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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주년7: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 전례주년의 핵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5 조회수2,591 추천수0

[전례] 전례주년 7 :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 전례주년의 핵

 

 

그리스도교 축제의 의미와 형성

 

축제는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다. 피퍼(J. Pieper)는 축제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연구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하나의 축제를 지낸다는 것은 이미, 언제나 그리고 날마다 지나가는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특별하게, 일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Zustimmung zur Welt. Eine Theorie des Festes, Munchen 1963, 52면).

 

축제를 지내는 계기와 방식은 서로 다를지라도 모든 축제는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사건을 경축하는 것이다. 이 말은 개인과 가정(통과의례), 단체와 좀더 큰 공동체의 삶 안에서 일어나는 의미있는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적인 축제들에도 적용된다. 모든 축제 거행의 바탕에는 종교인들이 세상의 창조주께 감사하며 드리는 영광이 포함된다. 모든 축제에서는 그 축제의 구체적인 이유를 창조주께 아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이전의 축제와 그리스도교 밖의 축제들도 모두 본질적으로 매우 깊은 예배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 축제들을 보면 자연적인 기원을 갖는 축제들이 이스라엘의 구원사건과 그들이 계약의 하느님이신 야훼님을 만남으로써 겪은 구원의 체험을 기념하는 축제로 의미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 백성과 종교의 영향을 받아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기억하는 이러한 축제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 사건을 체험한 뒤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통하여 이루어진 구원을 기념하는 것이 모든 히브리 축제를 압도하여 그리스도교 축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든 인간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봉헌하시고 그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아버지께 순명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영구히 거행하도록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고린 11,24)고 명령하셨다는 이유에서 더 그렇다.

 

이 그리스도교의 파스카 신비는 어떤 다른 축제보다 먼저 주간축제로서 주일에 거행되었다. 연례 파스카 축제는 주간축제보다 좀더 늦게, 곧 1세기와 2세기 사이에 특정한 날에 지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강생에서 영광과 재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전생애의 사건들 가운데 구원의 기초가 된 주제들의 축제를 지내게 되었다. 또한 주님의 어머니의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과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제들이 그리스도교 축제력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순교자들과 성인들은 그들의 삶과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라 그리스도의 파스카가 지닌 승리의 힘을 증언했다는 이유에서 기념하게 되었다.

 

중세기부터는 이른바 ‘이념 축일들(feste di idea)’이 그리스도교 축제 안에 한 무리를 짓게 되었다. 이 축일들은 특정한 구원 사건들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진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신심의 특별한 의미와 주님과 성모님 또는 성인의 여러 칭호를 경축대상으로 삼는다.

 

‘신심 축제들(feste di devozione)’도 생겨난다. 이 축제들은 묵상을 위한 축제로서 교의 축제, 주제 축제라고도 하는데, 이 축제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실제로 재현하는 축제와는 달리 정적(靜的)인 축제들이다. 이 축제들은 구원사건의 재현 없이 어떤 신비가 지닌 교리나 교훈을 기억하는 축제이다.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규범’에 대한 로마의 공식 해설은 이러한 이념 축일들에 대하여 매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 축일들은 기원을 볼 때 개인신심에서 비롯된 것이 점차로 일반 전례력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17세기 말부터 열여섯 개의 새로운 이념 축제가 일반 전례력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축일들 가운데 열 개는 성모님의 축일이다. 전례개혁은 이러한 축일들의 수를 줄이거나 지역 전례력으로 돌리는 것을 개혁의 한 목표로 삼았다.

 

우리는 교회사의 사건들을 다룰 때 하나의 걸림돌을 만나게 된다. 그 사건의 의미를 하나의 고유한 축일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축일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과 터키에게 거둔 승리를 기념하고자 제정한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다.

 

전례거행, 특히 성체성사의 거행은 그리스도교 축제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교의 축일은 단순히 어떤 사건을 기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업적을 재실현하고 그 효과를 받아누리는 뜻을 지니고 있다. 기도와 찬가, 말씀의 봉독과 특별한 전례적인 표징들 안에서 특정한 관점들이 드러나지만 그러한 다양한 표현들 뒤에 있는 파스카 신비의 단일성, 공동체 안에 주님의 오심, 주님의 구원 은총을 받아 누림 등의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온 공동체가 그런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각자,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통교하면서 성장한다. 1년을 통하여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그리스도교 축제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커다란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준다.

 

전례주년이 아주 역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 해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단순한 주기에 비교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전례주년은 그리스도와 만남을 목표로 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다. 전례주년은 해를 거듭하면서 주님의 재림, 세상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전례 축일들이 늘어나고 다양해질수록 전례주년의 기본적인 구조와 핵심이 주변적인 개별신심에 눌리는 위험이 더 커졌다. 그래서 전례법은 대축일과 그 아래 축일들의 등급을 여섯을 넘지 않게 하였다. 베네딕도 14세 교황 때부터 축일의 등급은 단순해져 1955년과 1960년의 개혁을 통하여 더 단순화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한 새로운 규범(전례헌장 107항 참조)은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1969년)을 내놓아 축일을 본질적으로 단순하게 하였다. 여기에서는 축일을 그 의미에 따라 대축일, 축일, 기념으로 구분하고, 기념일에 대해서는 의무 기념과 선택 기념으로 또다시 세분하였다. 그리고 부활 대축일과 성탄 대축일만 팔일 축제를 갖게 하였다.

