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베엘제불이 들렸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1 조회수592 추천수2 반대(0) 신고

<베엘제불이 들렸다>(마르 3,22-30)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오늘 복음을 보면 서로 대립되는 두 세력간에 일어나는 충돌을 보게된다. 즉 예수님과 율법학자들간의 충돌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항상 먼저 시비를 거는 쪽은 예수님이 아니라 율법학자들이다. 예수님은 가만히 계시는데 항상 율법학자들이 문제를 들고 나오고 어떤 트집을 잡고 문제를 일으킨다.

 

언제부터 이런 두 세력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왜 이런 충돌이 자주 일어나는가? 어덯게 하면 서로 싸우지 않고 일치하면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예수님이 활동을 시작하시고서부터이다. 새로운 세력이 출현하면 기존의 세력이 저항을 하는 법이다. 동물들간에도 영토 싸움이라는 것이 있고 세력싸움이 있다.

즉 지금가지 자기가 안전하게 차지했던 영토나 세력이 새로운 힘이 생겨남으로서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받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다. 따라서 기존세력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영역을 고수하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력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세력을 확장시켜나가려고 한다. 확장시킨다는 것은 상대방의 영역을 빼앗는다는 말이다. 이렇게되면 자연히 두 세력간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다가 처음에는 예수님 혼자이셨는데 지금은 열 두 제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시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병자들을 고쳐주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 주셨다. 이 공동체는 새롭게 생겨난 공동체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느 공동체와는 하는 일과 생활하는 것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힘은 예수님으로 부터 나오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공동체로 몰려왔다.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는지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말이 생기게 마련이다. 가만히 있을 때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도 하나의 세력이 형성되고 그 세력이 점차 발전되는 것을 보게 되면 기존에 있던 다른 세력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방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발전을 막으려 한다. 자기들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니까. 그뿐 아니라 자기들에게 방해가 되는 세력이니까. 그래서 없는 말도 만들어 내고 비방하고 모함을 하는 법이다.

 

가까운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대로 그들을 염려해서 그들이 하는 일을 막아 그 어떤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려고 말리고 또 반대편의 세력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힘을 모아서 새로운 세력을 방해한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반대세력이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존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펴주시는 것을 보고 "어떻게 예수님을 없앨까 모의를 하였던" 사람들이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오직 예수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면서 시비 거리를 찾았고 예수님의 공동체가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듯이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왜 그런가? 그만큼 자기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자기의 속마음은 항상 남을 지배하고 싶고 남한테 존경을 받고 싶고 남한테 뽑 내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더 잘되면 자기의 뜻이 이루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결국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느냐?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예수님의 삶의 목표는 병든 인간을 치유시켜 주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게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그들을 위해서 사용하시는데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부터 존경받고 인정받고 지배하려는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삶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만든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마태 23, 5-7)

 

예수님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바리사이들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삶의 인생관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다. 그러니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삶의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에 다라 행동하면 된다. 즉 자기 기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지켜져야 하고 적용되어져야 하는 규칙에 따라 생활하면 된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분명하다. 즉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다 주러 오셨다. 그 하느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알려주기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셨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당신의 모든 삶을 바치셨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봉사하셨다. 즉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말씀을 하셨고 생활하셨고 봉사하셨다.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복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의 목표와 가치관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은 가지자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에 다라 말하고 행동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 모두에게 적용시켜야할 기준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다." 즉 나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 뜻을 실행하는가가 모든 말과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시작한 작은 공동체는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공동체로 자라나갈 것이며 그 세력은 즉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하나의 힘은 점차 발전되고 확대되어 나갈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항상 반대 세력을 만날 것이며 그들과 힘겨운 투쟁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악의 세력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활동을 "예수님께서 미쳤다."하고 방해하고 저지한 것은 율법학자들만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의 형제들이었던 것을 보면 그 반대세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장 가까운 내 곁에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데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며 불일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또한 각자의 모습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즉 내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자 하는 세력과 자기 자신의 뜻을 실행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다. 봉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한 봉사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항상 우리 안에는 이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안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가족과 직장 안에서도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일어나는 법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갈등이나 불협화음이 계속해서 일어나면 마침내 갈라지게되고 서로 망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갈등이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해야 한다.

 

즉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해주시고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아니 기도해야 한다. 나의 뜻에서 하느님의 뜻으로 바뀌는 것이 회개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오늘 내가 회개해야할 내용들이다.

                                                       -유광수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