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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리스도 공동체에 대한 묵상.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0 조회수478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리스도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공동체 안으로 들어 오신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들어 오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이시다.

사랑의 공동체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중심으로 삼는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는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성령의 힘으로 움직이는

그리스도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공동체인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닮는데 노력한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았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는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도 이런 세례자 요한 보다도 더 고귀하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은 주님 뒤로 사라져 가는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성모님께서도 보호해 주신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부활체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한 지배욕을 지닌 육정적인 신자(신도)는 그리스도를 닮을 수 없다.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공동체에 그리스도적인 생명(살과 피/헌신)을 공동체에다 내어 줄 수 없다.

사실 섬김 보다도 말만 잘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공동체에 죽음의 냄새를 풍기게 한다.

 

'그리스도'라는 말만 들어도 구역질 내는 사람들은

아직 그리스도를 맞이 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신자는 주님의 공동체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공동체 안으로 들어 오지 못하게 막는 신자는

오직 '자기'를 드러 내려 하는 데에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보잘것 없는 사람들 안에 계시면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 성령이 충만히 살아 움직이는 주님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적인 섬김(고난)의 특권을 가지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것이다.

교회의 온실 속에서 자라난 신자들은 그리스도적인 섬김(고난)을 잊기 쉽다.

남들에게 비쳐지는 '그리스도'적인 것들에는 구역질을 담을 수 있다.

그리스도 성령의 힘(성령 기도)으로 정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공동체를 위해서도 먼저 자신을 다듬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을 잘 판단하려는 사람은 그리스도적인(인간적인 것보다) 섬김(고난과 희생이 동반되는)을 배울 수 있는 온실 밖의 [미소한 자]들이 신음하는 공동체에서도 자주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들의 영혼에 대해 고귀함을 깨닫게 되면 생명(사람)에 대해 자기 정신의 힘(작용)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판단과 단죄는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직장생활, 가정등 모든 대인관계에서 불화를 초래하게 한다)

 

또한 부자는 물질의 부자만이 아니다. 마음의 부자, 영혼의 보석을 지니려면 육정의 탐심에 끌려 살아 가는 문화생활의 풍족만은 아니다. 이같은 발상은 언제나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대해 초라하게 그리고 불만족하게 만든다. 물질의 욕심이 많은 배우자와 살고 있다면 가족들과 함께 그리스도 성령이 살아 계시며 움직이는 그리스도 공동체 안의 [미소한 영혼들]에게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느님 사랑의 체험)을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절제되면 그것으로 인해 부유한 사람으로 혹은 만족하는 새 삶으로 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정(혹은 공동체)구성원이 저마다 그리스도를 모신다면 생명의 가정, 생명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이 그리스도께 무릎 꿇지 않고서는

자신은 물론 가족 개개인, 또는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께서는 가정 안에, 공동체 안으로 주님으로 들어 오실 수 없는 일이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미소한 자]들에게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그리스도 성령과 일치(성령기도)하는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날로 새롭게 안으로 모셔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체로 거듭 새로 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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