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월 21일 『야곱의 우물』입니다 - 배 오른편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21 조회수606 추천수13 반대(0) 신고
     
    부활 팔일축제 내 금요일 - 배 오른편  
    
    
    [요한 21,1­-14]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 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 오너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 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황순찬 (송파정신보건센타) - 
    
    
    신경이 곤두서서 잠조차 청할 수 없는 밤, 베드로는 과거 자신의 직업
    이었던 고기잡이라도 하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뒤따라나서는 동료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이 날 때부터 무언가 건져올
    리고 잡아 당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양 처연하게 느껴진다. 
    
    몇 해 전 생계가 어려워 한동안 젓갈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물 작업과 젓갈 버무리는 일로 몸은 많이 고됐지만 꼬박 꼬박 집에 생활비를 대고 퇴근 후 아이들 간식이라도 사들고 갈 수 있어 마음은 정말 편했다.
    또 그렇게 번 돈으로 학업을 마치고 사회복지사가 된다는 목표가 있어 가을철 하루 14시간의 노동도 피곤할 줄 몰랐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가 되고 나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이 서른일곱에 변변한 직장 경력도 없는 신참 사회복지사가 들어갈 만한 곳이 쉽게 찾아지지 않았고 가방 속에 몇 장의 이력서를 든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더 초조해졌고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스스로 위축되었다.
    저 산만 넘어가면 행복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악착같이 갔으나 산 너머에서 닥친 전보다 더 막막한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 심경을 아내와 어린아이들에게는 내색할 수가 없었다.
    늦은 밤, 자리에 앉아 곤히 자고 있는 처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 순간 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다시 젓갈 공장에 갈 생각을 했다. “그냥 그렇게 살까? 몸은 고되겠지만 식구들 굶기지는 않겠지….”
    내 자신 왜 사회복지를 하려고 했는지, 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 곁으로 가려고 하는지 원래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숱한 밤 나는 당장의 먹고 살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건져올릴 수 없었다. 꽉 막혀 있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외치는 그분의 소리(“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아라!”)를 나는 듣지 못했다.
    
    저 산만 넘어가면 
    행복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악착같이 갔으나 
    
    산 너머에서 닥친 전보다 더 막막한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오늘부터 열흘간, 송파정신보건센타에 계신 황순찬 사회복지사 님의
    묵상글입니다. 신부님의 말씀도 새콤달콤하지만, 평신도가 써내려간
    묵상글은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처럼, 앗! 의 이야기처럼 느껴
    집니다.
    
    윗글의 한 줌을 붙잡으며 얼마나 많이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답니다. 제가 바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 글을 읽으시는 벗 님들 중에도 저와 동감을 하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되어집니다.^ ^
    돌아가신 친정어머님께서, 힘드실 때마다 말씀하시기를... '속고, 또 속아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뜻이 무엇인가 했는데, '쉰'이 되니... 한 마디 속에 담겨진 인생사의 모든 일들이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저 산을 넘으면 파랑새가 있다 하기에 달려가봤건만...
    새벽 잠이 많은 안나 아지매는... 쏟아지는 새벽잠이 몰려올 때면..이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내가 왜 이 땅에 왔던가, 여기 왜 이러고 서 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때문에~!... 라는 수없는 외침들이 가슴 속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가족들 두고, 고국을 떠나 올 때에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주어진 현실의 상황을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안나 아짐입니다.
    이른 새벽에 출근도 해봤고, 늦은 밤에 돌아오기도 했었지만.. 밤을 새우며 일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더구나 말이 안통하는 이 나라에서... 나의 운신의 폭은 회사와 직장 그리고 성당뿐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답답하면 친구들을 만나서 쇠주도 한 잔하며, 밤을 지 새우고 이야기도 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순간순간, 달려서 갈 수 만 있다면... 내가 태어난 그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옵니다... 그 누군가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늦은 밤, 자리에 앉아 곤히 자고 있는 처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 순간 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다시 젓갈 공장에 갈 생각을 했다. “그냥 그렇게 살까? 몸은 고되겠지만 식구들 굶기지는 않겠지….”
    내 자신 왜 사회복지를 하려고 했는지, 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 곁으로 가려고 하는지 원래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숱한 밤 나는 당장의 먹고 살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건져올릴 수 없었다.
    
    황순찬 님의 마음이...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밥 세끼 먹고 살면 될 것을... 봉양할 어머님이 계신가, 남겨줄 자식이 있는가,
    무엇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오래전, 남부순환도로를 달리다가 예술의 전당 앞에서 길어지는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때면,외마디로 튀어나오던 화살기도가 시작됩니다.
    
    주님, 제가 잘 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잖습니까!
    주님,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요...
    
