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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 기쁨으로 충만한 삶" - 11.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3 조회수444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1.13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지혜13,1-9 루카17,26-37

 
 
        
                                         
 
 
 
"하늘 기쁨으로 충만한 삶"
 
 


하느님만을 찾는 본질적 삶을 추구하는 수도승들
흡사 단풍잎들 다 떠나보낸 겨울나무를 닮았습니다.
 
어제 본질의 나뭇가지들 보며 쓴 글입니다.

“늘 푸른
  사철나무는
  아마 이런 기쁨 모를 거다
  환상(幻像)의
  나뭇잎들
  다 사라지니
  본질(本質)의
  나뭇가지들 사이
  환히 드러나는 창공(蒼空)
  하늘 기쁨으로
  충만(充滿)한
  겨울나무들
  수도승(修道僧)의 기쁨은
  이런 것
  아시는지요?”
진정한 성장은 하느님만을 찾을 때 이루어집니다.
 
하느님만을 찾을 때 참 기쁨, 참 평화, 참 행복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삶은 끊임없는 회심의 삶이기도 합니다.
 
외적인 삶에서 내적인 삶으로,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부수적인 삶에서 본질적 삶으로,
넓이의 삶에서 깊이의 삶으로의 회심입니다.
 
육적성장의 어린 시절에는 밥으로 배를 채우는 게 중요했지만,
영적성장의 중년이후로는
하느님의 진선미(眞善美)로,
하느님의 신망애(信望愛)로 가슴을 채우는 게 중요합니다.
 
면담 중 두 분 수녀님의 내용이 공통적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무미건조합니다.
  재미도, 기쁨도 없고 무의미하고 무기력합니다.
  몸도 마음도 불편하고 너무 힘듭니다.
  수녀원을 떠나고 싶습니다.”

즉시 대답했습니다.

“아, 수도생활 시작입니다.
  그게 바로 사막입니다.
  수녀님 자신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행복하지 못하면 밖에서도 행복하기 힘듭니다.
  어찌 보면 삶에서 환상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찾고 만나야 삽니다.”

수도원 안과 밖 어디서나 사막의 본질을 똑 같습니다.
결코 외적환경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야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참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데
여전히 외적 삶에, 육적 삶에, 부수적 삶에, 넓이의 삶에 머물러 살다 보니 몸과 마음 망가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여 너무나 허무하게
많은 시간과 정력, 자원을 낭비하며 사는 현대인들입니다.
 
하느님을 찾지 않은 업보입니다.
 
오늘 지혜서가 바로 이런 무지한 사람들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 찬 사람들은 본디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지 못한다.
  …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을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외적인 것에 정신이 팔려
하느님을 찾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오늘 날의 무신론적 지식인들에 대해 그 책임을 추궁하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 받을 수는 없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문제는 관심사입니다.
어느 것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은 결정됩니다.
 
하느님이 아닌 온통 보이는 세상일에 관심을 쏟는 한
결코 하느님을 알 길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노아시대, 롯 시대 사람들,
오늘의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 까지
육적 삶에 탐닉하여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다가 멸망당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참 어리석은 무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본질적 삶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비단 수도승에게만 국한 된 것이
하느님을 찾는 모든 구도자들에게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더 이상의 욕심은 버리고
하느님을 찾는 내적, 영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지혜요,
이래야 품위 있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들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똑같은 환경 안에서도 내적 삶의 깊이는 이처럼 달랐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본질적 깊이의 삶에 전념했던 이들이 구원 받는 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일화입니다.
 
인생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주님을 모심으로
하늘 기쁨으로 충만한 하루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신다.”(시편111,4-5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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