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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변신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7 조회수589 추천수2 반대(0) 신고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누가 말을 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야고보 3: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마르코 9: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예수님의 변신)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마르코 9:9).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 ; 그리스어로 Origenes라고 함, 185-254)은 성서학자로 예수님의 변모가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변모하실 때 당신의 얼굴도 태양처럼 빛나시면서 빛의 어린이들에게 나타나셔서 어둠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빛의 갑옷을 입히시어 더 이상 어둠이나 밤의 어린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낮의 아들이 되게 하시어, 대낮 속에서와 같이 정직하게 걷게 하셨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어린이들에게 단순히 태양으로서 빛을 비추시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의 태양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주님께서는 부활 후 엠마오로 가시는 길에서도 변모된 모습을 드러내셨다. 그때에도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주님의 첫 번째 변신 때나 부활 후 변신하셨을 때나 제자들은 아무도 변신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다. 오리겐이 설명한 대로 주님의 변신은 앞으로 의로움을 보여주실 것이라는 예고이다. 의로움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말만으로는 보여 줄 수 없다.
 
 마르코 복음은 베드로 사도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오늘의 복음에서 마르코는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표현하고 있다.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부터 먼저 하는 베드로의 습성을 그대로 보여 준 것이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말을 하면서도 또 행동을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모욕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할 때에 나는 그들의 "무지"를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변신"하시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이야기인가, 아니면 영적인 경험인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간혹 만나는 신비스런 일이나 데자부(deja vue) 같은 일에 직면할 때면 그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상상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어릴 때의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인가, TV에서 본 것인가,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인가?"
 
 말을 참고 조용히 그 사건을 관조(觀照)하면 그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제자들은 두 번이나 "진실"을 놓쳤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들을 수 있게 된다.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나는 나의 참 자아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나의 영혼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침묵하고 있을 때에는 조심스런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된다. 고요함 속에서 우리들이 누군가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면 심지어는 경멸하는 말조차도 그 말뜻이 와 닿게 된다. 왜냐하면 설령 그 말 속에 더럽혀진 말이 있더라도 그 말을 존경함으로써 진실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속에 쓸데없는 말만 무성하게 되면 우리들이 말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모든 것을 말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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