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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사는 그리스도의 그림 (히브리서 1:1-2)_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5 조회수1,314 추천수0 반대(0) 신고

 

 

                      역사는 그리스도의 그림

히브리서 1:1-2 ( 공동번역 )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이 히브리서는 왜 아들인가에 대한 내용이 전체적으로 기록이 돼있는거예요 율법이 아니고 왜 아들이어야 하는가? 그래서 대 주제를 이렇게 12절에다가 적어놓고는 옛적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하느님, 이게 구약이죠? 구약.

이 구약이 이 모든 날 마지막 모든 날 마지막은 이제 말세죠? 말세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의 모든 기간을 다 말세라 그래요. 십자가가 종말을 품고 이 땅에 들어온 거잖아요? 거기서 심판이 일어났으니까 이제 종말이죠?

이사야서에 보면 종말이 심판이 창조를 앞선다라는 말이 거기 나와요 성경이 한 얘깁니다 이사야가

그래서 마지막은 이미 창조성에 담겨서 이 땅에 오게 되는거죠 그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게 인제 신약예요 신약.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이게 정답이다 라는걸 가져온 아들이. 창조에 관여 했다라는건 바로 그 창조가. 종말의 그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다라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이죠.

창조라는 것은 어떤 결론이나 결과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그냥 우발적으로 되어 졌다가 거기에서 수 없이 생겨나는 우발적 사건들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당황하여 이런 저런 계획들을 막 세워서 이렇게 역사를 끌고가는 그런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미 결정된 것을 그걸 언약이라 그러죠? 그걸 차근차근 이제 사람과 역사와 공간을 통하여 그려 내는거예요 이 역사는 다 창세전 언약의 그림들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는거죠.

 

이 히브리서는 이름이 그렇듯 히브리인들에게 히브리의 그리스도교인들있죠? 그들에게 쓰여진 책이예요. 로마가 인구분산 정책으로 여러곳에 디아스포라로 유대인들을 보내잖아요? 그래서 저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천하 마을 각국 만국으로부터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잖아요? 절기때는. 유대인들만 모이는데도 그걸 천하만국으로부터 사람이 모였다라고 얘기하는건 그마만큼 유대인들이 여기저기 디아스포라로 많이 퍼져 살았다는 그런 뜻이예요.

이렇게 여기저기 퍼져 있다보니까 그들의 교회에 그들이 이제 오순절날 와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을 하여 가서 교회를 세웠을거 아녜요? 여기저기 이렇게. 그 교회를 세웠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어요? 이방의 그런 잘못된 신관이라든지 종교관 같은게 스며들고, 정말 무서운건 인제 그 싱크로티즘이라해서 어느 곳에 종교가 퍼지든 그 지역의 토속종교와 항상 이렇게 믹스가 되고 섞이는 부분은 좀 있게 마련이예요.

그런거보다 진짜 무서운건 유대인들이 이제 자기들의 그 행위 그 율법을 무시하는 예수님을 잡아죽였잔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살아났단 말입니다 사흘만에 진짜 자기 말대로. 그래서 그 살아난 것을 수 많은 사람들이 봤고 또 그것을 그 부활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막 생기기 시작했잖아요 하느님의 교회가,

초대교회가 예수의 부활을 그렇게 전했단 말이예요. 그러면 자기들이 그 예수를 죽인 자기들이 유죄로 판결이 나게 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되죠? 그리스도교를 말살해야죠?

그래서 바오로의 서간문을 보면 그리스도교인들이 핍박을 당한 그 대상이 누구냐하면 유대인들이예요 뭐 로마사람들은 대단하게 관심도 없었어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유대 그리스도교인들을 반역자로 몰아서 잡아 죽이고 두들겨 패고 그런거죠. 그 스테파노를 돌로 쳐서 즉결심판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런거예요. 반역자로 몰아서 죽이고. 그리구 보고를 하면 아무일도 없었던 그런일이 되는거죠.