    
    네...그랬습니다...
    더더 말고 덜도 말고 딱! 만 5년이란 세월을 낚게 하셨습니다...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고 삶의 현장을 달려온 앗! 나를, 도로에서 운전을 하게 하시며,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갈고 닦여지게 하신 그분이십니다.
    그리고는... 5년이란 세금보고서를 사용하셔서... 미국이라는 땅으로 순조롭게 건너오게 하셨지요...
    그렇게 오고 싶었던 나라,... 20대에 꾸었던 꿈이 마흔이 넘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이 나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보았습니다.모든 것들이 그분의 계획과 안배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음을 태평양을 건너오며 그제서야 깨달은 앗! 나 아지매.
    그러나, 또 다시... 광야길에서 부르짖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주님께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고 있습니다..
    
    꽉 막혀 있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외치는 그분의 소리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아라!”)를 나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저는 들을려고 노력을 합니다...
    들을 수 있기에, 이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실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며 오늘도 야곱의 우물과 함께 인터넷 바다 
    한 귀퉁이에서 이렇게 삶을 조잘거리고 있습니다. 
    
    들을 수 있기에, 남편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나의 삶을 또 달궈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나를 이 땅에서 적응케하기 위하여 직장 을 갖게 한 것도 압니다.
    혹 그가 먼저 떠나게 되면, 이 땅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기에.../그리고, 시민권이라는 것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장의 종이 쪼가리를 주님은 어떻게 사용하실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나를 이렇게 갇히게 하심은... 어느날 비상을 위해서라고, 준비되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수 있습니다.
    친정어머님이 떠나셨을 때에... 낙동강 오리 알이 되었던 안나를, 설마 주님께서 태평양의 오리 알로 만드시지는 않으시겠지요..*^^*
    
    [필립비 3장 12절-14절]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오래전, 주님께 잡힌바 되던 그날, 
    
    그분의 사랑에 감격하여...수많은 고백을 드렸던 그 날의 다짐들을 잊지 않으려고, 머나먼 길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저는 알 수 없으나, 복음의 말씀을 붙잡으며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이 누구신지를 알기 때문에...
    제 삶이 빨리 편하게 되지 않는다해도...
    저는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갈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동이를 잠시 내려놓는다 해도... 기회가 오면 다시 복음을 나누기 위해서 올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은,지금으로써의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이 몸도, 마음도, 살 수 있고 시모님을 돌봐드려야할 때인 것을 알기에 이런 저런 끈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영어공부에 전념을 해봅니다.
    주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제 어찌 이 모든 일들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될 뿐이옵니다...라고 고백하며, 물동이를 마치면서, 동화 '파랑새'에 관한 글을 나눕니다.
    
    파랑새를 찾아서 
    
    동화 ‘파랑새’는 많은 상징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주인공들이 찾아 나서는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하고, 결국 파랑새는 다른 곳이 아닌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주인공인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성탄절인데도 크리스마스 장식과 맛있는 음식을 누릴 수 없는 환경에 사는 남매다.그런 환경에선 행복을 느끼지 못했지만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난 뒤 변함없는 환경에서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환경은 행복과는 상관없는 것일까?
    쫓으면 날아가 버리는 파랑새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추억의 나라와 꿈의 방, 사치의 방, 미래의 성에서 파랑새를 가져오지만 집에 가지고 오자마자 색이 변해버린다.
    그건 과거와 환상과 망각, 물질과 미래와 같은 것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파랑새는 어디에 있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쫓는 이상 행복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을 또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은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쫓는 이상 멀리 멀리 날아가 버리는 파랑새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이미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지금의 환경과 나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영원히 날아가 버린 파랑새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는 이야기의 결말에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도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행복하다.
    이미 파랑새는 그들의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어떤 시련이 와도 행복하다는 얘기일까? 적어도 그 시련으로 행복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겐 큰 불행을 작게 만들고 긴 시련의 과정을 짧게 볼 수 있는 행복이라는 긍정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 인터넷 글에서 [펌] -
    
    
    
