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피에타 - 9.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5 조회수44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9.15 토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히브5.7-9 요한19,25-27

 

 

 

 

 



피에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은 어제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축일입니다.

 


요즘 며칠 간 화두로 삼아 묵상하는

주제인 ‘피에타’와 딱 들어맞는 축일입니다.

베니스 영화제에 최고 작품상을 받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영화가 요즘 화제의 중심입니다.

저도 피에타 영화와 감독에 대한 소개를 통해

다시 피에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년 전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중 로마의 베드로 성전을 방문했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자비가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 기사 중 마음에 와 닿은 대목입니다.

종교인이 아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산전수전 온갖 고난을 다 겪어가며

그 고난의 깊이에서 자비의 하느님을 만났고

여기서 받은 영감으로 ‘피에타’ 영화를 제작했음이 분명합니다.


믿음의 유무에 불구하고

마음 깊이에서는 누구나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종교인임을 깨닫습니다.

 


피에타는 ‘주님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이태리 말입니다.

절망의 인간 한계 상황에 도달했을 때

절로 터져 나오는 기도가 바로 피에타 자비송입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도 모두가 무너져 내리는 참 절박한 극한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곁에 선 어머니 마리아를 보며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두 말씀입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당신뿐 아니라 당신의 애제자는 물론

당신을 사랑하는 믿는 우리 모두를 어머니 마리아의 자녀라 하십니다.

믿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어머니이신 마리아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애제자는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간곡한 말씀에 따라

그때부터 애제자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자기 집에 모셨고

우리 또한 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삽니다.

참으로 슬픔 가득한 장면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오늘 복음 묵상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십자가 아래서 마리아는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충격적 자기 비움(self-emptying)의 신비를 나눕니다.

  아마 이것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깊은 믿음의 ‘케노시스(kenosis;비움)’일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지 않지만 다음 장면은 바로 피에타의 장면일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제13처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모님 품 안에서 살다가 마침내 그 품 안에서 죽게 하소서.”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기도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하는 아드님 예수를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피에타 조각상이 바로 그러합니다.


침묵의 피에타 장면 자체가 간절한 기도입니다.

성모님의 슬픔은 그대로 하느님의 슬픔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으시다가

십자가에 참혹하게 죽으신 아드님 예수를 품에 안으셨을 때의

성모님의 그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바로 아드님과 하나 된 시간이요 하느님과 하나 된 시간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그대로 아드님의 마음이자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모님이 완전 하나 된 피에타의 장면입니다.


바로 여기 성모님의 마음에서 저절로 솟아난 기도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피에타 기도였을 것입니다.

 


성모 어머니의 품, 하느님의 품에서

마지막 평화를 찾았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어머니의 품을 찾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 먹어도

영원히 어머니의 품을 찾는 어머니의 자식일 뿐입니다.

 


예전 숙부님 회갑 잔치 때

어머니(제겐 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지으며 부르시던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로 시작되던 숙부님의 노래가

지금도 선명합니다.

 


“차라리 내 마음 차분히 가라앉혀,

  젖 떨어진 아기, 어미 품에 안긴 듯이 내 마음 평온합니다.”

  (시편131,2)

 


바로 이게 사람입니다.

어머니 품, 성모님 품, 하느님 품 안에서

위로와 격려와 치유를 받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사람 안에는 누구나 안고 싶고, 안기고 싶은 DNA가 있습니다.

 

안아 주라 있는 가슴입니다.

슬프거나 기쁘면 본능적으로 와락 껴안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 사진 장면도 잊지 못합니다.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 차 캘리포니아 어느 피자집을 찾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피자집 사장이 번쩍 안아 올린 사진입니다.

두 분 다 기쁨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난 공화당원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는

피자집 사장의 고백이었습니다.

넘치는 카리스마에다 인간적 매력을 지닌 대통령임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품에 안고 젖 먹여 키운 그 어머니에겐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사랑스런 자식일 것입니다.


아, 이게 바로 어머니의 마음, 성모님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정도나 양상의 차이일 뿐 세상의 고통 받는 어머니들 모두

피에타의 성모님입니다.


부성애와 비교할 수 없는

하느님 마음에 근접한 모성애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성모님이요 이 땅의 피에타 어머니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누구보다 아드님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은

이 진리를 절절히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중 다음 즈가리야의 후렴으로

피에타 성모님께 우리 모두의 위로를 전해 드리며 강론을 마칩니다.

 


“비통의 어머니시여, 기뻐하소서.

  당신은 큰 고통을 겪으신 후 천상영광으로 구원되시고,

  온 누리의 여왕으로서 당신 아드님 곁에 좌정하셨나이다.”

 


비단 성모님뿐 아니라

성모님처럼 고통 중의 모든 피에타 어머니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 말씀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