 

그런데 아무리 막아도 이 사람들이 도망을 다니면서 계속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고 또 그리스도교를 전하니까 유대교에서 거짓 예언자들 거짓 스승들을 그리스도교 안으로 투입한 거예요. 옛날이나 오늘이나 이렇게 잘 쓰는 방법이죠? 거짓 교사 거짓 예언자들은 전부 유대교에서 파송이된 사람들인거예요.

그래서 묵시록에 보면 유대교를 유대인을 사탄의 회(집단)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교회 참 교회를 핍박하는건 어디 외부에 있는 그런 그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거예요. 교회 안에서 교회라는 큰 무리 그 무리 안에서 이제 그 마귀의 종으로 쓰이는 이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걸 오늘날 그대로 한번 가져와보세요. 이건 뭐 예수님 당시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역사내내 있었던건데 인간들의 그 자존심과 인간들의 그 행위의 가치를 챙길려고 하는 그런 이들이 종교인예요. 물론 이들이 항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라고하는 그 예수의 공로. 인간의 자존심을 묵살해 버리는거죠 그거는요 .니들은 아무것도 하는게 없다 라고 그런 사람들을 늘 핍박했죠. 다 때려 죽여요. 왜냐하면 네가 우리 인간자체의 보편적 자존심을 이렇게 묵살할 수 있느냐 라고 해서,

오늘날도 예수의 피 십자가를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해요. 뭔가를 하고 싶어서 어쩔줄을 몰라요 심장이 뜨거워요. 그게 뭐예요? 열심이죠. 그 심장이 뜨겁다는 단어예요 열심이라는 단어가. 그 심장이 뜨거워서 이게 이냥 뭔가를 자꾸 하고 싶은거예요 인간들이.

그런데 거기다 대놓고 예수그리스도 십자가가 다 완료했다 라고 얘기하면. 그러면 우린 뭐야 이렇게 되는거죠. 그러니까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미완료 종교가 되버린거죠. 십자가에서 이미 예수님이 완료시켜 놓으신 걸.... 미완료로 끌어내려서 자기들의 어떤 열심을 보탤려고 하는 그런거죠.

그렇다고해서 또 그런 말을 하면 아 그럼 나는 아무것도 안 해야지~ 아무것도 안 해야지가 뭐예요? 그 아무것도 안 하는 행함을 내가 하겠다는거죠. 그게 행위예요. 성도는 아무 것도 안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면 안되요. 그게 행함이라니까요. 내 행함의 가치가 있으니까 아무 것도 안 해야지 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무서운 행함 이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방긋방긋 웃으면서 예수님이 다 하셨는데 뭐~... 아니 어떻게 ..아니 참.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이 ... 제가 죄인중의 괴수죠 제가 그냥 지옥가야 마띵한 자예요~... 여러분 그 말이 그렇게 웃으면서 나오는 말예요? 저가 죄인 중의 괴수죠 저는 지옥가야 마땅한 자예요... 이건요 가슴을 찢으면서 해야될 소리예요. 그런데 생글 생글 웃으면서 아이구 신부님 말씀대로 제가 죄인중의 괴수맞아요~ 진짜 아는거에요? (속으로) 진짜 아는데 그 얘기를 생글생글 웃으면서 해요?

 

그러니까 머리로 관념으로만 그리스도교를 갖고있지 삶에대한 고민이 없어요. 그 두려움 공포가 없다니까요. 하느님이 얼마나 오묘하시고 크신 분인지에 대한... 그런 아픔들이 없어요 어떻게? 그리스도교란 자체가 그냥 어떤 기호나 개인 적 신념 이런게 된거예요. 여러가지 것들 중에 하나 선택해서 내 기호식품 찾아먹듯 하나 선택하고 개인적 신념으로 하나 붙들어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또 쓰는거예요. 그건 그리스도교가 아니예요.

