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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특별 3인방과 안드레아 사도에 대한 묵상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2 조회수427 추천수3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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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안드레아)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마르 9,2-3; 마태 17,1-2; 루카 9,28 참조)

 

"그들은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마르 14, 32-33; 마태 26,36-37 참조)

 

예수님께서는 성경 여러군데에서 특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다니시면서 특혜?를 주시는듯 한데 왜일까요?

정확한 답이야 이담에 예수님께 직접 듣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추측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분은 예수님께서 활동을 하시면서 여러가지 기적이나 말씀 등을

통하여 모인 제자단에서 뽑으신 제자들이 아니십니다.
네 어부는 예수님께서 먼저 그들을 보시고 부르신 제자들 이십니다.
굳이 궁금하다면 저는 오히려 왜 그 네분 중에서 안드레아 사도가

빠졌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어부 네 분을 제외하고 다른 사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추측컨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모인 사람들 중에서 선발하신 듯합니다.
네분 어부에 대한 묵상은 어제 묵상글 75019번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어부 사도들과 마태오 사도 말고는 특별히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지 않고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장면만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기

위해서 왔던 사도들이라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네 어부 사도 중에서 유일하게 안드레아만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실 것입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누구인가도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3이라는 숫자의 의미입니다.
3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뜻하는 신적인 숫자입니다.
3이면 충분하다는 뜻이고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이건 제 생각인데 사람에게는 두 증인이 있으면 충분하지만
신적은 일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3이 중요한 것은 아닐런지요?

다른 사도들과 달리 세 분의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기
전에 그들을 먼저 눈여겨 보시고 뽑으신 분들로서 이미 함께
하시려고 계획하셨고 작정하셨다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에서 안드레아 사도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상세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는 천사들이나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자상하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포인트를 잡아서 묵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묵상을 통하여 깨달은 것은 성경의 궁금증은 성경을 통하여, 성경에

비추어서 묵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서는 부연 설명을 생략하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셨다'
라고 전하며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랐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셨다라는 말씀을 통하여 묵상할 수 있는 것은

보시는 것이 일회성은
아니라는 의미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루카 복음서가 알려주시는 하느님은 아주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가지고 왔을 때를

보십시오.
성모님께서 알아 들으실 때까지 설명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에게는 그렇게 자상하게 하시고 누구에게는 자상하지 않으신 분은

아니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자상하게 네 어부와 대화가

오고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어부의 무엇을 보셨을까요?

마음 속에 품은 생각도 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네 어부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찾아 오신 것은 아닐런지요?

이미 마음 속에 예수님을 받아 들일 만큼 성숙된 뭔가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분들이었다면 어떻게 일면식도 없는 한 청년의 말을 듣고

그물(모든 것)을 버릴 수 있겠는지요?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지요?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그릇이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 준비가 되신 분들이었기에 따로이

특별 3인방의 그룹으로 활동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루카 복음서는 어떤 의도로 안드레아 사도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지 않는지 알 수 없으나 요한 복음서가 전하는 부분을 보면 안드레아

사도가 자기 형님이신 베드로 사도에게 예수님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상세하게 정황 설명을 하시는 요한 복음서에 촛점을 두고 묵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사도와 예수님은 어떤

이야기들을 하셨을까?

 

성경이 다 쓰고 있지 않은 말씀들은 우리가 우리의 삶의 처지에 맞추어

자신이 베드로가 되어 예수님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 관상일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 야고보와 요한 형제!

나란히 형제가 동시에 예수님의 제자로 불림을 받았고 동시에

응답했다는 의미는 아주 중요함도 배웠습니다.

형제가 마음과 뜻이 통하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살면서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신 부분은 아닐런지요?

어쩌면 특별 3인방의 비결은 아닐런지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인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친 형제와 마음과 뜻이 일치를 이루고 살았던

분들의 삶을 보신 것은 아닐런지요?

 

저는 이번에는 마르코와 마태오가 전하는 부분을 가지고 안드레아 사도를

묵상한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예수님의 특혜를 받는 3인방을 어떤 마음으로 보았을까?

 

그런 말이 있습니다. "결혼할 여인을 보려면 그의 어머니를 먼저 보라."

그 제자를 보려면 그 스승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렇다면 요한 복음서에서 안드레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 소개됩니다.

스승의 말씀을 듣고 스승의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스승의 말씀을

따랐던 안드레아입니다.

 

그렇게 안드레아를 묵상해 보면 자신의 스승이었던 세례자 요한의 마음이

곧 자신의 마음으로 간직하고 살았던 분이시라는 묵상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자신을

표현한 스승의 그 마음이 곧 안드레아 사도의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활이 어디까지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아셨던 세례자

요한의 충실한 제자였던 안드레아 사도를 저는 오늘 만났습니다.

자신이 특별 혜택을 입는 자리에 들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았을 그 마음을

오늘 만났습니다.

 

아, 안드레아 사도가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저도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그 마음으로 저도 살고자 합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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