    
    소스입니다.*^^*
    
    <ul><embed style src="http://ydong4.com.ne.kr/swf/38.swf"
     width="493" height="420"></embed>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부활 팔일축제 내 금요일 - 배 오른편</b>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요한 21,1­-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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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br>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
    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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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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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
    오너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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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
    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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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b>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황순찬 (송파정신보건센타)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신경이 곤두서서 잠조차 청할 수 없는 밤, 베드로는 과거 자신의 직업
    이었던 고기잡이라도 하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뒤따라나서는 동료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이 날 때부터 무언가 건져올
    리고 잡아 당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양 처연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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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생계가 어려워 한동안 젓갈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물 작업과 젓갈 버무리는 일로 몸은 많이 고됐지만 꼬박
    꼬박 집에 생활비를 대고 퇴근 후 아이들 간식이라도 사들고 갈 수 
    있어 마음은 정말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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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그렇게 번 돈으로 학업을 마치고 사회복지사가 된다는 목표가 있어 
    가을철 하루 14시간의 노동도 피곤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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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가 되고 나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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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서른일곱에 변변한 직장 경력도 없는 신참 사회복지사가 들어갈 
    만한 곳이 쉽게 찾아지지 않았고 가방 속에 몇 장의 이력서를 든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더 초조해졌고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스스로 위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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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산만 넘어가면 행복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악착같이 갔으나 
    산 너머에서 닥친 전보다 더 막막한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 심경을 아내와 어린아이들에게는 내색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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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 자리에 앉아 곤히 자고 있는 처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 순간 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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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나는 다시 젓갈 공장에 갈 생각을 했다. “그냥 그렇게 살까? 
    몸은 고되겠지만 식구들 굶기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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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신 왜 사회복지를 하려고 했는지, 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 
    곁으로 가려고 하는지 원래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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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숱한 밤 나는 당장의 먹고 살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건져올릴 
    수 없었다. 꽉 막혀 있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외치는 그분의 
    소리(“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아라!”)를 나는 듣지 못했다. 
    <ul>
    <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031.JPG width=400>
    </ul><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저 산만 넘어가면 
    행복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악착같이 갔으나 
    <br>
    산 너머에서 
    닥친 전보다 더 막막한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부터 열흘간, 송파정신보건센타에 계신 황순찬 사회복지사 님의
    묵상글입니다. 신부님의 말씀도 새콤달콤하지만, 평신도가 써내려간
    묵상글은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처럼, 앗! <b>나</b>의 이야기처럼 느껴
    집니다.
    <br>
    윗글의 한 줌을 붙잡으며 얼마나 많이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답니다.
    제가 바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 글을 읽으시는 벗 님들
    중에도 저와 동감을 하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되어집니다.^ ^
    <br>
    돌아가신 친정어머님께서, 힘드실 때마다 말씀하시기를...
    <b>'속고, 또 속아서 사는 것이 인생'</b>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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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뜻이 무엇인가 했는데, '쉰'이 되니...
    한 마디 속에 담겨진 인생사의 모든 일들이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저 산을 넘으면 파랑새가 있다 하기에 달려가봤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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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잠이 많은 안나 아지매는...
    쏟아지는 새벽잠이 몰려올 때면..이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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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이 땅에 왔던가, 여기 왜 이러고 서 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때문에~!...
    라는 수없는 외침들이 가슴 속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br>
    가족들 두고, 고국을 떠나 올 때에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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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진 현실의 상황을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안나 아짐입니다.
    <br>
    이른 새벽에 출근도 해봤고, 늦은 밤에 돌아오기도 했었지만..
    밤을 새우며 일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br>
    더구나 말이 안통하는 이 나라에서...
    나의 운신의 폭은 회사와 직장 그리고 성당뿐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답답하면 친구들을 만나서 쇠주도 한 잔하며, 밤을 지
    새우고 이야기도 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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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순간,
    달려서 갈 수 만 있다면...
    내가 태어난 그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옵니다...
    그 누군가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b>
    늦은 밤, 자리에 앉아 곤히 자고 있는 처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 순간 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br>
