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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그리스도인의 삶과 전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1,845 추천수0

[전례 상식] 그리스도인의 삶과 전례 (1)

 

 

전례와 그리스도인의 삶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진정한 ‘감은제’(感恩祭양 = Eucharistia)가 되어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가득한 찬미가 될 때에, 우리는 전례를 올바르고 풍요롭게 거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례의 기본 정신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갈 때에 우리는 전례를 올바로 거행할 능력을 나날이 더해 가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표현과 정신에 따라 다시 정리해 보면, “성사, 특히 성체성사의 집전은 우리가 성사가 될 때에만 그 목적한 바에 이를 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가시적인 표지요, 하나의 효과적인 말씀이다.”고 말할 수 있다.

 

 

구원의 신비에 참여시키는 전례

 

우리는 성체성사를 비롯해 다른 성사들을 거행하면서 신비스럽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에 접촉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육화의 신비가 그 절정에 이르고 재림을 앞당겨 체험하게 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영광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한다. 전례 안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풍요로운 선물을 받은 신부로서 감사를 느끼며,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전적으로 전례 거행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은총의 힘으로 살아간다. 성사의 거행을 통해서 교회는 자신의 삶의 법을 배우고 자기 실존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그리스도께 온전히 속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믿음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최종적인 완성에 이를 때까치 자신을 아버지께 드린다. 그리스도인 실존의 이러한 양상은 전례 거행을 의무로 갖는 모든 신자들에 의해서 확인되고 증명되어야 한다. 전례 거행의 의무는 어떤 교회법적인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례로써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는 성세로 인하여 이에 대한 권리와 직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전례 헌장, 14항).

 

 

1. 신앙의 거행

 

전례는 우리의 신앙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순전히 외적인 형식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신앙은 전례 안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확고한 결정으로 확인된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크고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감사로 가득 찬 신앙을 통해서 당신 죽음으로 이룩하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안으로 들어간다. 신앙은 이렇게 그리스도 신비의 체험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기쁘게 받는 것이며, 자기 존재의 근본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다.

 

전례를 올바로 거행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실존적으로, 신앙이란 교회가 제시하는 개별적 진리와 가르침을 수용하는 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참 생명의 길이신 주님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알고 있다. 신앙은 전례 거행 안에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그 깨달은 바 - 그리스도의 현존을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써 우리에게 온전히 아버지를 보여 주셨고, 당신을 선물로 내어 주셨다. 우리가 신앙으로 전례를 거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삶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하고, 또 그러한 참여를 청하는 것임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믿는 존재’라는 사실이 의미 충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행하려는 의지를 가진 전례의 거행은 신앙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바라보는 더욱 날카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에 준거한 삶은 우리를 더욱 생기 있고 기쁜 태도로 전례에 참여케 한다.

 

 

2. 신뢰하는 신앙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생기 있고 참된 성사적인 참여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선 신뢰에 찬 자기 증여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버지,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루가 23,46)와 같은 태도이다. 신앙은 아버지 하느님의 모든 선물을 기쁘게 받는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삶과 죽음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부르며 보여 주신 신뢰 안에 하나가 된다.

 

참되게 거행되는 전례는 시험과 고통의 시간에, 무엇보다 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 힘을 갖게 한다. 감사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신뢰를 통해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생기 충만한 참여로 이해할 때, 파스카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힘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죽는다는 것은 마지막 승리이고, 구원의 신비에 결정적으로 완전하게 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3. 사랑하는 신앙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일치의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 하느님 사랑의 계시이다.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모든 이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모든 이를 당신 안에 부르시고, 당신 사랑에 흡수하셨다.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는 성사이다. 그러기에 성찬의 참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통공이며, 크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대한 참여이다. 성찬의 참여를 비롯한 모든 성사의 거행은, 우리가 지녀야 할 흠없이 완전한 실존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자신의 사랑을 실현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뒤에, 우리는 성령의 힘을 받아 그리스도 자신의 사랑으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다. 이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에 젖어 들고, 하느님 사랑의 축제를 지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 지닌 ‘거룩함’이 구체적인 삶 안에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 성취된다.

