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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지니는 사람들 [하느님의 가난]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7 조회수448 추천수0 반대(0) 신고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요한복음서 20, 6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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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에 이르러서 예수님의 빈무덤의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어리둥절한 슬픈 목소리가 마치 우리들의 마음과 같아 보이면서 우리들의 심장을 벅차게 만듭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성탄의 신비가 우리의 가슴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파스카의 신비는 예수님 강생의 신비와 함께 마음을 가득채웁니다.

'한처음 말씀이 계셨습니다. 말씀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이 말씀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또 '말씀'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피에 젖은 옷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죽음을 겪으시다 마침내 부활로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드러내셨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 자기 안에 탄생하시고 저마다 자신의 삶으로 말씀의 육화로 성취되어져가면 그 끝자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게 되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절로 겸허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세상이 말씀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분, 예수님 때문에 말씀을 받은 사람들도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참으로 지금의 세상도 마찬가지로써 말씀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지금 세대도 말씀을 피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말씀 보다는 온갖 거짓된 메세지와 그것을 근거로 설명하는 강의와 책, 이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예수님께서 먼저 마굿간의 구유 안에서 가난하게 오시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면서 마침내 십자가에서도 가난하게 죽으셨습니다. "가난에서 하늘의 영광이 드러난다"(교리서 525 참조)에서 처럼 말씀과 결합한 이들은 가난을 선택하여 '말씀'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지니는 사람은 예수님의 생명도 몸에 지닙니다. <2코린토서 4, 10 참조> 이는 '십자가 인간'을 의미하고 있는 바,  우리는 말씀을 받은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인 십자가를 자기 몸에 지고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사랑으로 '빈자의 삶'을 살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리서> '말씀’께서는 인간 마음의 자발적인 겸손과 포기를 ‘마음의 가난’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2코린 8,9)라고 말할 때, 하느님의 가난을 우리에게 본보기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교리서 786> 교회는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습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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