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까다롭게 군 이유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2 조회수515 추천수4 반대(0) 신고
 
 

 

 

큰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의 일이다.

기말시험에서 올백을 맞아 전교 일등을 했다고 하면서 신이 나서 돌아왔다.

대견해서 칭찬을 해주었더니 아이는 마치 맡겨놓은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자기에게 무슨 선물을 줄 것이냐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물었다.

“왜 내가 너에게 선물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기 반의 아무개는 백점을 맞으면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선물도 주고

용돈도 올려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성적이 잘 나오니 너는 기분이 어떠니?”하고 물었다.

아이는 너무나 좋아서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네가 정말 자랑스럽고 기쁘구나.” 하면서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잘 나오면 가장 기쁜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공부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임을 깨우쳐 주었다.

즉 용돈이나 선물을 받으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그렇긴 하지만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이 대견해서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다고 하면서

그러나 항상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다짐해두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받았다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야말로 선물과 보상의 차이점을 가르치기 위해서 까다롭게 굴었던 것이다.

 

 

그 날, 아이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온 식구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이룩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순수한 선물이었기에 더욱 기뻐했다.

자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까지 기쁨을 만끽했으니 그것도 뿌듯한 일이다.

 

그 날 뿐 아니라 성적이 안 좋아 의기소침해 하던 날도

똑같이 좋아하는 것을 사주고, 더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부모의 지원과 칭찬은 자기가 한 일의 보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부모는 자기들의 상태와 무관하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 마음을 알아들었는지 아이들은 무슨 일이건 부모에게 조건을 내 걸지 않았고,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스스로 해 낸 일에 대한 성취감이

가장 좋은 보상임을 알게 되었다. 그 좋은 느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외부 여건과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계획을 짜고 실행할 줄 알게 되었다.

 

자기들이 열심히 노력할 때 부모는 든든한 후원자이며,

혹은 실패했을 때에도 언제나 자기들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것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공부하며 일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누군가 그 노력을 알고 칭찬을 해준다면, 누군가 그 성과에 맞는 보상을 해준다면,

그야말로 큰 선물로 여기며 감사할 줄 안다.

선물로 받는 두 배의 기쁨을 매우 크게 생각한다.

항상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선물도 많은 경우 목적이 숨어있다.

선물도 일종의 미래를 위한 보상일 수 있으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교환가치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관습에 익숙해진 사고방식이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냉정하게 거절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 진의가 따로 있을 것 같다.

여기에서도 사실 표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표징을 요구하는 의도와 목적이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표징을 거절한 아하즈에게 강제로 표징을 주시기도 했고(이사 7,11-17)

그분 스스로 표징과 기적을 수없이 베풀기도 했다.

그렇다면 표징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유익한 선물,

무조건적인 선물이지 인간이 믿음을 조건으로 요구할 수 있는 보상은 아니다.

 

보상이나 상급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가 하느님의 선물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기에 주님은 냉정한 태도로 이것을 바로 잡아주시려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보상과 무상의 선물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꽤나 까다롭게 굴었듯이 말이다.

 

하느님께 무엇을 바라기 전에,

혹시나 목적 달성을 위해 이러저러한 조건을 달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가 한 일의 보상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른 의도로 청하는 것인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플라시도 도밍고 / 모린 맥거번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