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 앞에서 ----- 2006.7.21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1 조회수524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7.21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이사38,1-6.21-22.7-8 마태12,1-8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앞에서 깨어 있는 삶, 그대로 겸손의 삶입니다.
태양 진 세상이 캄캄한 어둠이듯,

하느님을 떠나선 빛도, 희망도, 삶의 의미도, 겸손도 없습니다.

어둠과 허무, 무지의 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오늘 새벽기도 초대송 후렴 말씀처럼

하느님 앞에서, 자비하신 하느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1독서의 이사야서에서

병이 들어 죽게 된 히즈키야의 진실한 기도를 통해서

그의 생전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기도하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했다 합니다.
과연 우리도 죽음을 앞두고 이런 고백의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주님 앞에서,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 온 히즈키야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 말씀도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새삼 하느님 앞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 온 이들의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됨을 깨닫게 됩니다.

옛 수도자들이 목표했던 삶도 늘 하느님 현존 안에서의 삶이었습니다.
끊임없는 기도도 결국은 늘 하느님 앞에서 깨어있는 삶을 목표로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삶, 자비가 분별의 잣대가 되는 삶입니다.
보이는 부수적인 것들을 넘어 보이지 않는 본질을 봅니다.


법을 넘어 사람을,

법 위반의 사실 넘어 사람의 살아있는 현실을 봅니다.


돈의 이해관계를 떠나 살아있는 사람의 긴급한 요구를 우선합니다.
분별의 잣대는 법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법대로 하면 쉽고 간편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자기 안위를 고려한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위이기 십중팔구입니다.

 

법 이면의 살아있는 현실을 충분히 배려해야 하기에

판단에 많은 고뇌가 따르고 분별의 지혜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안식일 법을 들이대며

법 위반을 추궁하는 바리사이들에 대해

주님은 제자들의 배고픈 현실을 부각시킵니다.


오늘 복음,

정말 법관들이 깊이 보고 묵상하며 새겨야 할 진리 말씀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는 말의 뜻을

  너희가 알았다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의 정신은 자비입니다.
실상, 법을 어긴 것이 죄가 아니라 자비를 어긴 것이 죄입니다.


사람을 살리라 있는 법이지 죽이라 있는 법이 아닙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란 말도 있지만,

하느님 눈으로 보면

‘무죄한 죄인들’, ‘유죄한 무죄인들’ 얼마나 많겠는지요!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자비의 화신 예수님이 분별의 잣대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이런 경우 예수님은 어떻게 처신하셨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자문하다 보면 답은 곧 나올 것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 앞에서

생명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를 모시며 주님의 자비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