    그때 나는 다시 젓갈 공장에 갈 생각을 했다. “그냥 그렇게 살까? 
    몸은 고되겠지만 식구들 굶기지는 않겠지….” 
    <br>
    내 자신 왜 사회복지를 하려고 했는지, 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 
    곁으로 가려고 하는지 원래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었다. 
    <br>
    숱한 밤 나는 당장의 먹고 살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건져올릴 수 없었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황순찬 님의 마음이...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br>
    밥 세끼 먹고 살면 될 것을...
    봉양할 어머님이 계신가,
    남겨줄 자식이 있는가,
    <br>
    무엇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오래전, 남부순환도로를 달리다가 예술의 전당 앞에서 길어지는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때면,외마디로 튀어나오던 화살기도가 시작됩니다.
    <b><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주님, 제가 잘 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잖습니까!
    주님,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요...</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네...그랬습니다...
    더더 말고 덜도 말고 딱! 만 5년이란 세월을 낚게 하셨습니다...
    <br>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고 삶의 현장을 달려온 앗! 나를,
    도로에서 운전을 하게 하시며,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갈고 닦여지게 하신 그분이십니다.
    <br>
    그리고는...
    5년이란 세금보고서를 사용하셔서...
    미국이라는 땅으로 순조롭게 건너오게 하셨지요...
    <br>
    그렇게 오고 싶었던 나라,...
    20대에 꾸었던 꿈이 마흔이 넘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이 나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보았습니다.모든 것들이 
    그분의 계획과 안배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음을 태평양을 
    건너오며 그제서야 깨달은 앗! 나 아지매.
    <br>
    그러나, 또 다시...
    광야길에서 부르짖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주님께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고 있습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꽉 막혀 있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외치는 그분의 소리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아라!”)를 나는 듣지 못했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그러나, 저는 들을려고 노력을 합니다...
    들을 수 있기에, 이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실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며 오늘도 야곱의 우물과 함께 인터넷 바다 
    한 귀퉁이에서 이렇게 삶을 조잘거리고 있습니다. 
    <br>
    들을 수 있기에,
    남편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나의 삶을 또 달궈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나를 이 땅에서 적응케하기 위하여 직장
    을 갖게 한 것도 압니다. 
    <br>
    혹 그가 먼저 떠나게 되면,
    이 땅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기에.../그리고,
    시민권이라는 것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장의 종이 쪼가리를 주님은 어떻게 사용하실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br>
    나를 이렇게 갇히게 하심은...
    어느날 비상을 위해서라고, 준비되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수 있습니다.
    <br>
    친정어머님이 떠나셨을 때에...
    낙동강 오리 알이 되었던 안나를, 
    설마 주님께서 태평양의 오리 알로 만드시지는 않으시겠지요..*^^*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필립비 3장 12절-14절]</b>
    <br>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br>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br>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제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오래전, 주님께 잡힌바 되던 그날, 
    <br>
    그분의 사랑에 감격하여...수많은 고백을 드렸던 그 날의 다짐들을
    잊지 않으려고, 머나먼 길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저는 알 수 없으나, 복음의 말씀을 붙잡으며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그 분이 누구신지를 알기 때문에...
    제 삶이 빨리 편하게 되지 않는다해도...
    저는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갈 것입니다..
    <br>
    야곱의 우물동이를 잠시 내려놓는다 해도...
    기회가 오면 다시 복음을 나누기 위해서 올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br>
    지금은,지금으로써의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이 
    몸도, 마음도, 살 수 있고 시모님을 돌봐드려야할 때인 것을 알기에
    이런 저런 끈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영어공부에 전념을 해봅니다.
    <br>
    주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제 어찌 이 모든 일들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br>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될 뿐이옵니다...라고 고백하며,
    물동이를 마치면서, 동화 '파랑새'에 관한 글을 나눕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파랑새를 찾아서</b> 
    <br>
    동화 ‘파랑새’는 많은 상징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주인공들이 찾아 나서는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하고, 
    결국 파랑새는 다른 곳이 아닌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br>
    주인공인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성탄절인데도 크리스마스 장식과 
    맛있는 음식을 누릴 수 없는 환경에 사는 남매다.그런 환경에선 
    행복을 느끼지 못했지만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난 뒤 변함없는 
    환경에서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환경은 행복과는 
    상관없는 것일까? 
    <br>
    <b>쫓으면 날아가 버리는 파랑새</b> 
    <br>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추억의 나라와 꿈의 방, 사치의 방, 
    미래의 성에서 파랑새를 가져오지만 집에 가지고 
    오자마자 색이 변해버린다. 
    <br>
    그건 과거와 환상과 망각, 물질과 미래와 같은 것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br>
    파랑새는 어디에 있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 있느냐는 것이다. 
    <br>
    우리는 행복을 쫓는 이상 행복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을 또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br>
    하지만 행복은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쫓는 이상 
    멀리 멀리 날아가 버리는 파랑새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이미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지금의 환경과 나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br>
    <b>영원히 날아가 버린 파랑새 </b>
    <br>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는 이야기의 결말에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도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행복하다. 
    <br><b>
    이미 파랑새는 그들의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어떤 시련이 와도 행복하다는 얘기일까? 
    적어도 그 시련으로 행복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br>
    그들에겐 큰 불행을 작게 만들고 긴 시련의 과정을 짧게 
    볼 수 있는 행복이라는 긍정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b>
                                      - 인터넷 글에서 [펌] -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9pt">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height=70 src="http://cafe210.daum.net/cafeimg-proxy?
     grpcode=Coreansanctus&imgType=logo&time=1127253570000"
     width=230 align=absMiddle border=0><FONT color=red><FONT size=3>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UL></FONT>
    <EMBED style src="http://jnjmuse.cnei.or.kr/musicbox_3/unduk_kim_music.mp3" 
    hidden=true type=audio/mpeg volume="0" loop="-1" autostart="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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