는 말씀을 하셨다. 밤이 늦어서 잠깐만 대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컴퓨터를 고치지도 말고 글도 쓰지 말라는 아들의 명령에 기가 꺾

여버린 나에게 그분의 말씀이 용기가 되는 밤을 보냈다. 낮에 썼던 내용들을 다시 생각

해 보느라고 새벽이 트는지도 몰랐다. 이런 장애를 딛고 꼭 글을 써야 하는지 갈등하

느라고 아침이 오시는지도 몰랐다. 모닝콜 소리와 함께 아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늦

은(?) 잠을 잤다. 내가 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다시 100회를 쓰고 싶으면 pc방에 가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라도 묵상 글을 쓸 것이고, 아니면 그만 쓰라는 것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100회를 썼다.

 

어디엔가 어느 곳엔가 내 마음을 열어 보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벌써 100번을 내 스

스로에게 마음을 열어 보였다는 사실이 하늘을 우러러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었다.

시작을 <100회를 축하합니다.>라고 자축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99회에 <사

제의 자리는!>을 쓰고 지처서 아무런 여력이 동하지 않더니 생각지도 않은 100회를

올리게 되었다. 그 완성과 뜻이 아버지의 너그러운 배려였다는 사실에 만족이었다. 그

날 밤에 pc방을 찾아 쉽게 연결 되지 않는 그분을 만나 용기를 돋우어 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나의 망설임은 어제도 오늘도 나의 행함이 주님의 뜻에 어긋남이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 응답은 나의 몫이며 주님은 또 너그러운 침묵이라

는 그릇에 모든 것을 담아내신다.

사람이 사노라면 많은 생각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 안의 부족한 한계를 극복하

기 힘들어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시계가 멈추지 않는 것처럼, 하루가 쉬지 않고 내일을

맞이하듯이,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듯이, 내 모든

일상의 순간들은 신의 몫으로 채워지고 있다. 단지 나는 그런 신의 침묵을 헤아리지

못 하는 한계적인 근성을 극복하지 못해 고민하고 돌아서고 주저하는 나약함의 주인

이다. 그러나 그 나약함 조차도 완성에 이르도록 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

보잘 것도 없고 느낄 것도 없는 사사로운 발견들을 나열 하면서 그 안에 존재하시는

능력의 소유자는 언제나 주님 한 분의 웅변이라는 믿음을 확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님의 깊은 침묵은 내가 쓰는 어떠한 글 보다 더 큰 열변으로 마음과 마음들을 소유

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그분 곁에서 떠나지 못하는 절대적인 신앙의 본질이다.

나에게는 지금도 뚜렷한 목표점이 없다. 지금 이 한 순간에도 무력한 나의 한계를 주

님께 의존하는 것 이상의 어떠한 대안도 없다. 그것이 나의 힘이다.ㅡ아멘ㅡ

 

ㅡ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

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6,35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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