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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47) 부르심의 작은 풍경 / 전 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9 조회수1,339 추천수7 반대(0) 신고

 

 

                              부르심의 작은 풍경

 

 

                                                         글쓴이 : 전 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지난 겨울 신학생 피정지도를 위해 의정부에 있는 한마음 청소년 수련원의 피정의 집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사제직을 준비하는 신학생들은, 자신을 교회에 봉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수단을 입는 착의식과 독서직을 받고 나면, 8일간의 제법 긴 피정을 하게 됩니다.

 

4학년을 마치고 사제직에 한발 더 다가가는 대학원 과정을 시작하기 전,

신학생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이 걸아야 할 길을 예수님께 물으며 자신과의 고달픈 씨름을 하게 됩니다.

 

까만 수단을 입은 신학생들이 자신의 내면과 깊은 만남을 하는 이러한 과정은  고승(高僧)이 홀로 사는 깊은 산속의  산사(山寺)처럼 묵직한 침묵이 감도는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해마다 갖는 신학생들과의 이러한 만남은, 사실 제가 피정지도를 한다기보다는 제 자신의 신학생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  성소(聖召)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추스리는 시간으로 귀결되곤 합니다.

 

 

 

 

저는 부르심에 대한 독특한 풍경 하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학생들에게 사제성소를 받게 된 계기를 물으면, 대개는 '어릴 때 미사 복사를 하면서' 또는 '사춘기 진로를 고민하다가' 등을 말하는데, 저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더 어린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기억의 사진 한 장을 꺼내듭니다.

 

어린 시절에 저희 집은 뒷담장 너머로 성당과 이웃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 어느날, 우연히 담장 너머를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까만 수단을 입은 신부님이 석양을 온통 받으며 두툼한 기도서를 들고 뒤뜰을 왔다갔다 거닐면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어린 저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매일 그 시간 해질 무렵이면 담장에 올라 성당 뒤뜰을 서성이며 기도하는 신부님의 모습을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각인된 이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은 언제부턴가 사제가 되고 싶은 그리움이 되어 저의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습니다.

 

 

 

 

신학교 4학년 때 착의식을 하고 그토록 그리던 수단을 처음으로 입게 되었습니다.

그날 어린 시절 기억 속 풍경의 주인공이 되어 시편을 읽으며 신학교 낙산의 오솔길을 거닐었습니다.

 

온몸을 감싸 안은 까만 수단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감내해야 할 미래가 무엇이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날 낙산에서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저는 마냥 행복해했습니다.

 

무지개빛 풍경만을 쫓아 만난 행복이란 실체가 없는 신기루 같아서 이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해 겨울, 세상에서 자신의 죽음을 표현한다는 까만 수단의 의미를 지금 신학생들처럼

8일 피정을하면서 혹독하게 체험해야 했습니다.

 

사제직에 한 걸음 다가설수록, 그 거리만큼 두려움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고 악을 쓰며 마음 밑바닥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집착들.......  .

 

한발을 더 나아가자니 낯선 터널을 들어가듯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는 캄캄하고 답답한 길이고,

물러서자니 지금껏 꿈꾸며 추구해 왔던 사제의 길을 영영 접어야 하는 더 큰 두려움이

배수진을 치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삼사일 동안 식사마저 제대로 할 수 없는 몸앓이를 하며 저는 진퇴양난의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무엇으로 제 길을 깨끗이 보존하겠습니까?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시편 119,9)

 

피정 내내 어둠 속을 헤매다가 한 줄기 희망의 빛처럼 다가온 말씀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살면 말씀의 힘이 나를 사제로 살게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마치 갇힌 물이 작은 구멍이라도 뚫리면 봇물처럼 터지듯,

그 한 구절의 말씀이 남은 피정 시간을 온통 은총의 순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어줍잖은 피정지도자가 되어 그때와 똑같은 피정을 신학생들과 함께 동반하고 있습니다. 늦은 밤 시간이지만 아직 군데군데 성당에 앉아 기도하는 신학생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당 뒤편에 앉아, 사제직을 향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신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어쩌면 그들 중 어떤 이는 내가 그때 겪었던, 뒤로 물러서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싸움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왜 그토록 그 길을 가려고 하는지,

숱한 사람들의 시선을 홀로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그 무게를 알고는 있는지,

외로움을 외로움으로밖에 이겨나갈 수 없는 사제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지,

사제는 계급이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달리 사는 사람이고 그래서 평생을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삶의 깊이를 더해가지 않으면 다시  유빙(遊氷)처럼 떠내려 오고 마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사는 사람인 것을 아는지.... .

신학생들을 바라보며 푸념을 늘어놓듯 나 자신도 대답하지 못할 질문들을 던져 보았습니다.

 

지금껏 살아 온 사제생활을 돌아보면,

마치 담장 위를 뒤뚱이며 걸어가듯  성(聖)과  속(俗),

이상과 현실,

하느님과 세상의 경계선을 서성이며 살아왔습니다.

 

참되고 덕스러운 거룩한 사제의 삶을 살기에는 영적인 힘이 너무나 약하고,

세상 편으로 내려서서 살기에는 이내 담장 너머 거룩한 풍경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어쩌면 사제로 살고는 있지만, 그 어린 시절 담장의 경계선에서 해질녘 성당 뒤뜰의 풍경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지금껏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부르심과 응답이란

한순간에 하느님과 주고받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마치 카메라의 초점을 클로즈업 하듯이 부르심에 맞갖게 자신의 삶의  밀도(密度)를 더해가는 것입니다.

 

신학생들과 함께 한 피정 동안 내 마음 속에 담겨 있는 부르심의 기억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담장 너머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이 내 삶 속에서 좀더 선명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제직에 한발 더 가까이 가는 신학생들에게, 아니 신앙의 삶을 사는 모든 분들에게도

저마다 마음 속에 담긴 부르심의 이야기가 삶 속에서 선명하게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ㅡ <말씀지기>에 실린  편집자 레터 全文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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