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클레오파스의 친구 이야기예요 ^^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06 조회수501 추천수8 반대(0) 신고

 

그가 먼저 말을 건네오기까지
나는 그가 언제부터 내곁에 다가왔는지 몰랐습니다.

나는 그에게 퉁명을 떨었고, 핀잔도 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내 삶의 이야기를, 내 이웃의 동향을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풀어놓듯 편안히 쏟아놓았습니다.

그는 그 지루한 이야기들을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어지러운 삶의 이야기들을 모두어 정리해주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한 성서 전체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주었고 그것이 자신과 어떤 연관을 맺는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아,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내 인생의 도정에 느닷없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덧없고 뜻없는 나의 삶은 의미와 색깔을 잃고 목적도 없이 떠돌뻔 했습니다.

나는 그와의 끝도없는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다리가 아픈 줄도.. 배가 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습니다.
나는 쉬고 싶었으나 그는 아직도 피곤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자신의 길을 가려는 듯 보이자 나는 갑자기 다급해졌습니다.
그대로 헤어지기엔 너무 아쉬었습니다.

밤을 새워 이야기하자고, 아니 괜찮다면
아예 내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하고 싶었습니다.
평생을 찾아 헤매도 이런 동반자,
이런 친구는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지요.

맞아요.
나는 아예 내 집의 주인이 되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그분께 드리고 싶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분은 나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자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분이 식탁에서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 나누어 주실 때!
그분이 바로 "예수"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때까지 익명으로 존재했던 그분이 "예수"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순간입니다.
그 때까지 소문으로 전해듣던 그분이 내 앞에 실존이 되신 순간입니다.
그 때까지 익명으로 존재했던 클레오파스의 친구인 내가
"세실리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순간입니다. 

그분을 알아 본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 기적이 아니라
서로가 부를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바로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슨 기적이냐고요?
그제야 그분 앞에서 나의 존재가,
내 안에서 그분의 존재가 투명하게 드러나고
그분이 나의 주님이 되는 거룩한 순간,
나 또한 그분 안에서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찾은 순간이기 때문에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영원이 순간에 머문 그 순간.
순간이 영원 안에서 영원에 이른 그 순간.
그것이 기적 중에 기적인 것입니다.


    아,
    이제 저물어가는 황혼에 서서
    내 인생의 여정을 다시 돌아봅니다.

    나와 함께 인생 길을 걸어왔던 수많은 이웃들, 사건들, 시간들...
    그 안에 그분이 늘 함께 계셨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내가 그분을 알아보았을 때나, 못 알아보았을 때나.
    내가 그분의 말씀에 뜨거운 감동을 느꼈을 때나, 무감각하게 지냈을 때나.

    특히 내 인생의 전반부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언제나 기쁨과 환희보다는 절망과 실의와 분노만을 그분께 토로했었지요.
    그럼에도 그분은 늘 따듯하고 인내롭게 들어주셨고, 늘 곁에서 지켜주셨습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가끔 그분이 사라져버린 듯 느껴지는 그 부재의 체험들도, 그분의 침묵들도
    모두 나의 눈멈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제야 느낍니다.
    내 눈이 근심에, 두려움에, 세상 걱정에 가리워져 있을 때나 열려있을 때나
    그분은 변치않고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생명의 빵을 떼어 먹여주시고 계셨음을.

    이제 나는 남은 시간 무엇을 해야 할 지 압니다.
    내가 떠나온 공동체,
    실의와 좌절에 쌓여 뿔뿔이 흩어져 나온 이 세상이라는 공동체에
    그분의 현존을, 그분의 사랑을, 그분의 부활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그분이 사랑하시는 무수한 이웃들 안에서 사라지신 예수를 발견하고
    서로의 사랑 체험들을 확인하며 희망과 기쁨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도 따라서 부활해야 한다는 것을.

    주님, 나머지 인생 길도 끝까지 곁에 계셔주십시오.
    주님, 이 눈 언제나 당신께 열려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이 몸 언제나 당신의 말씀으로 뜨겁게 달구어주십시오.
    주님, 언제나 제 안에 주인으로서 머무르십시오.




    ps. 전에 "들어보실래요? 제 사랑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굿뉴스에 올린 글입니다. 이 글은 평화 라디오 방송, '영혼의 숲을 거닐며' 의 목요일 코너,' 세실리아의 말씀 맛들이기' 에 소개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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