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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2일 예수 부활 대축일 성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2 조회수878 추천수12 반대(0) 신고

 

 

               3월 22일 예수 부활 대축일 성야-마태오 28장 1-10절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거지근성이 가장 심한 여 제자>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넌센스 성경퀴즈를 풀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자, 500점짜리 문제 나갑니다! 복음서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거지근성’이 심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막달라 마리아(막 달란 말이야^^).


    또 다른 한 가지 충격적인 주장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한국인’이었다는 놀라운 주장입니다. 어떤 근거에서 나온 주장인가요?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 예수님 무덤가를 서성이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정확한 한국말로 ‘오라버니!’라고 외쳤는데, 이 외침은 성경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라뽀니!”


    부활의 기쁨이 너무나 컸던 나머지 우스갯소리 좀 해봤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마리아’란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마리아 막달레나, Maria Magdalena)는 복음서에서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루가 8,2)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임종을 끝까지 지킨 여 제자이자(요한 19,25), 예수님 부활의 최초목격자(마르 16,9), 그리고 예수님 부활사건의 최초 전달자(요한 20, 11-18)였습니다.


    끝까지 예수님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남성 제자들이(사도 요한만 제외하고) 다들 혼비백산 달아났었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십자가 밑에 서 있었습니다.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안식일이 지나가기만을 학수고대했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스승 예수님의 장례절차가 너무나 황급했고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대충 적당히 무덤에 안치된 스승의 시신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 겨우 여명이 동터오던 이른 새벽, 마리아 막달레나는 겁도 없습니다. 무덤을 향해 냅다 달립니다. 신 새벽에 무덤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보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겁을 먹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 무덤 앞에 도달한 마리아의 모습은 가관입니다. 한 며칠 예수님 때문에 잠이나 제대로 잤겠습니까? 먹기나 제대로 먹었겠습니까? 기진맥진한 그녀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무덤을 바라보는 순간, 기가 막힌 대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녀의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입장에서 봤을 때 참으로 놀랍고, 슬프고, 안타까운 체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신이라도 한번 대면하려고 기를 쓰고 달려왔는데, 빈 무덤이라니요.


    그러나 ‘빈 무덤’ 체험은 또 얼마나 소중한 체험인지요?


    만일 마리아 막달레나가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면, 이제 살아나신 예수님은 어디에서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수용하기 힘든 빈 무덤 체험, 백번 깨어나도 이해하기 힘든 빈 무덤 체험이지만, 하느님의 도움으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신앙의 깊이가 깊어질 때, 이 빈 무덤 체험이야말로 일생일대 가장 은혜로운 사건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빈 무덤의 슬픔, 빈 무덤의 고통을 잘 견뎌낸 사람에게만이 예수님 부활의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하느님 부재 체험, 끝도 없는 암흑의 세월을 잘 극복한 사람에게만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감미로운 만남이 보장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두고 왜 하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제일 먼저 발현하셨을까요?


    그녀의 예수님을 향한 불같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목숨까지 건 활활 타오르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강인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열렬했는지 모릅니다.


    생명까지 바치는 사랑, 목숨조차 두렵지 않은 사랑,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사랑 안에 예수님의 부활은 계속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0번 / 어두움을 벍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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