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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 황사영 `백서` 원본 76년만에 고국 왔다
작성자배봉균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2 조회수246 추천수3 반대(0) 신고
  ▶ 게 재 일 : 2001년 08월 17일 14面(10版)
▶ 글 쓴 이 : 오병상

황사영 `백서` 원본 76년만에 고국 왔다

천주교 순교 성지 절두산에서 2백년전 박해 당시의 정황을 보여주는 유물 전시회가 시작됐다.

서울 합정동 절두산 순교박물관에서 15일 `신앙의 향기, 2백년` 이란 주제로 열린 유물전시회는 신유박해 순교 2백주년을 맞아 기획된 특별전이다.

이번 전시회에선 신유박해의 현장을 기록한 `황사영(黃嗣永)백서(帛書)` 원본, 원로화가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씨의 `성화3부작` 등 로마교황청에서 소장해온 희귀한 유물.작품이 선보여 주목된다.

황사영 백서는 초기 천주교 전래과정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료(史料)인 동시에 많은 논란을 빚어온 문서.

당대의 촉망되는 젊은 학자이자 열렬한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1775-1801)이 신유박해를 피해 충북 제천의 한 토굴에 숨어 지내던 중 한국 천주교의 어려운 사정을 중국(청나라)교회에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백서는 가로 62㎝, 세로 38㎝의 흰 비단천 위에 1만3천3백여 자의 한자가 깔끔하고 정성스런 필치로 쓰여 있는 편지.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의 자수와 처형, 정약종 등 주요 순교자의 열전 등 박해 과정이 소상히 기록돼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한편 황사영은 조선땅에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는 방안을 나름대로 제안하는 과정에서 조선을 청나라에 병합하거나 아니면 서양 군함이 무력시위를 벌여야한다고 주장해 `반민족적` 이란 비난도 받아왔다.

황사영은 백서가 발각되는 바람에 체포돼 서소문에서 능지처참됐으며, 조선조 의금부에서 압수한 백서는 갑오경장 당시 발견돼 조선 교구장인 뮈텔 대주교에게 전달됐다가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게 선물로 바쳐졌다.

뮈텔 대주교가 지시해 만든 백서의 필사본과 동판본은 절두산 박물관에 보관돼 상설전시돼 왔으며, 원본은 76년만의 귀국 전시를 마친뒤 다시 교황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장우성 화백의 `성화3부작` 은 한복을 입은 한국인의 얼굴을 한 성모자와 순교자들을 그린 작품으로 주목된다.

3부작은 `성(聖)모자와 세례자 요한` , `김효주.효임 자매와 강완숙(최초의 천주교 여성회장) 등 여성순교자` , `김대건 신부와 남종삼.유대철 성인 등 남성순교자` 를 각각 그린 작품으로 1백호 이상의 대작들이다.

장화백은 1950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고(故) 장발 화백의 권유에 따라 로마에서 열리는 `성모성년 기념 국제성화미술전` 에 출품하기 위해 이들 연작을 그렸다.

작품은 전시회에 출품된 이후 지금까지 교황청에 보관돼 왔는데, 이번 전시회를 위해 51년만에 모국을 찾았다. 이 작품들도 전시가 끝나면 다시 로마로 돌아간다.

이밖에 `신미년 백서` 로 불리는 `1811년 교황에게 보낸 조선 교우의 서한` 과 `1824년 서한` `1835년 서한` 등 교황청에서 보관해온 다른 문서들도 함께 전시된다.

한편 국내 유물로 호남교회사연구소에서 소장해온 동정부부 이순이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한글 편지` , 이들 부부의 묘소에서 발견된 십자고상 등 다른 박물관.미술관에서 소장해온 귀중한 역사적 유물자료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02-3142-4434.

오병상 기자 <ob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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