우리는 이미 완료된 상태에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 와요. 여러분 애기를 낳으면 애기가 뭐 장성하여 크지는 않더라도 그 애기 안에 간이나 심장이나 뭐 비장 위장 이런거 없어요? 완벽한 생명체예요. .....자라면서 간이 생겨나고 뭐 콩팥이 생겨나고 이런게 아니라 완벽한 생명체 그 완벽한 생명체가 더욱더 풍성한 것을 배우고 누리는게 신앙생활이지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신장 하나 만들고 열심히 노력해서 간 하나 만들고 이게 신앙생활 아니라니깐요.

그런데 알메니안 주의나 이 로마 캐토릭 같은거 말이죠 펠라기우스 주의 같은건 전부 저희들이 노력해서 이거 하나씩 내장 하나씩 더 만드는거죠. 생명은 이미 하느님에 의해 완성되고 창조돼요. 그러나 그 풍성함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모르니까 신앙생활을 통하여 역사 속에서 그 하느님 나라의 풍성함을 우리가 배워가는 거예요. 구원은 여러분의 행위로 좌지우지 되지않아요.

그럼에도 오늘 날도 그런 어떤 그 교회의 어떤 운영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열심을 막 독려하고 강요를 해서 그냥 이 불쌍한 교인들을 뺑뺑이 돌리는거예요 새벽부터 밤까지 그렇게 일하고 들어오는 사람들, 또 뭐 특별새벽 기도니 백일기도니, 천일제단이니 또 불러 불러 모아가지고 말이죠 그냥 졸려가지고 눈을 껌벅껌벅 하고 코피는 질질나는데 나와 앉아가지고 이래야 복 받지~ 이러면서 말이죠.

 

나는 뭐 얼마전에 이 옆에 있던 ㅇㅇ교회 파산했다 그래가지고 그 양반이 부동산의 투기에 귀재거든요. 아주 승승장구 하면서 사는 것마다 족족 이게 올라가지고 말이죠 치고 올라가더니 어마어마한 걸 하나 샀다 그래서, 그런데 또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또 늘어났다 그래요 그런데 왠걸 한달 갚아야 할 이자가 28만불인가 뭐 얼마였다 그러죠

한 달에 그만큼의 헌금을 거둘라면 도대체 교인들이 헌금을 얼마나 해야 되는거예요? 결국 파산해가지고 일간지에 그것도 그리스도교 신문도 아니고 일간지에 어느 교회 아무개 목사가 파산 신청을 했는데 이건 하느님의 파산이다~ 이렇게 무모한 짓이지 이게...하느님의 파산이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고..

사람들을 열심히 독려하여 사람들의 그 열심 뜨거운 심장을 살짝 살짝 부채질을 해주며는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느님 앞에서 뭘 한다라고 착각들을 해요. 그러니까 집 팔고 뭐 콩팥 팔고 그래갖고 막 헌금하고 벽돌 한 장에다가 자기 이름 써주면 좋아가지고 말이죠. 절에다가 기왓장 올리는거랑 뭐가 달라요 그게? 그런 열심 그 어떤 한 사람의 그리고 한 집단의 야망이 비젼이 서게되면 사람들이 정신 줄을 놓게되요. 그래갖구 그 비젼을 향하여 예수 하느님은 저 뒷전이고 그 비젼이 신앙의 중심이 되버린다니까요.

여러분 교회는 비젼을 세우는 집단이 아니예요. 하느님의 비젼이 성취 되어지는 공동체지 무슨 교회가 비젼이 있어요? CRC 교단에서도 말이죠 매년 비젼을 적어서 보내라고.. 하도 안 적어 보내니까 협박까지 해가지고.. 무슨 비젼이 없는데 어떻게 적어서 보내요? '없음' 그러면 또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그래갖구 그럴까봐 또 그렇게도 못 보내고.. 맨 비젼을 그렇게 물어봐요 어디 인터뷰 하러가도 니네 교회 비젼은 뭐냐고....

