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묵상(默想)의 진짜 목적!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28 조회수939 추천수18 반대(0) 신고




『산 이들의 하느님』
황 미숙 소피아 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37-40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묵상(默想)! 묵상이란 무엇일까?
묵상 이라는 단어가 고급스럽고 거룩하게 느껴져 감히 내 미소한 글들에 묵상 이라는 단어를 떠억 가져다 붙이기엔 하염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부끄럽고 송구스럽고 좀 찔리기(*^^*)까지 하다. 묵상이 무언지도 모르고, 기도조차도 규칙적으로 잘 드리지 않으면서, 거창하게 묵상이라는 단어를 너무 남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솔직히 좀 쑥스럽고 부끄럽기도 하다.


묵상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는, 영성·깊은 사색·깊은 믿음을 갖춘 성직자·수도자들이 맨 먼저 떠오르고, 잘 훈련된 기도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깊은 신앙 체험과 믿음 고백 등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하는 묵상은 성직자·수도자 또는 깊은 신심의 소유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전용어라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 교우들의 생활과 삶 자체 또한 매우 훌륭한 묵상이라고 생각한다. 신분의 상태를 떠나 우리의 생각·느낌·감정·생활들이 주님을 향해 있다면, 우리가 화장실 가는 것을 비롯해 물 한잔 마시는 행위도 참 좋은 생활 묵상이 아닐까 한다.


나는 묵상 이라는 단어를 교과서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내 생활 안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적용해 살아 있는 언어로 대한다. 그래서 묵상한 내용을 부족하면 부족한 그대로 이웃들과 나누고, 서툰 내 모습 그대로 주님께 온전히 봉헌하고 싶다. 그리하여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고, 이웃들 안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


내겐 묵상이란, 마음에 와 닿는 성구(聖句)나 글귀에 머물며,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감정·성찰한 내용과 내가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주님의 시선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 노력을 글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부담없이 기록하는 작업(*^^*)으로 생각하며, 이 과정에서 문장력이나 필력 등 전문적인 문학성이 요구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솔직하게 내 느낌과 생각 등을 기록해, 큰 오해나 착오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에서 형제·자매님들과 나누며 서로 잘 이해하고 공감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묵상 글과 댓글 나눔도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영적인 갈망으로 이해하며, 함께 기도드리는 편한 마음으로 접한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신부님은 「씨앗(Seeds)」에서 묵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신다.

 

    묵상이란 이중의 기능을 지닌 이중 훈련이다.
    첫째, 묵상은 정신과 기억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자신을 반성하고 외적 사물과 사업, 활동과 생각
    그리고 현세의 것들로부터 물러설 수 있게 해준다.


    둘째, 묵상은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방법을 알려 준다.
    이것이 묵상의 진짜 목적이다.
    무엇보다도 묵상은 하느님께 대하여
    끊임없는 사랑의 관심과 신뢰를 갖도록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이 성구(聖句)가 유독 마음에 깊이 와 닿아 한참 머물러 보았다. 현실의 소음들로 머리와 마음이 소란스럽지만, 이 성구에 조용히 머물며 내가 그분 앞에서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말씀처럼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주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있다.
너는 살아있다.
지금 너는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건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건 지나간 과거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든지,
더 이상 과거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 앞에 머무는 자,
그가 누구든 그는 살아있다.
주님 앞에 머무는 자,
그의 지난 모습이 어떠하든
그는 살아있다.


흙으로 빚어져 흔들리고 부수어지는 존재인 당신과 나!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머물 때 비로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생각할수록 참 기쁘지 않은가…?*^^*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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