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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4.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5 조회수1,868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랑의 길이신 주님을 향하여~~)

2021년 4월 15일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어느 부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자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 돼서라고 합니다그 자리에서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요즘 자녀를 키운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제 형제는 자그마치 여섯이나 됩니다.

동물이야 두세 달이면 스스로

독립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은 몇 년이 지나도 독립할 수가 없습니다.

거의 이십 년 이상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 보호 기간이 더 길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저희 형제를

부모님께서는 자그마치 여섯이나 키운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생전에 계실 때

이 점을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여섯이나 낳고 키우셨어요?”

그때 어머니께서는 글쎄지금은 못 키우겠지.

그런데 그때는 힘들지 않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제 성격만 봐도 이런 저 하나만

키우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형제를 여섯이나

키우신 것입니다그렇다면 왜 힘들지

않았다고 하셨을까요?

분명히 힘드셨을 것입니다.

지난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지나고 보니

힘들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곧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고

따라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땅에 속해 있는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님을 따를 때 사람들의 반대를

부딪치곤 합니다이 순간이 커다란

고통과 시련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시는 분을 믿고 따를 때,

고통과 시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됩니다그분께 진정으로

순종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어서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땅에 속해 있는 세상의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이를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늘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바로 이 순간주님께서 이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또 주님께서

내게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이런 성찰을 통해

지금을 이겨낼 수 있으며,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가 좋았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이다

(메난드로스).

사랑의 길만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치유 받았다라는 것은

병이 낫더라도 죄는 남아서 또 다른

예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가 치유된 다음에

사제에게 몸을 보이고 또 예물을 바치는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런 과정을 생략하십니다.

용서되어 깨끗해졌기 때문에,

굳이 사제에게 갈 필요도 없고

예물을 봉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가난과 연결된 병자를 예물이란 짐에서

자유롭게 해줄 뿐 아니라,

이런 의식을 재생산시키는 예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십니다.

치유 너머까지 바라보시는 분이십니다.

죄의 결과가 이라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과

행동은 새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기성 종교의 반발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기성 종교의 반발을 누르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사랑의 길을 가시는

주님이십니다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원리원칙을 내세우면서 사랑의 길을

지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의 길만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품에 앉겨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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