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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삼위일체 대축일 본문+해설+묵상>-김수복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7 조회수2,232 추천수0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지혜는 태어났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8,22-31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

22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23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24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5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6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27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28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29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30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31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4-5.6-7.8-9(◎ 2ㄱㄴ)

◎ 주님 저희의 주님, 온 땅에 주님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나이까!

○ 우러러 주님의 하늘을 바라보나이다,

주님 손가락의 작품들을,

주님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 주님께서는 그를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주님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나이다. ◎

○ 주님께서는 저 모든 양 떼와 소 떼, 들짐승들하며,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

물속 길을 다니는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제2독서


<우리는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갑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묵시 1,8 참조

◎ 알렐루야.

○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장차 오실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 있으소서.

◎ 알렐루야.

 

복음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갈라 4,6 참조

진정 너희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시어,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시도다.


해설과 묵상


제1독서(잠언 8,22-31) 해설

<땅이 생기기 전에 지혜는 이미 잉태되어 계셨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셨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신학적인 심오한 깊이를 발견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위격화한 하느님의 지혜는 하늘나라에서만 머물러 계시지 않고, 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해 있으면서도, 우주의 생성과 조직과 변화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과 더불어 일하고, 특히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일하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세상에 목적과 의미를 준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실 때, 그 신적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대목에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삼위일체 신학의 서곡을 발견하고, 말씀의 위격적 성격을 예견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 지혜의 위격성이 삼위일체 신비를 신적으로 위격화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성싶다.


화답송(시편 8,4-5.6-7.8-9[◎ 2ㄱㄴ]) 해설

<주님 저희의 주님, 온 땅에 주님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나이까!>


이 시편은 창조주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편들 가운데 첫 번째 것이다. 이 시편에서는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한편, 사람의 미소함을 두드러지게 하면서도, 하느님께서 만물 가운데 사람들에게 주신 특출한 위치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낙관적인 찬미가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다.


제2독서(로마 5,1-5) 해설

<예수 그리스도의 은덕으로, 그리고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진다>


사람이란 본래 무엇인가를 바라며 사는 존재다. 생명이란 분명 비관적인 것이 아니고 낙관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지니는 희망의 기초는 견고하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생애를 살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온갖 난관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니, 그것은 하느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희망은 약속을 받은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꿋꿋하게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들은 죄인들과 한 밥상에 앉으신 그분을 믿고 있으며, 자기들이 비록 약하고 가련하고 죄스런 자들임을 통감하면서도 그분의 사랑을 믿고 있다.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 사형을 받은 다음,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보고 감동하셨음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우리 인간을 위한 결정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십자가 형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과 성령께서 우리 인간들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사랑을 바칠 수 있게 되었다.


복음(요한 16,12-15) 해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복음서는 사라져 버린 말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을 펼쳐들 적마다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이 시대의 역사상황 안에서 되울린다.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분도 다 하시지 못한 말씀을 성령께서 우리의 삶과 사회와 역사 속에서 계속 전달하신다.

오늘도, 온갖 인간차별과 인종차별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사회와 세계 속에서, “내가 사람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계명의 사회적 차원을 실천할 필요가 절실하다.

성령께서도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시는 것처럼, 복음의 진리에서 사람이 무엇을 빼거나 군더더기를 붙여서는 안 된다.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도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벗어나서는 참된 사랑이 될 수 없다. 사랑은 사람을 하느님이 총애하시는 자녀로 껴안는 것이며, 사람이라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든 사람을 감싸 안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의 현실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의 구체적인 표현은 각 사람과 각 가정과 각 나라에게 성령께서 지시하실 것이고, 그 지시는 조금도 덧붙이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따라야 할 지상명령이 될 것이다. 성령의 지상명령을 거스르는 사람들의 명령이나 법이나 제도나 관습은 어떠한 박해와 사형을 무릅쓰고서라도 깨부수어 없애야 한다.


묵상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지닌 신비>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일으켜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계시하신다.

