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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43) 남편의 밥상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0 조회수54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4년1월19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ㅡ사무엘상15,16-23;마르코2,18-22ㅡ

 

   (43) 남편의 밥상

                이순의

          

ㅡ정ㅡ

아들의 친구가 쇼핑백에 만두를 담아왔다. 어제가 일요일이라서 엄마랑 만두를 빚어서 가져왔단다. 들여다보니 만두 빚는 솜씨가 보통은 넘었다. 명절이라고 인사차 보내 온 선물이지만 그냥 받아  먹기에는 가슴이 아리는 선물이다.

 

나의 주변 정리를 하고 칩거에 들어가면서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처음으로 학원에 보냈다. 학원에 가서 새로 친구를 사귄 것이다. 칩거 중인 내 집에 유일한 외인출입이 시작 된 것이다. 성당에 다니는 아이도 아니고,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데다, 중학교도 다른 학교 출신이고,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되지 않아서 반갑게 맞았다. 내 아이의 숨통도 트일 것 같아서 허락한 것이다.

 

시간이 깊어진다는 것은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이고, 관계가 가까워진다는 것은 사사로움이 개입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지난 가을에 아빠가 먼데로 떠난 아이였다. 아빠의 빈자리가 숨결마다 스며 녹아 아직 가슴에서 그 사실조차 실감이 나지 않을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사춘기 아들을 혼자 몸으로 키워야 할 그 엄마를 생각하니 세상에서 나는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참으로 나는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정리를 어렵게 끝냈다 싶었더니 더 어려운 이웃을 내 집에 드나들게 하시는 주님의 초능력에 그저 코웃음만 나왔다. 만남은 인연을 당기는 힘을 발휘한다. 그 엄마도 내가 궁금해 졌고 나도 그 엄마가 궁금해 졌다.


학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그 엄마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나갔다. 자식이라는 연결고리는 서로에 대해 그저 반가움만 안겨 주었다. 초면에 손잡고! 팔짱끼고! 마주보고! 깔깔깔 웃고! 훌쩍훌쩍 울기도 하고! 서로 다독다독 다독이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고! 할 짓이 저절로 허락 되었다.

 

처음 만나서 여섯 시간 동안 함께 있었다. 술도 마시지 않았다. 차 한 잔에 계속 된 나눔이었다. 찻집의 언니는 중년의 눈치 없는 아짐씨 둘에게 구박도 하지 않고 컵에 따뜻한 물을 채워주러 들리곤 하였다. 너무 깊어지는 밤을 무척 아쉬워했다. 사노라고 바빠야 할 인생살이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헤어 졌었다.


새로 사귄 그 친구가 너무나 고운 솜씨로 만두를 빚어서 보냈다. 설이 다가오는 일요일에 할일이 많았을 번거로움이 읽혀지고 있었다.

 

나는 종가 맏며느리다. 설 명절 장을 보고 돌아와 구해 놓은 나물자루들을 꺼내 보았다. 삐득삐득 잘 마른 나물들이 명절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언니가 천연 유기농으로 여름 내내 허리가 꼬부라지게 농사지어서 보내 준 나물들과 섬 집에서 아저씨가 꺾어다 말려 주신 고사리까지 잘 보관 되어 있었다. 손짐작에 양을 좀 더 보태었다. 손을 따라서 삐득삐득 마른 나물들이 준비된 냄비에 한 가지씩 줄줄이 담기는 순명을 했다.


처음으로 제사를 준비 할 모자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마른 나물을 닮아 부서지며 퍼석거렸다. 나물을 잘 삶아서 부드럽게 해 주어야겠다.

 

그 날 밤에 나는 실언을 했었다.

"남편이 바람이 나거나 이혼한 사람들이 그러는데 차라리 죽고 없으면 잊어나 버린데요. 그러니 그런데 비하고 잘 살으세요."

듣고 있던 분은 한참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순간적으로 실수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혼을 해서 다른 여자랑 다른 아이들을 낳고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 한다면 좋겠어요. 그 곳이 미국이든 북한이든, 아니 남극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우리 아이에게 한번이라도 단 한번 만이라도 아빠를 보여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그 목소리를 전화로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를 위로 하려고 하신 말씀인지는 너무 잘 알아요. 저도 그 때는 몰랐어요. 그 때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게까지 가슴 미어지는 그리움을 너무도 태연한 자세로 자기를 지키며 냉혹하게 털어 놓았다. 눈물은 내가 흘렀다. 숟가락 젓가락 하나라도 함께 마련했던 세월들을 홀로 바라보며 뼈 마디마디에 그리움을 새겨 갈 외로움을 내가 느끼고 있었다. 저녁에 전화를 드렸다. 만두를 잘 받았다는 인사와 나물을 보내 드릴 테니 사지 말라는 부탁을 드렸다.

 

"제가 나물을 삶기는 했는데요. 반찬을 만들어서 보낼까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어요. 멀리가신 서방님께서 처음으로 밥상을 받으러 오시는데 남의 여편네 솜씨가 입에 맞지 않으실 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오랜만에 다녀가실 남편의 밥상은 마나님께서 직접 보셔야 되겠네요."


식구가 없으니 조금씩만 보내주시라는 감사의 인사를 받으며 전화를 끊었다. 가신분에 대한 정이 그리움으로 남아 차례 상 앞에 소년 아들을 두고 눈물을 삼키느라 처량할 여인의 모습이 사무치게 떠오른다. 주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정 하나를 가르치고 계신다.


"만두 잘 먹을게요."

 

ㅡ"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번제나 친교제 바치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 같소?"사무엘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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