 

성도는, 양은 지독한 근시라서 바로 눈 앞에 목자의 지팡이밖에 못 봐요. 그래서 수시로 그렇게 양떼들이 길을 잃어버리고... 앞에 가는 양의 꽁지를 놓치면... 양은 그 무리를 찾을 재간이 없어요. 그래서 목자의 지팡이만 졸졸졸졸 쫒아서 다니는거예요 양이. 그런데 그 양떼들에게 멀리보고 비젼을 내 놓으라고 그러면 ...도대체 그 근시가 뭘보느냐고요 멀리봐봐야 ...희미한데.

여러분이 역사를 추측할 수있어요? 앞으로 무슨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추측이 가능하냐구요? 근대 무슨 비젼을 세워서 그걸 쫓아갑니까 교회가, 인간들의 행위자체가 하느님 앞에서 전혀 쓸모가 없어요 사실.

그런데 하느님의 은혜가 들어가면 우리가 뭔가를 먹으면 그게 소화가 되고 에너지로 밖으로 나오듯 그 은혜의 말씀이 들어가서 그 안에서 어떤 지향성과 방향성 그리고 그 하느님 나라에 대한 어떤 소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게 한다고 했으니까)그런 것들이 우리 안에 생겨나는거지 난 이걸 할꺼야 안 할꺼야 이건 우리것이 아니라구요.

그런데 그리스도교 자기의 영원한 생명이 걸려있다 라는 그런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사람들이 고민하질 않아요. 그냥 상식대로 살아서 그냥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착한 것 그러면 그렇게 합의해 놓은거면 그냥 그거 좇아서 살면 괜찮은걸로 정의로운것 그러면 그거 좇아서 살면 정의로운걸로 ...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너희들이 율법을 지킬려면 단 하나도 어기지 말고 완벽하게 다 지켜라 그러죠 310절에 보면 율법의 온갖 항목을 모두 다 지켜야 된다고 그러죠. 안 그러면 어떻게 된다그래요 ?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래요. 그럼 여러분이 율법을 지킬라면 단 하나도 빼놓지말고 완벽하게 지키셔야 되요. 완벽하게. 그 율법의 세목이 뭐 미슈나 미드라쉬까지 하면 수 천가지나 되는데 그거 다 지켜야되요 지금도 완벽하게. 그 어떤건 지키고 어떤건 안 지키고 그래요.

 

율법은 하느님이 우리를 죄에 뮦어두기 위해 주신거란 말예요. "니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알아먹니? 내 아들 예수만이 지킬 수있는게 바로 율법이란다 ....그러니까 그 예수를 믿어" 그러는거예요. 그 예수 안에 들어가서 4위일체가 돠는거예요. 예수님께서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그랬죠? 처소를 예비하러 가서 너희들에게 그 너희들이 거처할 곳을 마련하러 간다 그래놓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뭘 보내 주느냐 하면 올라가서 성령을 보내주죠? 그러면 성령이 바로 우리성도가 거처할 처소예요. 그러면 성령과 함께 연합된 그 곳에 하나님이 올 수있어요? 없어요? 올 수있죠? 그래서 우라 성도를 또 하나님의 처소라고 하는거예요. 그러면 성도라는 존재 자체가 성부 성자 성령 교회 이렇게 4위일체로 완성이 되는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성도가 자기의 존재성과 주체성을 우기기 시작하면 일체가 되지않아요.

