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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7) 밭으로 간 신부 / 김귀웅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24 조회수1,338 추천수14 반대(0) 신고

 

                   <밭으로 간 신부>

 

                                            제주도 신창성당 김귀웅 주임신부님

 

저에게는 밀짚모자가 하나 있습니다.

평범한 밀짚모자에 노란 해바라기 꽃을 몇 송이 붙인 것인데, 꽤 여러 해 전부터 쓰고 다녀서 저를 아는 분들은 다 그 밀짚모자와 저를 연결시켜 생각할 정도입니다.

 

화창한 어느 날 어린이 미사를 성당 마당에서 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 모자를 쓰고 미사를 드렸습니다.

 

저의 모습을 본 어느 꼬마가

"꼭 농부같다!" 라고 하더군요.

 

그 즉시 나온 저의 대답은

"하느님도 농부시란다!" 였습니다.

 

시골에서 살게 된 요즘이야말로 그 밀짚모자가 제격입니다.

얼마 전 따스한 봄날에 생활한복 차림에 밀짚모자를 쓰고 어깨에 괭이를 걸치고서 신자들이 모인 밭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모두들 활짝 웃으시며 반가워 하셨고 덧붙여

"신부님. 진짜 농부같수다!" 라고들 하셨습니다.

 

농사짓는 시골 신자들 가운데서 지내면서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는 오늘 복음 말씀은 참 정답게 다가옵니다.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풀을 뽑고 그리고 거두기까지 온갖 수고에 굳은살이 박힌 손을 가진 농부들을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틀림없이 "여러분도 나의 아버지와 같은 농부이시니 복이 많습니다!" 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과 수녀님들은 농번기가 되자 첫 시골 생활을 하는 저에게 걱정의 말을 먼저 건네셨습니다. 날이 좋으면 다들 밭에 나가 일하느라 주일에도 성당이 텅 빈다는 것입니다.

 

지난 해 어느 주일 교중 미사에는 열 두 명만 참례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일이나 성당에 무슨 행사가 있는 날에는 비 오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아니, 하느님 아버지와 같은 농부인 신자들이 이렇게 하느님을 종종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당신 안에 머무르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일하느라 하느님을 찾지 않는다니.....

그러고도 좋은 가격에 밀감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하지만 수확 때가 되면 농부들의 심정은 다른가봅니다.

바로 그날 수확해야 할 작물은 하루만 넘겨도 헐값에 상인에게 넘겨야 하니, 바쁠 때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일해야 하고, 주일도 휴일도 없이 캐고 따고 다듬고 포장해서 보내야만 합니다.

 

하느님이 싫고 성당이 싫어서가 아니라 농촌의 일이라는 것이, 삶이 그런 것이니 같은 농부로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해하셔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신부로서 농사짓는 신자들이 하느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새로 씨앗을 뿌리는 밭에 제가 찾아가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성수를 뿌리고 축복해주겠다고 신자들에게 공표했습니다.

첫 수확을 할 때에도 밭에 찾아가 그간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리며 함께 기도드리자고 했습니다.

 

"신부님,엄청 바쁘실 겁니다" 라는 사목회장님의 말에 희망을 겁니다.

신자들이 성당에서뿐 아니라 삶안에서 언제나 하느님 안에 머무는 삶이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농촌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의 애로사항들이 느껴지면서도 도시의 성당과는 또 다른 훈훈함과 인정이 느껴집니다.

과일농사라는 거 특히 더 그렇습니다.

수확의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값도 제값을 못받지만  과일의 질이 떨어지고 버리게 되는 것이 많답니다. 제 막내 동생도 공무원 생활 접고 포도원을 사서 농사짓다가 얼마 전에 팔아버렸습니다. 노동력이 필요할 때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수확기를 눈앞에 두고 포도알이 퉁퉁 불어 터져서 못쓰게 되는가 하면, 다 지어놓은 농사를  태풍의 강타로 아예 망쳐버릴 때도 있습니다.

 

농사란 하늘의 처분에다 맡기는 것일뿐 아니라 한꺼번에 닥치는 수확기에는 사람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속이 바작바작 타는 농군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바쁠적엔 갓난아기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 부득불 친척들, 친구들에게까지 구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지금 농촌엔 일손을 구할 수가 없어 죽으나 사나 식구들끼리 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농사는 때를 놓치면 낭패를 하고 맙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신부님이 밭으로 가셔야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신자들을 만나고자픈 신부님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밀짚모자 쓰고, 개량한복 입고, 괭이 메고서 밭으로 가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신부님!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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