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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흉내내기<5회> 대성통곡 - 박용식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27 조회수897 추천수8 반대(0) 신고
 

대성통곡


   2001년 3월 28일 수요일. 나는 평일미사를 드리다 말고 성당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고 미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밀어닥치는 슬픔 때문에 터질듯 한 울음을 참고 또 참으며 복음 성서까지 봉독했지만 더 이상 미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나는 신자들에게 이유를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나의 어머니께서 한 달밖에 못 사신다는 연락을 10분 전에 받았습니다. 목이 메어서 말소리가 나오지 않아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 미사를 드릴 터이니 그리 알고 그냥 참석하십시오." 이 말을 끝내고 곧바로 제물 봉헌에 들어갔는데 눈물이 쏟아지고 설움이 북받쳐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울음이 터졌다. 입을 틀어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자들 보기에 민망하고 부끄러워 제대 뒤에 숨었다. 앉아서 한참을울었다. 큰 소리로 울다가 흐느껴 울다가 또 큰 소리로 울었다. 미사에 참여했던 100여 명의 신자들이 따라서 울었다. 모두들 큰 소리로 울었다. 성당은 말 그대로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이 세상 어느 초상집에서도 어느 극장에서도 그 어떤 자리에서도 여러 명이 이렇게 큰 소리로 울었던 일은 없었을 것이다. 며칠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신자들이 미사 후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또 울었다고 한다.


   나는 한참을 울고 난 후에 진정을 하고 미사를 마쳤다. 미사 후에 신자들과 거의 일일이 손을 잡아주며 인사하던 평소와는 달리 부끄럽고 민망하여 바로 사제관으로 직행했다. 곧바로 사도회장과 총무가 사제관으로 따라 들어왔다. "신부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니 얼마나 슬프십니까?" 하며 위로했다. 내가 미사 중에 울먹이며 하는 말이라 잘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 후 어머니께서 3개월 정도 투병하시는 동안 나는 많이도 울었다. 수술을 하시고 목이 타 올라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셔도 물 한 방울 드릴 수 없을 때 나는 울었다. 거즈에 물을 적셔 입에 대 드릴 때 쪽쪽 빨아 드시면서 타오르는 갈증을 호소하실 때 나는 울었다. "어머니 지금 물을 드시면 병이 낫지 않아 돌아가신대요." 라며 물을 드리지 않자 "죽어도 좋으니까 물 한 방울만 마시게 해 달라" 라고 나에게 애원할 때 나는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 앞에서 미사를 드릴 때 큰 소리로 울지는 않았지만 흐느끼며 울었다. 마침내 임종하실 때는 가족들이 다 모인 가운데 울면서 임종 미사를 드렸다.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울고 또 울었다. 찾아오는 수천 명의 문상객들 앞에서, 연도를 드리면서, 미사를 드리면서 한없이 울었다.


   장례미사를 드릴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옆에서 복사하던 동창도 머리를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의 시신을 땅속에 묻을 때는 어머니와 함께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우가 지나고도 며칠을 울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또 울고 있다.


   내 나이 지금 50대 중반이다. 한 인간 안에 눈물이 이렇게 많을줄 몰랐다. 내가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50년 이상 쌓였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인가? 나는 평소에 눈물이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눈물을 흘리는 슬픈 영화를 보아도 나는 눈시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고, 참으로 딱하고 슬픈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흐느끼는 자리에서도 거의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쉽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거나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감정에 흔들리지 앟고 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남자는 그래야 하고 사제는 더더욱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 왔다. 이 얼마나 냉혈동물 같은 차가움이었던가?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 앞에서는 이 모든 생각과 이 모든 가치관이 무너져 버렸다. 어머니를 잃는다니까, 어머니를 잃고 나니까 50년 이상 굳어진 나의 모습이 바뀌었다. 아니 숨어 있던 나의 본모습과 나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나도 남과 똑같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고 감정에 좌우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감추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울지 않는 것이 자랑이 아니고 쉽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 흠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울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얻었을 때는 기쁨이지만 잃었을 대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췌장암 선고를 받은 이후 돌아가실 때가지 그리고 장례를 치른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고 장례를 치른 이후 한동안 많이도 울었다. 이제는 별로 울지 않는다. 아니 울지 않으련다. 하늘나라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어머니, 언젠가는  하늘나라에서 만날 어머니께서도 내가 더 이상 울지 않기를 바라실 테니까.

                                 

              - 박용식 신부 수필집 /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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