 

성도가 신 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이 누리는 모든 것을 성도가 공유하시게 했다는 뜻이란 말이예요. 그리고 성도 라는것의 존재양식이 매카니즘이 뭐냐하면 성도가 다 비워지고... 하느님이 채워지는 방식으로 교회가 완성이 된다는 그게 다른 종교와 다른거 아닙니까

다른 종교는 전부 인간들의 열심과 노력이 가치가 있어서 그것에 의해서 성숙도가 결정이 된다구요.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그게 아니란 말이예요. 그래서 그게 믿어지기 위해선 우리가 얼마나 불가능한 존재인지를 먼저 알아야 되는데 거기애 대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이 없는거예요. 이게 참 통탄 할 일인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완전한 하느님의 백성이예요. 그런데 그 하느님의 백성이 그 하늘의 풍성함을 조금씩 조금씩 이제 누려가는 그 길에 고통이 통과하고 시험이 통과하고 그러면서 세상에서 점점점점 이제 손을 놓는 그 과정 속에 있는거니까 그걸 그냥 잘 배우시면 되는거예요.

그럼 믿음이란건 여러분이 이렇게 꽈악 꽉 쌓고 모아서 저수지처럼 갖고 있는게 믿음이 아니예요. 믿음은 여러분에게 사유되지 않아요. 믿음이란건 하느님의 생명력은 수도관처럼 쉬지않고 계속 공급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아하 나는 이렇게 하느님의 백성다운 자가 되었는데.... 이 수도관이 끊기면 쓰레기구나를 알아야 되는거지 나는 이미 많이 물을 저축해 놨기 때문에 나는 저 수도관이 끊겨도 한동안 관찮을꺼야~ 그거 아니라니까요. 능력이나 믿음은 우리에게 사유되지 않아요. 그건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얘기예요 그건 덕이라니깐요 쌓이는건. 덕을 쌓아봐야 하느님이 아무런 카운트 안해주세요. 타 종교인들도 할 수있는 걸 하느님이 심판대 앞에서 그걸 카운트 해주시겠냐구요.

그래서 히브리어가 아들 로 시작 하는거예요 아들. 아들이 다 완료했고... 아들이 다 완성한거야 그러니깐 그 아들을 믿어라. 갈라디안식 신앙이라 그러죠? 율법과 행위가 이제 믿음과 보태줘야 구원이 된다 이걸 ...갈라디아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다른 복음 거짓 복음 거짓 선생 주의하라 주의하라 그런다구요 주의하라!

이 성경이 그리구 그 갈라디아서나 히브리서가 지금도 교회에게 주어졌다라는건 무슨 뜻예요? 오늘날도 똑같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그런 선동에 휘둘리시면 안되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선동을 당해갖고 말이죠. 선동을 잘하는 사람이 목회를 잘하는 시대가 된거죠. 아니 그건 뭐 오늘날 뿐만이 아니라 옛날부터 그랬어요. 사람들을 근사하게 이렇게 선동해서 그 불 붙은 심장에다가 그게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들의 열심인거든요. 그게 불 붙은 심장이잖아요. 그걸 내가 하느님처럼 되겠다는 거에다가 막 부채질을 해주면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요.

세상에 이 천억짜리 빌딩을 짓겠다고 예배당을 짓겠다고 헌금을 했더니 천 억원이 더 나왔다 그러죠? 그건 지금 바벨탑 쌓는거랑 똑같은거예요. 아니 교인들이 그렇게 돈이 많아요? 세상에... 글쎄 거기에다가 뭐 여러가지 그분이 뭐 옛날부터 하신 이야기가 자기 꿈이 뭐 수첩에다가 아주 설계도까지 그리구 다녔어요 벌써 10여년 전 부터 그걸 그대로 지금 다 짓구있는데 별개 다 있더구만요. 카페도 있구 요즘 그게 유행이라면서요. 교회에 카페 하나쯤 있어야 사람들이 와서 차도 마시고 교인들도 늘어난다고 ....

