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야곱의 우물(4월 3일)매일성서묵상-♣ 부활 제2주일 ♣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03 조회수795 추천수0 반대(0) 신고






      ♣ 부활 제2주일 ♣ (요한 20,19­-29)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그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스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함께 있지 않았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스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토마스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4월 3일자 이 안나마리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 님의 글 입니다. *^^*
      말씀은 바로 그날, 주간 첫날 저녁에 일어난 일로 시작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어난 놀라운 일로 인하여 지금 제자들은 무서움에 떨며 문을 잠가놓고 있다. 이러한 제자들 가운데 예수께서 오시어 “그대들에게 평화!”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며 제자들이 믿게 하신다. 부활하신 주님을 뵌 사람은 이른 아침에 빈 무덤을 들여다보았던 사람들(여인·베드로 그리고 다른 제자) 중에서 무덤 주위를 떠나지 않고 그 무덤을 들여다보고(요한 20,11) 있던 여인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 여인 마리아를 불러 뒤돌아서게 하시고(20,16), 부활하신 당신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셨다. 또한 무서워 문을 잠가놓고 모여 있던 제자들 한가운데 주님은 평화를 기원하며 나타나시어 당신 죽음의 상처인 손과 옆구리를 보게 하심으로써 믿게 하시었다.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볼 수 있는 눈은 신적인 세계로 넘어가 사는, 새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새로운 눈으로 외관 너머를 바라보는 눈이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소경을 치유하시어 새롭게 볼 수 있는 눈, 신앙의 눈으로 당신을 믿고 따르게 해주셨다. 보지 못하던 소경이 나자렛 사람, 목수의 아들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신앙의 눈을 뜨고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다가오시고, 당신을 확인시켜 주시며, 믿음의 눈을 뜨게 해 성령을 주시어 믿는 사람이 되게 하신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렇게 우리 두려움 가운데, 시신만이라도 찾아 나선 여인의 빈 무덤, 죽었음의 표시인 열린 손과 옆구리의 상처에 성령을 주시며 현존하신다. (2고린 3,17 참조) “성령을 받으시오. 누구의 죄든지 그대들이 용서해 주면 용서받을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요한 20,22-­23) 평화를 기원하며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용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며칠 동안에 일어난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로 문을 잠그고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이다. 평화를! 용서를! 용서를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이해를 체험하라 하신다. 이어서 전하는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을 뵌 제자들이 전한 사실을 토마스는 자신이 직접 그분을 뵙고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 토마스에게 여드레 후에 다시 다가오신 주님께서는 당신 죽음의 자리인 손과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확인하게 하시며 그의 믿음을 더해주신다. 그리고 보지 않고 믿는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 토마스에게, 더 나아가 오늘 우리에게도 믿음의 눈을 뜨라고 하신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예수께서 현존하시는 것을 알아채는 눈, 성령으로 불신과 의혹, 두려움 속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이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병자들을 낫게 하신 그분 예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뵈었던 그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람들 바로 그 한가운데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뵙는 눈을 뜨라는 것이다. 옛날에 한 랍비가 제자들에게 “밤이 지나고 새날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였다. 한 제자가 말하기를 “멀리 있는 동물을 보고 양인지 개인지 분간할 수 있을 때 새날이 아닙니까?” 하자 다른 제자는 “멀리 있는 나무를 보고 무화과나무인지 복숭아나무인지를 분간할 수 있을 때가 새날이 아닐까요?” 하였다.

      그러자 랍비는 “너희가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 너희의 형제 자매로 다가올 때, 그때가 새날이다. 만일 너희가 이것을 할 수 없다면 시간이 언제든 상관없이 여전히 밤이다” 하였다.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신앙의 눈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사람, 만나는 사람들을 형제 자매로 볼 수 있는 눈. 이것이 믿는 눈으로 보는 신앙의 눈이요, 보지 않고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길이다.보지 않고도 말씀을 믿는 사람은 보고 만져 확인하는 세상을 너머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신앙인의 삶이며, 현존 하는 주님 안에 사는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다. 사람과 사건과 일상 안에 현존하는 부활 하신 주님을 살아가는 신앙인이다. 직접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 하겠다고 말한 토마스는 고도로 기술화·문명화된 사회에서 지식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다른 모습이다. 우리의 어둠과 실망의 자리, 두려움, 굳게 잠가놓은 문을 뚫고 그분은 한가운데서 평화를 기원하며 우리의 세계를 넓혀 주신다.

