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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19.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19 조회수1,771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18, 35-43(연중 33주 월)

 

오늘 <복음>은 예리고의 눈먼 거지(바르티메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눈 먼 이가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그냥 길가에 앉아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른 이들의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을 쓰듯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 39)

 

그분이 지닌 메시아의 권능을 믿고 부르짖었습니다.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에게서 나온다는 <이사야>(11, 1) 예언서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가 가까이 오자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 41)

 

예수님께서는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유도하고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물으십니다. 곧 당신께 대한 믿음을 묻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첫째는 믿음으로 청하는 일이요, 둘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청하는 일입니다. 곧 진정 청해야 할 바를 청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말합니다.

진정 원해야 하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는 이미 성인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는지 빤히 아시지만, 우리 자신이 그것을 알도록 우리의 진정한 원의를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대한 믿음을 보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당신께 대한 진정한 믿음으로 청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께 대한 신뢰와 의탁을 원하십니다.

거지 장님은 신뢰와 의탁으로 청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 41)

 

대체 무엇을 보아야, 다시 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보다(anablefo)라는 단어는 위를 쳐다보다’, ‘새로운 것을 보다’, ‘다시 보다’, ‘시력을 회복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이 눈을 뜨기 위해서는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위에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될 때, 비로소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분의 사랑을 보는 눈이 다시 보는 눈이요 새로운 눈이요 영적인 눈인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눈을 치유 받는 것을 넘어서, 영혼의 눈을 뜨는 일입니다.

그런데 눈이 멀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물론,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혹은 주위에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왜 눈을 뜨지 않을까?

 

그것은 사실, 눈을 감고 있는 것은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보지 못할 것입니다. 곧 눈을 뜨고 싶어 하지도, 눈을 뜨려고도 하지 않기에,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어둠 속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믿음다시 보게 하고 구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8, 42).

그러니 이제는 보려고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물질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이제는 믿음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는 일이요, 지금 우리의 길을 동행하고 계시는 그분을 보는 일입니다. 곧 사랑을 보는 일, 빛을 보는 일입니다.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이처럼, 빛의 세계로 나아감을 말해줍니다. 그는 이제는 길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동행하시는 주님을 따라따라나섭니다. 육적인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축복을 입어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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