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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혜로운 삶" - 5.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06 조회수442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6 부활 제2주간 금요일(한국 103위 순교 성인 시성일)

사도5,34-42 요한6,1-15

 

 

 

 

"지혜로운 삶"

 

 

 

 

얼마 전 약 20년 만에 방문한 자매와 면담성사 시

다음 말마디가 잊혀 지지 않습니다.

 

“신부님,

  20년 전에는 날카로웠는데 부드럽게 늙으신 것 같습니다.”

 

늙었다는 말에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부드럽게 라는 말이 마음 흐뭇하게 했습니다.

‘부드럽게 늙었다’ 도 좋지만

‘지혜롭게 늙었다’라는 말도 듣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지혜로운 삶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지혜로운 삶이 광기를 잠재웁니다.

열광(熱狂), 광신(狂信), 발광(發狂),

광분(狂奔), 광란(狂亂), 광기(狂氣), 광적(狂的)이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말마디들 안에 들어있는 ‘미칠 광(狂)’자입니다.

 

정상에서 벗어나 제정신을 잃고 미칠 수 있는

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제정신을 잃고 분노하여 흥분할 때 보면 흡사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제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미친 이들 참 많은 오늘 날 세상입니다.

 

상식과 양식에서 벗어난 일들이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오늘의 미친 현실입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요 천사이지만

잘못 미치면 폐인이요 악마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 ‘열광과 광기사이에서’라는 글의 칼럼을 일부 인용합니다.

 

- 열광과 광기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열광이 광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독일인들의 히틀러에 대한 열광이 광기로 변해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켰다.

  또 종교적 열광이 집단자살이나 마녀사냥과 같은 광기로 발전한 것은

  부지기수다.

  …빈 라덴 사살에 대한 미 국민의 열광이

  지구촌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광기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언제든 미칠 수 있는 위태한 인간입니다.

때로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입니다.

 

성지주일 복음 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열광적으로 환호했던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발광하지 않았습니까?

믿을 수 없는 게 군중이요

사람들의 인기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슈퍼스타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겠는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의 지혜를 배웁니다.

 

노자에 나오는 공성이불거란 말마디는

특히 민중신학자 안병무씨가 좋아했습니다.

 

지혜로운 이들은 공을 세우면

그 자리에 머물러 공을 누리지 않고

지체 없이 떠나든지 그 공을 형제들에게 돌리고 자기는 뒤로 물러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기적에 열광한 군중은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자

예수님은 공성이불거, 지체 없이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조용히 물러가심으로

군중의 열광의 광기를 잠재우신 지혜로운 주님이십니다.

 

떠날 때 잘 떠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며 힘든 일인지요.

떠날 때 잘 떠나 존경과 사랑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떠날 때 잘 떠나지 못해 오명 속에 살아가는 불행한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지혜롭게도 열광한 군중의 광기를 고요히 잠재우신 후

말없이 물러나 홀로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복된 고독의 충만한 시간을 누리십니다.

 

반면 사도행전의 가말리엘에게는 공선사후의 지혜를 배웁니다.

 

예전에 어느 변호사님의 사무실에 갔을 때 본

‘공선사후(公先私後)’란 말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아마 그 변호사님의 좌우명인 듯 했습니다.

 

공선사후라는 말은 사익보다 공익을, 개인보다 공동체를,

내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앞세운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들이 많아야 좋은 공동체, 좋은 나라입니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교사 가말리엘 바리사이’라는 묘사에서

이런 현자의 모습이 감지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우선하여

매사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분별의 지혜입니다.

 

다음 가말리엘의 지혜로운 말씀이

최고의회에 참석한 이들의 광기를 잠재움을 봅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라는 말마디입니다.

 

무관심으로 방관하거나 방치하라는 말이 아니라,

쓸데없이 간섭하거나 관여하지 말고,

건드리지 말고

하느님께 맡기고 가만히 지켜보고 바라보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 사이 문제들은 참지 못하고

자꾸 간섭하고 건드려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공동체내의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겸손과 분별의 지혜를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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