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30 조회수925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7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Come after me,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Mt.4.19-20)

 

제1독서 로마서 10,9-18
복음 마태오 4,18-22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새벽 묵상 글에도 몇 차례 썼기 때문에 저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뻣뻣한지를 다 아실 것입니다. 뻣뻣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저는 머리를 감은 뒤에 반드시 드라이를 한답니다. 물론 머리카락의 물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뻗치는 머리카락을 누르기 위한 것이고, 남 보기 좋게 가르마를 만들기 위한 것이지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저분한 것 같고, 그런 모습으로 신자들 앞에 선다는 것이 예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새벽 미사 때였습니다.

고해성사를 주고 나서 미사 시간이 되어 제의방으로 들어가 제의를 입고 있는데, 복사 한 명이 유심히 제 얼굴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저는 물었지요.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니?”

그러자 복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왜 항상 머리에 새집을 만들어요?”

저는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었지요. 그러자 복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부님 머리를 보면 항상 붕 떠 있어요. 그게 꼭 새집 같아요.”

신자들 앞에서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서 드라이기로 힘들게 만드는 가르마를 복사는 새집처럼 보인다는 것이지요.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다른 복사에게도 물었습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자 그 복사도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네!”

저는 이런 머리가 깔끔하다고 생각했고, 남들도 이런 머리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안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머리를 지저분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결코 같을 수가 없지요. 문제는 스스로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같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 다른 사람들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 모습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고기를 잡다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그물을 손질하다가도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서 사람들은 욕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 직업을 그렇게 쉽게 버리는가? 어떻게 자기 아버지를 내버려두고서 길을 떠나는가?’ 하고 욕을 해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제자들의 선택이 그 당시에는 비판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지금 볼 때는 가장 훌륭하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우리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맞춘다는 것이 쉽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훨씬 쉬우며, 이러한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주님이 내게 맞추는 것보다 내가 주님께 맞추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요? 혹시 내 의견만을 옹고집처럼 내세우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시다.




미는 걸레질과 당기는 걸레질(천경환)

1996년이니까,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 되어 버렸다. 당시 나는 단기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약간의 용돈이라도 벌어 볼 양으로 쉬는 일요일마다 과천 서울대공원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갈비탕과 육개장 등을 파는 식당이었는데, 주문 내용을 주방에 전달하고 조리된 음식을 손님에게 나르고 식사가 끝난 식탁을 깨끗하게 치우는 등 평범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지만 고되고 지루한 일이었다.

힘든 일과의 마지막은 식당을 구석구석 청소하며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맡았던 일은 의자들을 식탁 위에 거꾸로 올려놓고 식당 바닥을 긴 자루가 달린 대걸레로 깨끗하게 닦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힘겹고 지루했던 터라, 조금 있으면 퇴근하게 되리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건성으로 일했나 보다. 한참 정신없이 서두르며 대걸레를 이리저리 밀고 있었는데, 주인아저씨가 문득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하는 애가 새로 올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해야 하는구나! 대걸레는 미는 게 아니라 당기는 거야!”

말인 즉, 대걸레를 밀고 다니면 대걸레가 지나간 자리에 곧바로 자신의 발자국을 찍게 되어, 기껏 걸레로 밀어서 깨끗해진 바닥이 다시 더러워진다는 것이었다. 걸레를 당기면서 닦아야 자신의 발자국을 비롯한 모든 더러운 것을 제대로 없앨 수 있다는 이야기.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이치지만, 대걸레 자루를 쥐었던 그 많은 아르바이트생 중에 주인아저씨로부터 똑같은 지적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차리기는 참 어려운 법이다. 그것이 아무리 당연하고 자명한 일이라도 말이다. 게다가 그 일에 애정을 갖지 않은 채 어떤 식으로든 끝나기만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어느덧 그때 주인아저씨의 가르침을 잊고 가끔씩 ‘대걸레를 미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그래서 타성에 젖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서두르며 일을 하다가 혹시 일의 진행을 스스로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따금씩 되돌아 보게 된다.
 
 
 
they left their boat and their father
and followed him.
(Mt.4.22)
 

Our Love Never 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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