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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경받는 삶보다 더 기쁜 것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04 조회수699 추천수11 반대(0) 신고

5월 4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요한 6, 44-51)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를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44절)

 

프란치스코 성인을 이끌어 주신 주님에 대하여 묵상하고 싶었습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텍스트는 글자 그대로 '완전히 미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래에 소개하는 텍스트는 내용이 일반적인 사람의 기준과 감각에 완전히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완전히 다른 기준이란 십자가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기쁨은 존경받는 삶, 특별한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 뛰어난 지식과 성취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이와는 전적으로 다른 완전한 기쁨을 내세운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 성인은 페루지아의 레오 형제와 함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로 갔다. 때는 겨울이었고 극심한 추위가 그를 몹시 힘들게 했다. 성인은 조금 앞서 걸어가고 있던 레오 형제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레오 형제, 프란치스코의 작은 형제들이 이 지역으로 와서 열성적인 신심과 거룩한 덕행으로 훌륭한 모범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 안에 완전한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렇게 기록하시오!

 

프란치스코 성인은 좀 더 걸어가다가 두 번째로 레오 형제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레오 형제, 작은 형제들이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다리를 절고 다니는 사람들을 바로 걷게 하며, 악마들을 몰아내고, 앉은뱅이들을 일어서서 걸어가게 하고, 벙어리들을 말하게 하며,--- 무엇이 더 있을 수 있을까?--- 그래,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자들을 다시 살려 낸다 하더라도, 그 안에 완전한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고 그렇게 기록하시오!(중략)

 

사부님,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 완전한 기쁨이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자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약 우리가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에 도착하면, 우리는 비에 젖어 있을 것이고 추위로 얼어 있을 것이며 온갖 먼지들로 더렵혀져 있을 것이고 배가 몹시 고플 것이오.

 

그런 상태로 어느 한 집 문을 두드릴 때 문지기가 화를 내며 "너희들은 누구냐?"라고 물을 것이고, 우리는 "당신의 형제들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오.

 

그러면 그는 "말도 안되는 소리! 너희들이 무슨 내 형제란 말이냐? 너희들은 세상을 속이는 사기꾼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훔쳐 가는 도둑놈들이다. 어서 빨리 꺼져라.!" 라고 대답할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우리로 하여금 눈이 내리는 밖에서 젖은채로 추위에 떨면서 밤이 깊도록 기다리게 할 것이오.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가 흥분하지 않고 그에 대해 어떤 나쁜 말도 하지 않고 견디면서, 문지기가 우리를 올바로 보았고 하느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런 말을 하게 하셨다고 겸손과 사랑으로 생각할 때, 레오 형제여, 바로 이 안에 완전한 기쁨이 있다고 기록하시오.(중략)

 

그리고 레오 형제여, 이러한 것에서 나오는 결론을 들으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모든 은총과 선물에는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것들이 들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고통, 불의, 치욕, 궁핍을 자유의사로 견디어야 하는 것들이 들어 있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므로 우리는 참으로 우리 자신을 자랑해서는 안 되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소. "하느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면, 여러분은 왜 모든 것이 마치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래한 것처럼 자랑합니까?"

 

슬픔과 고난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것이므로 자랑할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소.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소.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영예와 영광이 있을 지어다. 아멘

 

        

        <영적 삶의 샘/요셉 봐이스마이어 외, 전헌호 신부님 옮김> 편집

 

 

지난 토요일에 지도 신부님을 찾아 뵙고, 제 영신사정을 말씀드리고 방향제시와 격려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어서 눈물 방울을 뚝뚝 흘렸습니다.

 

역시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삶으로의 균형을 정말 세련(?)되게 짚어 주셨습니다. 제 자신이 묵상방에 글을 올리는게 지나치지 않은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리며 지금보다 절반정도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노라고 말씀드리자, 신부님께서 "방향이 약간 기울어진 느낌이다.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제게 이런 것을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신부님의 지도 말씀을 통해 더욱 확연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중심에서 약간 빗나가려고 할 때, 주님은 저를 이끌어 주십니다.

 

어린이 날을 맞으면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희 손녀딸인 카타리나는 갓 세돌을 지났습니다. 열흘 전 쯤에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른들이 카타리나를 배려하지 못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엄마가 여기 저기 주사기를 꽂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카타리나가 놀란 모양입니다. 그 후로 입을 딱 다물고 어색하게 빙그레 웃음만 지을뿐 .... 확연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린이 집에서도 그렇게 명랑하던 카타리나가 도통 말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픕니다.

 

카타리나가 소화하기에는 병원의 그 상황들이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저도 어렸을 때 겁쟁이였기 때문에, 카타리나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제가 카타리나보다 훨씬 자란 십대 후반에도 집안의 어려움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한 때, 말을 잃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카타리나의 심정을 더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섬세한 배려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의 상처의 심각성은 많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신원식 신부님께서 "어렸을 때, 상처를 받은 부분은 자라지 못한다. 나무가지가 잘리면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카타리나의 상처를 풀어주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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