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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 연중 제7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20 조회수287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2,1-11
1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2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3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4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5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6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7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8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9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이다.

 

10 지난 세대를 살펴보아라.
누가 주님을 믿고서 부끄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느냐?
누가 그분을 경외하면서 지내다가 버림받은 적이 있느냐?
누가 주님께 부르짖는데 소홀히 하신 적이 있느냐?

11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0-37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

예수님 말씀만 전승에서 물려받고 나머지는 덧붙인 구절이다. 메시아비밀, 제자교육, 제자들의 몰이해는 한결같이 마르코가 즐겨 내세우는 소재들이다.

 

30

거기가 어딘지 분명하지 않다. “이라고 보는 도리밖에 없겠는데 마르코는 그 집이 갈릴래아 밖에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31

여기 수난예고는 첫 번째 수난예고보다 덜 구체적이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유다교 지배층의 반대가 심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신 때문에 아무래도 당신이 고난을 받으리라 예감하고 여기 말씀처럼 예고하셨을 가능성이 많다.

 

누가 제일 높은지 다투다

9,33-34에서는 제자들이 서로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막연한 데 비해서 10,35-45에서는 훨씬 더 구체적이다. 그리고 9.35의 겸손을 권장하는 말씀은 공관복음에 수시로 나온다. 마르코복음의 경우 10,43-44에 그 변체가 유행어라 한다.

 

그러니까 33-35절은 고유한 전승이 아니라, 제자들이 서로 다툰 이야기와 겸손을 권장하는 유행어를 합쳐 만든 제자교육 상황어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상황어를 만든 이가 마르코 이전의 전승자인지 아니면 마르코 자신인지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어린이를 사랑하시다

9,36-50을 주의해 보면 내용상 아무 상관도 없는 단편 전승들을 단지 앞뒤에 같은 낱말이 나오기 때문에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앞뒤 전승을 잇는 연쇄어들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36), 어린이들(37), 이름으로(37)-. 이름으로(38-39)-이름으로(41, 역문은 명분으로”);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41, 역문은 명분으로):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42); 넘어지게 하다(42)-넘어지게 하다(43-47). 지옥/(43-48). (49), 소금절이(49)-소금(50ㄱㄴ절).

 

연쇄어 집성문은 마르코가 복음서를 집필하기에 앞서 전승과정중에 형성된 것이다. 50ㄴ절만은 마르코가 가필한 것이다.

 

37

예수께서 ... 가운데 하나라는 표현을 쓰실 때는 으레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 하셨다. 그럼 누구를 두고 작은 이들이라하셨을까? 당신 제자들을 가리키셨다고 보면 무난하다. 그렇다면 37절의 뜻인즉,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셈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하느님을 영접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는 37절의 여러 병행문과 신통하게 들어맞을뿐더러 심부름꾼은 심부름 보낸 분과 같다는 이스라엘 격언과도 꼭 맞는다. 그런데 불행히도 전승자는 작은 이들이 제자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어린이들인 줄로 착각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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