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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때까지, 선용은 지혜, 사람과 하느님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28 조회수393 추천수2 반대(0) 신고

어느 때까지

 

강물은 여전히, 도도히 흐른다.

수 만년 전, 태고적의 그 모습 그대로

 

켜든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기름도 여전히 공급된다.

 

가라지도 등불 못지 않게,

곡식보다 더 무성히 자라난다.

 

누가 감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애초, 사람들의 이 바람이 무모함이었다.

또 어떤, 시류에 눈치 빠른 이들은 이를 두고 어리석다.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아들도 바꾸지 않고 차라리 스스로 못 박혀 돌아 가 버리신 것을.

하느님도 곡식 아끼시어, 여전히 가라지 뽑기를 감행하지 않으시는 것을.

 

하느님께서 과감히 세상을 바꾸지 않으신다면,

강물이, 세상 한탄 아랑곳없이 도도히 흐르듯이,

동서고금, 악이 선과 함께 공존함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악도, 악마도 없는 것처럼 끝없이 믿기 때문에 밑도 끝도 없는 악마들의 극악함에 놀랍기만 하다.

 

하느님은,

세상을 바꾸어 주시기 보다는,

스스로 변하여,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밝혀, 어둠 몰아낼 등불을 주신 것이리라.

 

지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켜든 크고 작은 등불이 세상을 밝혀왔던 것처럼.

 

악마는 아주 작은 등불마저 끄지 못해 혈안이다.

그는 자신의 죄상을 낱낱이 드러내는 빛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나서실 그때-

마지막 등불마저 힘을 다했을 때가 아닐까?

 

07년 11월 18일 4시 28분 37초

기름: 성령의 은총과, 악인들이 끼쳐주는 핍박을 의미

 

 

 

 

 

지혜는 선용

 

세상이 좋아하는 크고, 많고, 대단한 것들로는 천국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부자의 천국문은 바늘 구멍보다도 좁기도 합니다.

 

부잣집 대문 앞에서 헌데를 앓으며 구걸을 하던 거지 나자로만큼 줄이고 줄여야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천국의 법입니다.

이것, 저것, 기상천외의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법과 양심을 벗어나 천국보다 지옥의 법에 친숙한 것이라면, 그 좋은 지능은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재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통치 않은 외곬의 벽창호가 오히려, 천국과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금하신 선악과 같은 것은, 애당초 따먹으려 손을 들지도 못하는 외곬 말입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가 아니면 결코 더 이상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않는 외곬 말입니다.

 

반면, 우리는 항상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파격을 동경합니다.

틈만 있으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것을 모색합니다.

그것이 문명의 발상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하셨고, 잠언이나 지혜서는 지혜를 칭송합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온 우주 만물을 맡기시고, 그들을 이용하거나 발전시킬 지혜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건설하거나, 파괴하며, 문명을 이루어 왔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부합된 천국도, 악마의 뜻을 만족시킬 지옥도 건설하여 왔습니다.

 

생명에 유익 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그 나라의 건설을 도모하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하나 이상을 알지 못하는 순진한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면, 여러 가지를 모색할 수 있는 어른의 높은 지능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재앙이나, 사이비는 하나 이상에 눈을 뜨는데서 시작됩니다.

 

유익과 선을 끼칠 때, 비로소 그의 가치가 드러나며, 지혜가 됩니다.

선용하지 않으면 해악의 원천이 되고, 지혜가 아닌 몰지각이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모든 자원의 선용과 악용을 가름하는 곳입니다.

물과 풀이라는 자원으로 소가 우유를, 독사가 독을 만들듯이..

 

오직, 하나 밖에 알지 못하는,

모든 자원을, 선용 외에 다른 것에 눈 돌릴 줄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천진함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선용이 바로 지혜입니다.

07년 11월 24일 7시 51분 44초

 

 

 

 

 

사람과 하느님

 

유조선이 암초에 부딪쳐, 원유가 마냥 흘러나왔습니다.

청정해역의 푸른 바다가 마냥 오염되었습니다.

바닷가, 깨끗하고, 반짝이던 돌멩이들도 시커먼 원유가 묻어 모두 더럽혀졌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은 차라리 구덩이를 파, 모두 묻어버릴까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바다의 아름답던 돌멩이들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제를 주시고, 그에 깨끗이 씻어 처음처럼 새로 거듭나기를 바라시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시라는 세제에 깨끗이 씻어내지 않으면, 결국은 구덩이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양을 비롯한 수십만의 사람들이 함께 멸망하는 것을 바라시지 않으셨기에 그들의 회개를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회개하여 돌이켜, 자신을 예수님의 피의 세제에 씻어내어야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요나와 같이 죄인들의 회개를 바라지 않을지라도, 하느님은 간절히 기다리고 오래도록 참으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않으시며, 회개하여 돌이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07년 11월 26일 8시 0분 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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