      보이는 세계를 너머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시며, 평화와 성령을 주시고 죄 사함과 당신과 함께한 그 구원의 이야기를 선포하라고,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당신으로 인한 부활임을 전하라고 하신다. 지금 우리 한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그분과 함께 살라고 하신다. 그렇게 죽으신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구원을 받아 생명을 누리라 하신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수 있는 은총은 주님이 주신 성령의 선물이다. 그분이 먼저 다가와 보여주시고 믿게 하신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신다.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 고통스런 죽음의 무덤과 일상의 상처, 의혹과 불신의 우리 삶에서 당신 죽음과 부활을 본받게 하여 주십시오. 그 죽음의 자리 한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은 다가오시고 당신을 따라 사는 부활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성서구절은 200주년 기념 성서를 인용했음 [영성체후묵상]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의 의지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넘칠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삶은 하느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삶입니다. 우리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소스입니다) <br><UL> <br><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192.jpg><br> <br> </UL> <BR><BR></UL><PRE><UL><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005e77> <B>♣ 부활 제2주일 ♣</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B> <B> (요한 20,19­-29) </B><FONT style ="FONT-SIZE: 10pt" color=red> <P> <BR>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그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BR> <BR>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스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함께 있지 않았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스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BR> <BR>그리고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토마스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BR> <img src=http://www.hicomnet.co.kr/flower/image/k030.jpg width=350 height=350>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ace="돋음체">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4월 3일자 이 안나마리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 님의 글 입니다. *^^* </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darkviolet ace="돋음체"> <BR><B> 말씀은 바로 그날, 주간 첫날 저녁</B>에 일어난 일로 시작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어난 놀라운 일로 인하여 지금 제자들은 무서움에 떨며 문을 잠가놓고 있다. 이러한 제자들 가운데 예수께서 오시어 “그대들에게 평화!”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며 제자들이 믿게 하신다. 부활하신 주님을 뵌 사람은 이른 아침에 빈 무덤을 들여다보았던 사람들(여인·베드로 그리고 다른 제자) 중에서 무덤 주위를 떠나지 않고 그 무덤을 들여다보고(요한 20,11) 있던 여인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 여인 마리아를 불러 뒤돌아서게 하시고(20,16), 부활하신 당신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셨다. 또한 무서워 문을 잠가놓고 모여 있던 제자들 한가운데 주님은 평화를 기원하며 나타나시어 당신 죽음의 상처인 손과 옆구리를 보게 하심으로써 믿게 하시었다.</BR> <BR>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볼 수 있는 눈은 신적인 세계로 넘어가 사는, 새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새로운 눈으로 외관 너머를 바라보는 눈이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소경을 치유하시어 새롭게 볼 수 있는 눈, 신앙의 눈으로 당신을 믿고 따르게 해주셨다. 보지 못하던 소경이 나자렛 사람, 목수의 아들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신앙의 눈을 뜨고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다가오시고, 당신을 확인시켜 주시며, 믿음의 눈을 뜨게 해 성령을 주시어 믿는 사람이 되게 하신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렇게 우리 두려움 가운데, 시신만이라도 찾아 나선 여인의 빈 무덤, 죽었음의 표시인 열린 손과 옆구리의 상처에 성령을 주시며 현존하신다. (2고린 3,17 참조) <B>“성령을 받으시오. 누구의 죄든지 그대들이 용서해 주면 용서받을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B>”(요한 20,22-­23) 평화를 기원하며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BR> <BR>용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며칠 동안에 일어난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로 문을 잠그고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이다. 평화를! 용서를! 용서를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이해를 체험하라 하신다. 이어서 전하는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을 뵌 제자들이 전한 사실을 토마스는 자신이 직접 그분을 뵙고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 토마스에게 여드레 후에 다시 다가오신 주님께서는 당신 죽음의 자리인 손과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확인하게 하시며 그의 믿음을 더해주신다. 그리고 보지 않고 믿는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 토마스에게, 더 나아가 오늘 우리에게도 믿음의 눈을 뜨라고 하신다. </BR> <BR>우리의 일상 안에서 예수께서 현존하시는 것을 알아채는 눈, 성령으로 불신과 의혹, 두려움 속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이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병자들을 낫게 하신 그분 예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뵈었던 그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람들 바로 그 한가운데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뵙는 눈을 뜨라는 것이다. 옛날에 한 랍비가 제자들에게 “밤이 지나고 새날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였다. 한 제자가 말하기를 “멀리 있는 동물을 보고 양인지 개인지 분간할 수 있을 때 새날이 아닙니까?” 하자 다른 제자는 “멀리 있는 나무를 보고 무화과나무인지 복숭아나무인지를 분간할 수 있을 때가 새날이 아닐까요?” 하였다. </BR> <BR>그러자 랍비는 “너희가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 너희의 형제 자매로 다가올 때, 그때가 새날이다. 만일 너희가 이것을 할 수 없다면 시간이 언제든 상관없이 여전히 밤이다” 하였다.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신앙의 눈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사람, 만나는 사람들을 형제 자매로 볼 수 있는 눈. 이것이 믿는 눈으로 보는 신앙의 눈이요, 보지 않고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길이다.보지 않고도 말씀을 믿는 사람은 보고 만져 확인하는 세상을 너머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신앙인의 삶이며, 현존 하는 주님 안에 사는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다. 사람과 사건과 일상 안에 현존하는 부활 하신 주님을 살아가는 신앙인이다. 직접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 하겠다고 말한 토마스는 고도로 기술화·문명화된 사회에서 지식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다른 모습이다. 우리의 어둠과 실망의 자리, 두려움, 굳게 잠가놓은 문을 뚫고 그분은 한가운데서 평화를 기원하며 우리의 세계를 넓혀 주신다. </BR> </BR>보이는 세계를 너머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시며, 평화와 성령을 주시고 죄 사함과 당신과 함께한 그 구원의 이야기를 선포하라고,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당신으로 인한 부활임을 전하라고 하신다. 지금 우리 한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그분과 함께 살라고 하신다. 그렇게 죽으신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구원을 받아 생명을 누리라 하신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수 있는 은총은 주님이 주신 성령의 선물이다. 그분이 먼저 다가와 보여주시고 믿게 하신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신다.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 고통스런 죽음의 무덤과 일상의 상처, 의혹과 불신의 우리 삶에서 당신 죽음과 부활을 본받게 하여 주십시오. 그 죽음의 자리 한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은 다가오시고 당신을 따라 사는 부활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BR> *이 본문에 나오는 성서구절은 200주년 기념 성서를 인용했음 <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음체 color=red> <IMG src="http://nami2.com.ne.kr/bg5/048.gif" border=0>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red> <B>[영성체후묵상]</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BR>하느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의 의지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BR> <BR>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넘칠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삶은 하느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삶입니다. 우리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BR> <EMBED style="WIDTH: 0px; HEIGHT: 0px" src=mms://218.156.35.199/hymn1/6414.wma hidden=true AUTOSTART="true" loop="-1" volume=0>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