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우리의 참 얼굴을 가리고 있는 곳에서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5 조회수612 추천수6 반대(0) 신고

4월 15일 성토요일 (마르 16, 1-7)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4절)

 

무덤을 막은 돌은 삶을 방해하는 장애의 상징이다. 돌에 짓눌려 도저히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과거의 짐일 수도 있고 숱한 생채기들일 수도 있어서 우리가 다시 일어나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게 막는다.

 

그것은 우리를 마비시키는 심리적 억압일 수도 있다. 때로는 미래의 사건들이 돌처럼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상담이나 시험이나 어려운 수술을 앞두면 불안해진다. 돌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 때로는 어떤 특정인일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힘이 세다. 그 곁에서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우리를 조이고 막아선다. 우리 모습 그대로 있게 놔두질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무지막지한 호통소리와 파괴적인 힘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 그들은 돌과 같아서 우리 안에 꽃피울 삶을 저해한다.

 

부활이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돌을 치우는 것이다. 삶을 방해하는 짐들을 밀쳐내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편하게 숨쉴 수 있다. 어느 한순간 돌이 느껴지지 않는다. 천사가 밀쳐낸 돌 위에 승리자처럼 앉아 있다.

 

돌은 죽음에 승리한 삶의 표징이다.그것은 무덤이 열리고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 나타났음을 상기시켜 준다. 어떻게 하면 돌이 주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하고 대화도 숱하게 나누었으리라. 하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이런 때 갑자기 우리 삶에 천사가 나타난다. 어떻게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사이, 돌은 이미 치워져 있었고 우리는 다시 생명을 느낀다.

 

어떤 이는 돌심장이다. 그들은 감정에 대해 아주 폐쇄적이어서 마음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차디차고 삶에서 소외되었다. 무덤을 막은 돌 너머에는 시체가 썩고 있다. 라자로 이야기에서 돌무덤 앞의 돌은 관계의 단절을 상징한다.

 

돌 저편에 누운 사람은 산 사람들과 관계맺지 않는다. 관계가 단절되면 사람은 부패하고 '냄새가' 가 나기 시작한다.(요한 11, 39) 예수의 사랑이 돌을 파고 스며든다. 그 사랑은 너무 강해 돌을 뚫고 라자로와의 우정을 회복시키기에 충분하다. 사랑은 무덤속까지 스며들었다.

 

죽은 이를 무덤속에서 불러내고 묶었던 띠와 수건을 풀어준 것은 사랑의 말씀이었다. 예수께서는 사랑의 말씀으로 불안과 슬픔의 모든 사슬에서, 우리의 참 얼굴을 가리고 있는 띠와 수건에서 우리도 풀어주고 싶어하신다.

 

사랑의 말씀이 우리를 무덤에서, 우리의 참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든 것에서 해방시킨다.

 

라자로의 죽은 심장을 뚫고 들어가 새 생명을 일으킨 것은 바로 예수의 사랑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돌을 치워줄 천사를 보낸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죽음의 어둠 속까지, 부패와 마비의 죽음 한복판까지 스며든다. 아버지의 사랑이 당신 아들을 일으켰다.

 

이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공포와 마비의 돌무덤에 갇혀 버리면 아버지는 우리에게도 당신의 천사를 보내신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가둔 무덤의 돌을 치우고 우리에게 새 삶을 일깨울 것이다.

 

         

               <부활의 기쁨 백배 맛보기/ 안셀름 그륀> 편집 정리

 

 

2004년도 부활절 무렵에 "삶을 방해하는 돌" 이란 제목으로 올렸던 글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