 

 

전례주년의 구조

 

각 축일과 축제 시기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기에 앞서 전례주년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전례주년의 구조를 종합하여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전례주년은 대림 첫 주일에 시작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중세기에 그리스도교 나라들을 보면 일반 달력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율리오 체사레력(기원전 45년부터)은 고대 로마의 새해 첫날을 3월 1일에서 1월 1일로 앞당겼다. 이 달력은 서양 모든 나라에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새해 첫날은 한동안 여러 다른 날들에 지냈다. 프랑코 제국 안에서는 8세기까지, 베네치아에서는 1797년까지 3월 1일이 새해 첫날이었다. 프랑스에서는 15세기까지 부활 주일이, 스칸디나비아와 독일에서는 16세기까지 주님의 성탄 대축일이,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인 3월 25일은 특별히 이탈리아와 트리에에서, 비잔틴 제국과 그 영향권의 지역들에서는 7세기까지 9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지냈다.

 

이처럼 다양한 달력들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에는 전례주년이라든지 교회력이라는 개념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10-11세기부터 전례서들의 첫 부분에 대림 제1주일의 기도문들이 자리잡게 되면서 점차로 대림 첫 주일로 전례주년을 시작하려는 생각들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전례서들에서 대림 첫 주일을 전례주년의 시작으로 잡은 것은, 전례주년이 탄생에서 재림에 이르는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비판은 옳은 것이다. 전례주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사건들을 단순히 연대에 따라 소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의 발전 과정을 보면 전례주년은 파스카 신비를 핵으로 하여 많은 뿌리와 줄기와 가지, 잎을 가진 커다란 나무로 발전한 것이다. 이 나무는 너무 무성하게 또 멋대로 자라 정원사의 가지치기를 거치기도 했다. 역사적인 구원 사건들을 기억하고 그 구원에 감사하려는 많은 축제들이 생겨난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축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여 지내는 데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지역교회와 수도 공동체들의 새로운 축제들이 많이 생겨났으나 교황은 가끔씩 그 기념에 제동을 걸거나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축일과 기념일들은 그리스도의 하나뿐인 신비를 여러 개별적인 관점과 강조점에서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장점도 있었다. 이로써 신자들은 ‘여러 모습의 그리스도’를 만나고, 충만한 구원의 보편성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나무들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는 위험, 부분의 중요성 때문에 전체를 보는 시각을 잃을 위험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 비오 12세는 1947년에 반포한 ‘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 회칙에서 전례주년의 쇄신에 관하여 이렇게 방향을 잡아주었다. “거룩한 전례는 그리스도 생애의 여러 관점, 곧 영원한 아버지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동정녀에게서 나신 그리스도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신 그리스도, 병자들을 고쳐주신 그리스도, 고통받고, 우는 이들, 죽어가는 이들을 위로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하늘에서 영광을 누리시며 다스리시는 그리스도, 협조자이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 그리스도, 당신의 교회 안에 언제나 살아계신 그리스도,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등 여러 관점에서 전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138항).

 

우리는 영광스럽게 되신 주님께서 전례 안에서 우리를 만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실 때 겸손하게 당신을 비우시고 스스로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 또한 주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사랑하셨으며 오늘도 교회 안에 현존하시며 말씀하시고 일하신다. “교회 안에서 성서를 봉독할 때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전례헌장, 7항).

 

우리는 벌써 여러 차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전례주년의 원천이며 중심이라고 말했다. 이 주님의 파스카 신비가 주간 파스카로 주일마다 거행되어 일년 전체 주기를 특징짓는다. 그리고 이 파스카 축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준비 시기와 축제를 거듭 경축하는 시기를 갖는 연례 주기 축제로 발전한다. 이 시기는 재의 수요일에 서작하여 13주간 반 뒤의 성령강림대축일로 끝을 맺는다.

 

그리스도의 탄생의 연례 기념도 마찬가지로 준비 시기와 축제 경축 시기를 갖는 주기 축제로 발전한다. 이 시기는 대림 제1주일부터 주님의 공현축일 다음 주일, 곧 그리스도의 세례축일까지이다. 이렇게 하여 부활대축일과 성탄대축일이 전례주년의 두 기둥이 된다.

 

부활대축일과 성탄대축일 사이의 33주간 또는 34주간은 ‘연중시기’ 또는 통상 ‘전례시기’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총체적으로 공경한다. 연중시기는 주님의 세례축일 다음 주일부터 시작하여 대림 제1주일 전 토요일에 끝난다. 이 시기 중간에 사순시기와 부활시기를 지낸다.

 

이 두 축제 주기와 연중시기 그리고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대축일들과 축일들을 ‘시기력(Temporalis)’이라고 한다. 이 시기력은 언제나 전체성 안에서 알아들어야 하며 어떤 개별 축제들보다 우선권을 가진다. 성인들의 축제력은 ‘성인력(Sanctoralis)’이라고 한다.

 

또 우리는 보편 전례력과 ‘개별 전례력’을 구분한다. 개별 전례력이라는 것은 언어가 다른 특정 지역의 전례력이나 교구 전례력 그리고 수도회 전례력을 말한다. 이는 물론 모두 사도좌의 승인을 받아 사용한다.

 

우리는 전례주년을 본질적인 부분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성당 건물에 비유할 수 있다. 파스카 시기가 성당의 주랑이라면 성탄시기는 성당 입구의 안뜰(아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인들의 축일은 ‘화관(花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유에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모든 전례 거행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당신을 비우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명하시고 영광으로 높이 들리시어 언제나 당신의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며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김종수 요한 - 주교회의 사무총장 · 경향잡지 편집인 · 신부.

 

[경향잡지, 1997년 11- 12월호, 김종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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