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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위일체 하느님" - 2008.5.18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8 조회수527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5.18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탈출34,4ㄱㄷ-6.8-9 2코린13,11-13 요한3,16-18

                                                          
 
 
 
"삼위일체 하느님"
 


하느님 사랑을 기리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당신을 온 천하에 환히 드러낸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바로 이게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온 누리에 가득한 하느님의 영광이요 사랑입니다.
공기를 숨 쉬며 살 듯,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먹고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물속을 자유로이 노니는 물고기들처럼
하느님 사랑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공기를 떠나 살 수 없듯이,
물을 떠나 물고기들 살 수 없듯이
하느님 사랑을 떠나선 살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에 대한 자발적 응답이
우리 수도자들이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쁨으로,
행복으로 살아가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참 기쁨은, 참 행복은 오직 하나 하느님 찬미와 감사에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하늘을 훨훨 자유로이 날게 하는 영혼의 양 날개는
바로 찬미와 감사뿐입니다.

하느님은 개방이십니다.

사랑은 개방입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열게 마련입니다.
 
유일신 하느님에서 마침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자신을 활짝 개방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성부 하느님은 모세 앞을 지나가며 자신을 활짝 개방하십니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시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또 요한 사도는 성자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활짝 개방하신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신구약 성경의 결론과도 같은 복음 말씀입니다.
요한 사도의 체험적 진리의 고백입니다.

성자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으로 활짝 개방하신 하느님이십니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래서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느님 사랑하여 마음을 열어 개방할 때 개방의 하느님을 만납니다.
 
영적성장이란 끊임없는 개방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양 빛에 활짝 열리는 꽃잎들처럼,
성령의 빛 사랑에 우리 영혼 활짝 열려
하느님을 만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하느님은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이십니다.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면서 셋인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이십니다.
밖에서 보면 셋인데 안에서 보면 하나이고
밖에서 보면 하나인데 셋인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의 예가 적절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란 명칭은 모두 공동체의 관계 개념입니다.
완전히 고립 단절된 ‘혼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없이 태어난 아들들 있습니까?
아버지 없는 어머니도 없고, 어머니 없는 아버지도 없습니다.
 
어찌 보면 셋이면서 하나같기도 하고,
셋이면서 하나같기도 한 이게 바로 온전한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진정 살아있는 유기적 일치의 공동체입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이 공동체의 원형이자 모범임을 깨닫습니다.
 
공동체 안에 현존하신 하느님이시기에
공동체의 신비는 곧장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와 직결됩니다.
 
이런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여 알아갈수록 공동체의 일치도 견고해집니다.
하여 공동체 안에서의 하느님 체험이지
공동체를 떠난 하느님 체험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있다면 십중팔구 환상의 거짓 하느님 체험일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바오로를 통해
공동체 생활의 원리를 가르쳐주십니다.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 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 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말씀입니다.
이대로 살 때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도 공동체와 함께 하신다는
바오로의 말씀입니다.
 
애당초 성경은 개인의 수양서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책이었습니다.
그러니 교회공동체를 떠나선 성경의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합니다.
 
혼자 있으면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격려하며, 누구와 평화롭게 살겠습니까?
 
사랑하고 격려하고 평화롭게 살 형제들의 공동체가 없으면
복음을 살 길이 없습니다.
 
아니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무엇보다 큰 불행이자 비극이 공동체의 붕괴입니다.
가정공동체, 학교공동체의 붕괴입니다.
 
개인의 경쟁만 부추길 뿐
공동체의식의 함양 없이
비인간화를 부추기는 현재의 교육제도,
말 그대로 모래위에 집짓기 교육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공동체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는 현실입니다.
 
여기 수도원이 비록 작지만
많은 이들이 고향처럼 찾는 것도
함께 기도하고 일하는 수도가정공동생활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겸손하십니다.

1독서 탈출기에서 보디시피 친히 구름에 싸여 시나이 산에 내려오셔서
모세를 만나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또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주님이십니다.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신 겸손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늘 높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땅 낮은 곳에서 만나는 겸손한 하느님이십니다.

겸손해야 하느님 만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돌 판 두 개를 들고 시나이 산에 올라가 주님을 뵙자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간청하는 겸손한 모세입니다.
 
새삼 지도자의 으뜸 덕목은 겸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살 때
공동체의 평화요 주님을 만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 공동체 하느님, 개방의 하느님, 겸손의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삼위일체 하느님 고백보다 더 좋은 기도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좋은 기도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기도입니다.
 
바로 성호를 그으며 바치는 성호경과 영광송, 그리고 강복입니다.
 
하여 저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성호경과 영광송을 바치고
강복을 주는지 모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삼위일체 하느님을 우리의 방패로 삼는 기도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전 삶을 봉헌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대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우리의 전 존재가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각인되며
우리를 온전히 축복된 존재로 바꾸는 기도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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