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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7.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20 조회수2,029 추천수7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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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0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이사 38,1-6.21-22.7-8

1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2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3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4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5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6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21 이사야가 “무화과 과자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발라 드리면, 임금님께서

나으실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22 히즈키야가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7 “이것은 주님이 말한 일을

그대로 이룬다는 표징으로서,

주님이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8 보라, 지는 해를 따라

내려갔던 아하즈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내가 열 칸 뒤로 돌리겠다.”
그러자 아하즈의

 해시계 위에 드리워졌던

해가 열 칸 뒤로 돌아갔다.
복음 마태 12,1-8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가

하나 생각납니다.

 친한 친구로부터 훈련이

아주 잘되었다는 사냥개

두 마리를 받았습니다.

사냥을 즐기던 알렉산더

대왕은 너무나 기뻐했지요.

곧바로 이 두 마리의 사냥개를

데리고서 토끼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냥개들은 사냥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토끼가 지나가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지요.

알렉산더 대왕은 화가 났습니다.

친한 친구가 자신에게

장난을 쳤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사냥에 돌아온 뒤에

그 친구를 불러서 호통을 쳤습니다.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아무런 필요도 없는 개를 나한테

왜 선물한 것인가?

그대는 내가 우습게 보이는가?”
친구는 알렉산더 대왕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 사냥개들은 토끼를 잡기 위해

훈련된 개가 아닙니다.

호랑이나 사자를 사냥하기 위해

훈련받은 개입니다.”
호랑이나 사자 등의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 훈련된 개들이

 너무나 약해보이고 볼품없는

토끼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단순히 토끼 사냥을

 못한다고 사냥 자체를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개 취급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 역시 이런 모습을

취할 때가 많지 않았을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서

그 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특히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줄 때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겉모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추어진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순간의 감정에

취하지도 않고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을 보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지요.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 따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두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는 아주 못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율법의 모든 계명은 바로

자비와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자비와 사랑을 먼저 생각했다면,

제자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를 봤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에

집중했더라면 주님이야말로

안식일 법을 뛰어넘는 진정한

주인이심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다보니 세상에서

아주 못된 분으로 만들게 됩니다.
자비와 사랑을 먼저 바라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판단을 넘어서

주님의 뜻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

(제임스 오펜하임)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를 생각해봅니다.

"작은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요즘 매일같이 걷기 운동을 합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을 소홀히 하고,

요즘에는 덥다는 이유로 운동을 소홀히 해서

손쉬운 걷기 운동부터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제 저녁에도 저녁식사를 하고서

운동을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 방에 있었던 복장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반바지에 짧은 티셔츠 그리고

 양말도 신지 않은 상태에

 편한 운동화만 신고 나왔습니다.

고민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양말은

신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보통 10,000보를 걷다보니 6Km

이상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양말을

 신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방까지

올라가는 것도 귀찮아서

(날이 더우니 판단도 흐려지고 게을러집니다)

그냥 걸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까지도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힘든 상태입니다.

더군다나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있었는데 귀찮다고

그냥 걸었더니 더욱더 발의

상태가 안 좋아졌습니다.
양말, 신발 안의 작은 모래.

모두 아주 작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것들도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없게 만들게 합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참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별 것 아닌 것이

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이 아니라,

 ‘작은 것도 충실히 해야지.’라는

철저한 마음이 우리의 삶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해 줄 것입니다. 

걷다가 들른 광성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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