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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21.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고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1 조회수1,762 추천수2 반대(0) 신고

 마태 9, 9-13(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고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마태 9,9)

 

사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모습을 보고 부르셨을까요? 우리의 잘난 모습이나 능력, 혹은 우리의 선함이나 봉사정신, 아니면 당신께 대한 충성이나 믿음 등을 보고 부르셨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신명기>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너희를 사랑하시어 구해내셨다.”(신명 7,7-8)

 

그렇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호의를 입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과 호의를 입은 이들이기에, 또한 그렇게 사랑과 호의를 베푸는 일을 소명으로 받은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

 

이는 우리가 죄인인 까닭에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곧 부르심 받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애를 입은 이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죄를 짓지 않은 의인들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야 하는 죄인들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단지 죄인인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죄인임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용서해야 하는 일을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용서받은 죄인이란 용서하는 일을 소명으로 받은 이들임을 말해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태 9,12)

 

사실, 예수님께서 죄인 세리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과 타협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두둔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크신 자비요, 신의요, 호의였습니다. 용서요, 사랑이요, 곧 하느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따라라” 하심은 바로 이토록, 너희도 죄인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신께 받은 그 사랑과 호의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팡세를 쓴 파스칼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며,

하나는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죄인이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기는가요? 의인이라고 여기는가요? 만약 죄인이라고 여긴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친구인 그분을 친구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죄인이라면, 먼저 죄의 용서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일곱 번 용서하기에 앞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 용서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용서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용서를 청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다.”(마태 9,12)

주님!

당신이 바라시는 바를 알게 하소서!

제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라는 것을 바치게 하소서.

희생제물이 아니라, 제 행실을 바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여 내어놓게 하소서.

제 자신이 자비의 산제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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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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