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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신비의 문 - 8. 2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1 조회수35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1.8.21 연중 제21주일

이사22,19-23 로마11,33-36 마태16,13-20

 

 

 

 

 

신비의 문

 

 

 

점점 신비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인간다움은 바로 살아있는 신비감각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 따라 지음 받은 인간만의 축복이요

온전한 인간의 실현은 신비가가 되는 데 있습니다.

 

20세기의 신자는 좋은 신자만으로는 부족하고 신비가가 되어야 한다는,

모두가 신비가로 불림 받고 있다는 신학자 칼 라너의 말이 생각납니다.

 

잘 들여다보면 도대체 세상에 신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주의 신비, 천체의 신비, 존재의 신비, 물질의 신비, 생명의 신비,

자연의 신비, 인체의 신비, 신앙의 신비, 사랑의 신비 등 끝이 없습니다.

‘모두가 은총이다’ 대신 ‘모두가 신비다’라 말할 만합니다.

과학자든 의사든 깊이에 이르러

신비에 무릎을 꿇고 겸손해 지는 경우 비일비재 합니다.

 

배 농사에 최선을 다했는데 발생한 적성병에

‘도대체 농사는 알 수가 없어요.’ 말하는 한 수도형제의 말에서도

농사 역시 참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도와주셔야 하는 신비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서 깨달아가는 삶의 신비요

신비에 대한 깨달음과 더불어 깊어져 가는 겸손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신비의 문’입니다.

새벽에 활짝 열린 수도원 정문에서

성모자상과 배경의 불암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

수도원 정문이 ‘신비의 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문이다’ 바로 하느님께 이르는 신비의 문임을 천명하신 주님이시오

바로 수도원 정문은 주님의 신비의 문을 상징합니다.

 

수도원 신비의 문을 들어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참 나를 만납니다.

수도원 문만이 신비의 문이 아니라

도처에 있는 모두가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께 이르는 신비의 문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척박한 땅위에 청초하게 피어난 달맞이꽃 역시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는 ‘신비의 문’입니다.

신비의 감각을 키워주고

‘신비의 문’을 열어주는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오늘 여기 수도승들의 새벽 성무일도 초대송 후렴과 더불어

활짝 열린 하느님 신비의 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신비체험이 우리를 살게 하는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찬미의 사람은 그대로 신비의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할수록 신비가가 되고

신비가가 될수록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이 목숨을 다하여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 이름 부르며 두 손 치올리리이다.”

 

하느님 찬미에, 하느님 사랑에, 하느님 탐구에 목숨을 걸고 사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하십시오.

 

신비의 문 수도원 정문을 통과해

하늘나라 미사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행복합니다.

수도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미사전례를 통해

아름다운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하십시오.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불행의 근원입니다.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가장 모르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아무리 알아도 하느님을 체험하지 않으면 하나 쓸모없습니다.

예전 로마에서 어는 수도신부님의

'하느님을 터치(touching God)'해야 한다는 열정적 강의에

공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영적오관 활짝 열어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아 알 수 있도록

간절히 찾으십시오.

하여 주일 아침마다 바치는 다음 시편기도입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여러분 역시 하느님이 목말라 이 생수가 샘솟는 미사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부만 해서 신학자가 아니라 끊임없는 기도로 하느님 신비에 정통할 때

비로소 신학자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바로 이런 신학자의 모범입니다.

하느님의 신비에 감격한 사도 바오로의 하느님 찬미가가 감동적입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힘듭니까?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다.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담을 받을 일이 있습니까?”

 

 

이런 신비를 깨달아 갈수록 깊어지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응답이요 겸손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정말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체험한 대신비가요

다음 말씀이 그 신비체험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for him are all things).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To him be glory forever. Amen).”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신비를 해명하는 신비의 열쇠가

하느님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느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향하여 존재하는

세상 만물입니다.

하여 세상 만물이 조화와 균형, 질서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비를 묵상하십시오.

 

하느님의 신비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하느님 신비의 결정적 표지가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는 우리 믿는 이들의 원형이자 모범이요 대변자입니다.

믿는 우리 모두가 또 하나의 베드로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믿는 이들 모두가

당신의 신비를, 당신의 정체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다음 주님의 질문은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은 어려울 것 없습니다.

정답은 이미 시몬 베드로가 알려주었습니다.

그대로 내 진심을 담아 고백하는 것입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런 고백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의 신비에 이르는 길도 없습니다.

 

고백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성경의 언어는 대부분 과학언어가 아니라 고백언어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 믿음의 고백, 희망의 고백 언어입니다.

 

이 고백의 삶이 깊어지면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그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도 깊어집니다.

 

바로 우리가 매일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가

참 좋은 주님의 고백 시간입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마음 깊이 주님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할 때

마음 안에 또렷이 떠오르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느님의 얼굴입니다.

 

 

‘참 나’의 신비를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신비는 참 나의 신비와 직결됩니다.

우리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인간신비의 열쇠는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아야 나를 알 수 있고 마침내 그리스도가 참 나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없는 참 나의 발견이나 실현은 환상입니다.

베드로를 통해 당신의 정체를 새롭게 확인 하신 주님은

감격에 벅차 베드로에게 축복을 가득 내리십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참으로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축복입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 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또 하나의 베드로인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축복입니다.

우리 역시 베드로입니다.

바로 이게 참 나의 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의 바위 같은 인격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천국의 열쇠와 더불어 매고 푸는 권능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바로 이 약속이 고스란히 실현되는 미사 시간입니다.

 

누구나 지닌 천국의 열쇠인데 지니고도 몰라 천국을 못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눈’에만 보이는 내 지닌 천국의 열쇠요,

우리 역시 사랑의 용서로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지금 여기서 자유로운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보고 감상하라고 주어진 인물이 아니라

우리 역시 베드로임을 깨달아 참 나를 살라 주어진 은총의 표지입니다.

 

1독서의 주님께서 당신의 종 엘야킴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바로 베드로는 물론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옥좌가 되리라.”

 

우리 모두 각자 주님을 닮아 ‘참 나’ 되어 제자리의 삶에

충실할 때 가톨릭교회 집안에 영광의 옥좌가 된다는

참 영예롭고 고무적인 말씀입니다.

 

 

신비 중의 신비가 미사전례의 신비입니다.

 

각자 지닌 하늘나라의 열쇠로 신비의 문을 통과해

하늘나라 미사잔치에 참석하여 하느님을 뵙고

그리스도와 함께 참 나 되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로 응답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어서와 하느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목청 돋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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