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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13)/무의미성에 시달리고 있다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1 조회수551 추천수7 반대(0) 신고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13)

 

그럼 왜 이렇게 고통이 절실하고 견딜 수 없는가? 고통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목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통이 절실한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의미한 고통 앞에서 우리가 견딜 힘이 없습니다. 설령 견딘다고 해도 그나마 무슨 좋은 수가 없기 때문에 그나마 있던 의욕조차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하나 같이 죽기를 청하는 겁니다. 욥도 마찬가지 입니다.

 

 "견딜 수 없는 이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숨통이 막혀 죽어 버려라. 아! 이 원통한 심정을 저울질하고 이 재앙을 달아보았으면 바닷가 모애보다 더 무거우리라! 하느님께서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면,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수 있다면, 제발 손을 들어 나를 죽여 주신다면 차라리 그것만큼 큰 위로는 없으리라."

 

고통의 무의미성 앞에서 분노하면서, 죽기를 청하면서 자신의 생을 저주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자신이 태어난 생은 저주 했지만, 한번도 하느님은 저주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큰 차이입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살할 생각을 안 했고, 그래서 제말 죽여 달라고 청했고, 자기가 태어난 그 날을 저주했지만 하느님은 저주한 적은 없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원망과 불평을 털어 놓았지 저주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인물들과 똑같이 고통의 무의미성 앞에서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통의 저주가 남기고 간 쓰라린 상처들을 쳐다보며 살고 있습니다.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바라보거나 이제 마지막 그 생을 마감하면서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는 부모님의 모습을 쳐다 보거나, 갑자기 떠나버린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 앞에 서 있거나, 그것이 어떤 고통이든 그 고통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입니다.

 

무의미하고 공허하기 때문에 견딜 수 없고 미칠것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의미한 고통의 자리앞에 놓여 있을 때, 하느님 앞에 하는 말은 뻔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 이 시간, 당신이 사랑의 하느님이라면, 자비의 하느님이라면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송봉모 신부님의 강의 테잎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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