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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 8.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9 조회수443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8.9 연중 제19주일                                              
열왕 상19,4-8 에페4,30-52 요한6,41-51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오늘 강론 제목은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입니다.
 
1독서에서
주님의 천사가 엘리야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택했습니다.
 
생각할수록 큰 위로와 힘을 주는 구절입니다.
 
제가 이 구절을 인상 깊게 접한 것은
2005년 연화동 피정의 집에서
수녀님들의 연중 피정을 지도할 때 식당에서였습니다.
 
모두가 잘 보이는 식당 벽 한 복판에 붙어있는 문구가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피정에 딱 들어맞는 구절이라 무릎을 쳤습니다.
 
오늘 연중 제19주일,
참 좋으신 주님은 엘리야 예언자처럼
광야 여정 중에 있는 우리를 당신의 말씀과 성체로 먹이시고자
성체성사의 식탁에 초대해주셨습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이 우선입니다.
위로 하느님과 좌우사방 형제들과 불통으로
단절되어 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돈과 탐욕이 하느님을, 너와 나 사이를 막아
많은 사람들이 불통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밤하늘 영롱한 별들을 보며 꿈과 희망을 키웠는데
요즘은 오염과 공해가 하늘을 막아버려
하늘의 별 보기가 참 힘들어졌습니다.
 
바로 하늘이신 하느님과 불통된 오늘의 세대를 상징합니다.
 
통해야, 소통해야 삽니다.
우리의 온갖 심신의 질병들 불통에서 기인하듯
나라든 공동체든 대부분의 문제들 역시 불통에서 기인합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라는 베네딕도 수도가정의 가훈에서 보듯
우선 기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소통이 우선입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성무일도를 통해
하느님과 활짝 열린 소통으로 푸른 하늘을 사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에 아마 찬미와 감사기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의 대가들이 바로 성인들이요,
복음의 예수님은 물론이고 1독서의 엘리야 예언자,
2독서의 사도 바오로 진정 소통의 대가들입니다.
 
꽉 막힌 하늘이신 하느님과의 소통을 위해
죽기를 간청하며 드리는 엘리야의 기도가 참 감동적입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하늘 문을 열었고
하느님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살아난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당신의 천사를 통한 주님의 다정한 말씀이
그대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 같습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에 성체성사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인 주님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활짝 열리는 하늘 길, 하늘 문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주님과의 원활한 소통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을 때
저절로 열리는 주님과의 소통의 문입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생명의 빵인 주님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모심으로
비로소 하느님과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짐을 깨닫습니다.

주님과의 소통과 더불어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형제들과의 소통은 물론 자연만물과의 소통입니다.
 
매일의 공동전례기도를 통해
형제들과 만물들이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림으로
하느님은 물론 이웃 형제들과 자연만물간의 소통의 문도 활짝 열려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세상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 없는 이웃들 간의 소통은
참으로 불완전하고 위태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바로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소통 능력을 받았음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사랑 받았기에 사랑할 수 있는 우리들이요,
하느님께 용서 받았기에 용서 할 수 있는 우리들이요,
하느님께 불림 받았기에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 중,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는 말씀대로
  이미 아버지께서 은총으로 이끌어주셨기에
  신자생활이요 수도생활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행위에 앞서 늘 전제되고 있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래서 깨닫고 나면 모두가 은총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를 깨닫고 살아야 참으로 활짝 열려 소통의 자유요 구원입니다.
 
이미 하느님과 활짝 열려있는 소통의 문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늘 문을, 하늘 길을 닫은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무지, 탐욕,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모든 이웃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반대로 이웃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또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사랑 받는 자녀답게 소통 자체이신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광야여정 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계속될 죽어야 끝날 광야여정입니다.
 
탈출기의 광야여정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만나를 주셨던 주님은
역시 이세벨 왕후의 보복을 피해 도망하던 광야여정 중의 엘리야에게
빵과 물을 주셔서 살려 주셨고,
오늘 그 똑같은 주님께서 광야여정 중의 우리에게
생명의 빵을 주시고자 이 거룩한 미사 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삶의 밑바닥에서 드디어 시작되는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사즉생(死卽生)이라 했습니다.
캄캄한 절망의 밑바닥에서도
결코 하느님의 끈, 기도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절망의 밑바닥,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느님의 끈을 꼭 잡고 기도하다 잠든 엘리야를 찾아오시어
흔들어 깨우시며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찬찬히 잘 씹어 먹고
다시 광야여정에 오르는 것입니다.
 
아주 이게 현실적인 삶의 지혜입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라 합니다.
 
하느님의 사전에 없는 낱말이 절망입니다.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마심으로 힘을 얻어
밤낮으로 사십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엘리야 예언자보다 복된 사람들입니다.
 
매일, 혹은 주일마다 하느님의 산 호렙을 상징하는 성전에서
생명의 빵을 받아먹고 주님과 완전 소통되어
늘 새롭게 광야여정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로 지금 여기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성전이
출발지이자 목적지임을 깨닫습니다.
 
언제가 어디에 도착할 하느님의 산 호렙이 아니라,
늘 미사가 거행되는 성전 모두가 하느님의 산 호렙이라는 것입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느님의 산 호렙 요셉 수도원 성전에서
생명의 빵인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받아먹고
기력을 회복하여 다시 일어나 광야여정에 오르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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