예배당에선 예수를 배우는 곳이지 와서 차 마시고 이런 걸 교인들이 헌금을 내서 꼭 만들어야되요? 거기다가 그냥 막 도로까지 다 막아놓고 이거 뭐 한다는게 참... 한국으로 지금 직장 옮겨서 간 ㅇㅇ가 그 교회에서 와이프가 뭐 거기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이라 어쩔 수없이 끌려 다닌다고.. 아이 남자는 참 결혼을 잘 해야되는데.. 근데 가서 듣고 앉아 있으면 아주 미치겠다고 자기는 아주 돌겠대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얘기 한 마디만 해 주세요

 

오늘은 예수얘기 한 마디만 해 주세요 그러는데 예수얘기는 단 한마디도 안하고 교회비젼이 어떻구 우리는 지금 쓰임 받고있고 뭐 이런 얘기만 하니까 아 ~   여러분 교회에서 예수를 가르쳐야지 딴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해요? ... 교인들 바보같애요 보면. 그러니까 여러분 그리스도교는 그냥 없다 보시면되요.

아니 예를 한번 들어볼께요   와이프가 남편한테 "여보 나 돈 좀 줘 내일 아침에 뭐에 써야돼" 그랬을 때 남편이 "그래 지금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에 줄께" 그랬을때 좀 믿고 자면 되잖아요. 그런데 어 우리 남편이 준다고 했으니까~ 주머니에 이걸 꼭 옮겨놔야 혹시 안 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밤에 일어나서 어차피 내일 준다고 했으니까 돈을 뽑아서 자기 주머니에 넣어 옮겨놨다 생긱해보세요. 그럼 이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어떨까요 기분이? 내가 분명히 아침에 일어나서 준다고 그랬는데 지가 지 손으로 열심을 부려서 이걸 지 주머니에다 옮겨?~

이게 오늘날 행위를 강조하는 교회의 모습이예요. 아버지가 준다 그랬으면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리구 그거 믿어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 아버지는 신실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주신다구요. 그런데 꼭 자기 몸에 어떤 흔적을 만들어서 그걸 자랑하려구 하고 싶은거예요.

그래서 바오로가 그런거예요. 육적 할례 필요없다 마음의 할례 받아라! 그게 뭐냐하면 육적할례가 뭐예요? 육적할례는 자기가 할 수있는거죠? 자기 몸에 흔적 낼 수 있는게 육적 할례예요.그걸 율법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흔적을 남기는거예요 열심으로 행위로.

그런데 마음의 할례는 자기가 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건 하느님이 주셔야 되는거 거든요. 그런데 바오로가 굳이 마음의 할례가 구원 받는 진짜 할례고 그게 할례당이고... 육적 할례를 강조하는 놈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라고 한게... 인간들이 그 하느님을 못 믿어드리는 거예요 안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꾸 무언가로 흔적을 만들어서 갖고 가고 싶은거예요. 그래 그게 믿음 없음의 증거라니까요.

우린 그냥 아버지가 내 안에 들어오셔서... 그 아들이 완료해 놓으신 천국 그 복음을 믿게 해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내 삶 속에서 격발되어지는 자기부인의 증상들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지 내가 뭘 한다 안 한다 ... 그건 우리께 아니란 말예요. 그 아들을 믿으세요. 히브리서는 전체가 다 그 아들 그 휘장인 몸을 찢어발겨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탁 터버린 ...길 되신 예수. 그 예수에 대한 이야기에요.

강화도인가 어디서 어떤 사람이 자기가 예수라고 십자가에 매달려서 저가 스스로 자살했다고 어저께 그러던데 허 참 나 ... 그 사람이 죽으므로 일어난 일이 뭐예요? 발생된 일이..참 왜 이렇게 예수들이 많은지 몰라요 오늘날.. 우린 예수의 공로로 그냥 거저 값 없이 은혜받고 살아나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 예수께 반응하세요.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서라 그랬잖아요. 그 은혜의 나타난 그런 하느님의 영광을 찬송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은 여러분 할 일 다 한거예요.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를 믿는거라 그랬잖아요. 예수를 믿으세요. 나의 행위와 나의 업적과 공로를 믿지말고. ~~~~~

 

성탄절 낮미사 제2독서를 묵상하며~~

행복한 성탄절 맞으세요 살롬. 

 

제10장. 아기 예수의 탄생(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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