구약은 절대주권을 지닌 유일하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었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계시는 생명의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마태 22,32)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 사랑하고 행동하고 말씀하시는 하느님,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흠숭을 요구하고 당신 외에 어떤 신성(神性)도 용납하지 않는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참조. 탈출 20,3). ‘태워버리는 불’ 같으신 하느님(신명 4,24), 그분 앞에서는 그 누구도 맞설 수 없고, 그 누구도 눈으로 뵌 적 없는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요한 1,18). 하늘과 땅을 창조한 하느님, 사람을 당신 모습 따라 당신을 닮게 만든 하느님, 그리고 당신 피조물들에게 당신을 드러내고 말씀을 건네시는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

구약이 우리에게 계시하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천상천하 모든 주권을 가지신 하느님, 누구도 감히 다가설 수 없이 높으신 하느님, 그분의 권능과 거룩하심 앞에서는 땅도 떨고 산들도 숨을 곳을 찾는 그 하느님께서(참조. 시편 97)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마치 친구에게처럼 말씀을 건네고 당신의 법률과 계명을 내려 당신 사랑의 요구를 표시하셨다는 사실이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우리 하느님은 자비롭고 인자한 하느님이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상기시키면서, “이와 비슷한 일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불 가운데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을 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 백성을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여 ‘복된 땅’으로 인도하신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인 인류를 악(이기심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고 불의에 희생되고 시달리는 무수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무관심함)에서 건져 내시어 인류가 단합하도록(형제애의 기쁨,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이라는 넘치는 풍요를 누리도록) 인도하신다.


<아들의 사명>


구약의 계시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올바른 사람들과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결정적인 구원자, 해방자를 보내 주실 것을 고대했다. 우리 인류의 친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써 인류 가족을 당신의 자녀로 삼고 당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생명이야말로 사람을 참으로 인간 되게(인간성취)하는 생명이요 인류 가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생명이다.

하느님의 외아들인 예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 조건을 취함으로써, 그 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사람으로서 고되게 노동하는 일생을 살고 마지막으로 인류 화해를 위해 일하다가 사형까지 당함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 예수님을 아버지 하느님께서 부활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함으로써 인류에게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함은 인류화해를 위해 그리스도처럼 죽음을 거치고 부활의 영광에 이른다는 것을 뜻한다. 참된 믿음의 내용은 지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반드시 생활실천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인류가 공동으로 이용하라고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재화를 사람이 만든 체제와 제도를 이용하여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고 있는 소수의 불의(不義)한 사람들은 이기심이라는 우상을 떠나고 나눔의 정의(正義)로 돌아서야 구원받는 인류 가족에 참여할 수 있다. 한편, 소수의 불의에 희생당하고 있는 인류 대부분은 그 희생이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를 똑똑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희생은 바로 불의(不義)한 소수를 회개(悔改)하게 하여 하느님의 자녀인 인류 대가족에 동참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을 감싸고 그들의 개심(改心)을 위하여 인내로이 끊임없는 투쟁을 감행해야 한다.

아버지 하느님과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두 분 사이의 사랑 자체이신 성령께서 삼위일체를 이루시는 것처럼 인류도 한 형제, 한 가족,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인류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복된 운명이다.

 

복음해설(2)


- “성령께서는 우리를 완전한 진리로 인도하신다.”(16,12-15) 앞에서 한 말 다음에 다시금 약간 쉬는 곳이 나온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16,12) 이곳에서는 성령에 관한 새로운 말을 들여보내려고 한다.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분이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16,13) 여기에서 ‘진리의 영’이라는 지칭은 온전히 정당한 것으로 나타난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로 인도해 주실 완전한 진리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진리, 그분의 신적 존재에 관한 진리, 구원자로 본 그분의 조건에 관한 깊은 진리다. 성령께서 들은 대로 이야기하시라는 말은 삼위일체 순서에 따라서 알아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성령께 돌리는 앞일에 대한 예고는 아마 박해 및 교회가 거둘 승리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어서 성령께서 예수님과 맺고 계시는 관계가 다음 구절에 나온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6,14)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16,10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지적하는 이유(‘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는 아마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설명해 주시리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지니신 그와 같은 기능은 제자들을 완전한 진리로 인도하시는 기능과 같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 저자는 ‘나에게서 받아’라는 표현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암시를 본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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