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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잠 좀 자게 해주소"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1 조회수681 추천수5 반대(0) 신고

                                  

 

                "하느님! 잠 좀 자게 해주소"



  몇 시쯤 되었을까?

‘따르릉’거리는 전화벨  소리에 비몽사몽간에 수화기를 귀에 갖다대었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혀꼬부라진 음성은 한숨 섞인 50대 중반의 남성으로 보였다.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20분이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뜸 첫마디가 “신부님! 하느님께 잠 좀 자게 해주소”라는 것이었다. “그래요. 그렇게 하지요. 그렇지만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느님께 전하지 않겠어요”하고 물었더니 갑자기 설움이 북받치는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한 1∼2분 지났을까, 그는 ○○라고 대답하면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먹었는데도 정신만 말똥말똥하단다. 그래서 하도 답답하여 무례함을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의 돌발적인 전화상담은  새벽 4시께에 가서야 끝이 났다.


○○형제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람으로 심성이 곱고 성실한 신앙인이었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며 교회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사업이 부도나고 집마저 담보로 넘어가 지금은 월셋방에 살아야 하는 무직자가 되었다. 부인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형편이다 보니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녀 중 남자에는 학교를 휴학한 채 군에 입대해 버렸고 막내딸은  가출한(?) 상태라는 것이다. 억장이 무너지고 말문이 막히는 전형적인 IMF 가정 그것이었다.


생활이 딱하고 궁해도 가정이 화목하다면 무엇을 이겨가지 못할까만은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심각한 위기는 가족간의 심리정신적인 병리현상이었다. 또 가정의 풍파가 그들의 신앙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쳐 지금은 본의 아니게 냉담상태이기도 하단다.


무일푼의 무직자로 전락한 집안의 가장은 무기력한 남정네가 되어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그저 한숨만 지을 수밖에 없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부인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의심과 불안으로 의처증까지 일으켜 부부가 이틀이 멀다하고 다툰단다.


생활의 짜증으로  지칠대로 지친 부인도 그저  틈만나면 사네 못사네 하며 앙탈과 한숨으로 잠을 지새운다고 하였다.  사춘기의 막내딸은 갑작스럽게 변화된 가정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곧잘 집을 나간다고 하나 아직은 위험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IMF로 인한 가정의 붕괴가 이렇듯이 심리정신적 병리현상으로 치닫게 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형제의 가정 안에서 재삼 확인하게 되었을 때 참으로 IMF의 암담함을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날 밤의 전화상담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문제의 해결보다 함께 공감하면서 열심히 들어주고 편안한 정서적 안정으로 잠을 잘 잘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조만간에 나의 상담실로  찾아와서 문제 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권하였다.


야밤중에 발생한 전화 속의 만남이 ○○형제에게  많은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었는지, ○○형제는 “신부님! 고맙습니다. 역시 신부님이 최고입니다. 이제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하느님도 신부님의 부탁은 잘 들어주네요. 조만간에 신부님을 찾아뵈면 무엇인가 희망이 보일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면서 미안함과 감사함의 탄복 속에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잠이 싹 달아나 버린 나는 우짜란 말인가?  소파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푸념 섞인 소리로 “나는 누구에게 부탁해서 잠을 청하노.”  에라 모르겠다. 직통으로 청하자.


‘하느님! 잠 좀 자게 해주소’



                           -조옥진 신부(부산교구 가톨릭 심리상담연구소장)

 

                                              

Beethoven - Symphony No. 7 in A Major o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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