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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간 목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2 조회수1,240 추천수0 반대(0) 신고

 

목요일 복음을 묵상하면서 내용을 하나로 귀결시키기엔 너무나도 방만한 것 같아서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난감했는데 하나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믿음의 눈인 영안에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은 어느 종교를 불문하고 믿음에 대해 아주 중요시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보신 천계의 세계도 단계가 있듯이 우리 사람도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 믿음의 정도가 다른 것은 왜 그런지 참 많이도 예전부터 고민한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지만 죽음은 누구나 경험하지 않은 세계입니다. 인간은 경험하지 않은 세계에 대해 누군가가 말을 하면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치적으로 보면 당연합니다.

 

우리 인간은 눈이 있기 때문에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런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육안이라는 표현 말입니다. 이 육안이라는 단어는 종교와 상관없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냥 눈이라고 하면 되지 왜 육안이라고 했을까요?

 

신앙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육안이라는 것은 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만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안은 다릅니다. 영적인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들 믿음이 깊다, 깊지 않다고 말할 때 그 믿음의 척도가 과연 무엇일까요? 단적으로 말하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영안이 맑은 사람은 같은 말씀이라도 잘 이해를 할 수가 있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천계의 이야기가 잘 와 닿을 수가 있습니다. 설사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인간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라고 생각해 그런 영역까지도 하느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만이 하느님의 말씀이 온전히 말씀으로써 자기 몸에 육화될 수가 있습니다. 영안이 열려 있는 사람에게만 이게 가능할 겁니다.

 

우리의 눈도 사람마다 시력이 차이가 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도 눈을 어떻게 관리를 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하나의 요소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안도 그럴 겁니다. 영안을 맑게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할 겁니다. 영을 맑게 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으로 영혼의 때를 씻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어떤 신부님이라고는 밝힐 수 없지만 한 신부님께서 언제 한번 강력하게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반신자들한테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바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성당에 미사를 하러 오는 건 죽은 송장이 미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정말 끔찍했습니다. 근데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근데 이때 신부님께서 하신 또 하나의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건 사제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신부님께서 사제인 신분으로서 그런 말씀을 해 주신 것에 대해 정말 한편으로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좀 더 신부님의 말씀을 부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미사, 기도 이런 것은 믿음을 성장하는 데 중요하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게 아니라고 합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중요한 요소가 되려면 그 밑바탕에 바로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바탕이 되지 않은 신앙생활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말씀입니다. 물은 하느님의 은혜라고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이걸 잘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이런 말씀을 신자들에게 잘 안 하신다는 것입니다. 잘못 이해를 하니 답답하기도 하고 또 곡해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말씀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솔직히 고백하면 개종한 후에는 그냥 미사 참례 이런 것에만 초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신부님의 그런 말씀을 듣고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개신교에 있을 땐 성경 구절도 장, 절까지 토시 하나도 빠드리지 않고 암송을 했는데 지금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서 참으로 반성을 많이 합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오늘 복음을 한번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과 이야기를 하시는데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완전 딴 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바로 유다인들의 영안이 닫혀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육적인 말씀으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이야기하십니다. 자기들이 이해를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시니 예수님을 마귀 들린 사람으로 취급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들의 당시의 사고관을 이해를 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표현을 하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이 말씀을 듣고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하면서 의아해 합니다. 실제 여기서 쉰은 쉰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당시 유다인들에게는 보편적으로 의인들은 나이 들어 죽기 전에는 천상계를 내다본다고 하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이도 아닌데 천상계를 내다보았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어처구니가 없는 말로 여겨지니까 빈정대는 말투로 응수를 한 것이라고 200주년 성경주해에 나옵니다.

 

실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음과 유다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죽음은 다른 성질의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술 더 떠셔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다고 하시니 그 말이 무슨 말 뜻인지 몰랐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때 영안이 열려 있었다고 한다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돌을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겠습니까? 바로 이것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 있지 않아 하느님을 바로 눈 앞에 보면서도 하느님을 향해 대적하는 꼴이 되는 신앙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를 않으려면 하느님을 알려고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호세야 예언자가 말을 합니다. “내 백성이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말씀으로 영을 맑게 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가 있다는 걸 오늘 복음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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