 

전례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인류와 맺으신 구원의 계약을 성대하게 거행한다. 우리 개인의 구원과 그리스도와 맺은 계약에 대한 우리 각자의 충실은 절대적으로 모든 사람들에 대해 갖는 우리의 연대성에 달려 있다. 교회와 함께, 교회를 위해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주님의 구원의 신비에 참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든 사람의 구원과 연대성을 위하여 세워졌기 때문이다.

 

 

4. 하느님을 찬미하는 믿는 이의 삶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전생애를 통해서, 특별히 당신 죽음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가장 완전한 예배자로 나타난다. 그 죽음의 구원 신비는 성찬례의 거행 안에서 성사적으로 재현되며, 모든 성사 거행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자가 나타나셨다(요한 4,23). 이로써 구원의 시간이 도래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밀접히 하나가 됨으로써만 참으로 우리의 전실존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것이 아버지께 드리는 찬미가 되게 하신다.

 

전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드리는 참다운 찬미와 예배를 배우고, 그에 비추어 우리의 모든 일을 점검한다. 또 그러한 점검을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아버지께 흠숭을 드릴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수행할 때만 우리가 발하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예배의 신앙과 희망과 사랑이 될 수 있다. [경향잡지, 1994년 7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본지 주간 · 신부)]

 

 

[전례 상식] 그리스도인의 삶과 전례 (2)

 

 

전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가장 좋은 안내자이다. 전례에 의해, 즉 온전히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흠숭에 의해 양성된 사람은 윤리적 의무를 하나의 명령으로만 이해하는 사람과는 전적으로 다른 양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에게서 윤리는 그가 살아가는 세상의 구체적인 삶 안에 주님의 현존을 실현하는 것이다.

 

 

역사를 구세사가 되게 하는 전례

 

성체성사와 그 밖의 모든 성사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신비 안에 계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빵”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요한 6,33)이시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성체성사에서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처럼 역사의 변형을 위하여 일한다.

 

 

1. 감사의 기념으로 풍요로워지는 과거

 

성체성사뿐만 아니라 모든 성사를 포괄하는 전례는 한마디로 기념적인 거행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구세사의 사건을 ‘기념하여’ 거행하는 것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루가 22,19; 1고린 11,24-25).

 

이미 구약의 전례도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 업적에 대한 찬미였다. 그것은 계속되는 구원과 그에 대한 찬미로서 ‘감사의 기념’이었다. 우리가 전례 거행을 통하여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구세사의 한 사건을 기념할 때 과거가 우리를 위하여, 또 우리를 통하여 풍요로워진다. 그러기에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에 의해서 실행되는 기념적 전례의 거행은 역사의 창조자가 된다. 우리는 전례 안에서 깨달음과 감사의 정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 특별히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죽음과 성령의 파견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한다. 그러나 이 과거는 단순하게 기억되고 서술되는 것이 아니다. 부활하시어 영광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그 과거를 오늘 우리를 위한 생명의 샘이 되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받은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기념하는 공동체를 지켜 주시고, 아버지와 함께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자연히 과거의 구원 행위에 대한 감사 가득한 깨달음과 하느님의 충실에 대한 기쁜 응답으로 우리의 충실을 요구한다.

 

전례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의 기원,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는 역사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하루살이와 같은 한 순간의 희생물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 현재를 과거와 미래에 연결하는 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있는 그를 통해서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결실을 내놓는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하나의 책임 있는 거룩한 존재가 된다.

 

그리스도를 만남이 과거를 현재가 되게 한다. 왜냐하면 살아 있고 결실을 내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자신의 현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지금 여기에”(Hic et Nunc)

 

그리스도께서는 생애의 순간순간을 당신의 ‘때’(kairos)를 바라보며 사셨다. 이것이 당신의 길을 굳세게 가시게 하고, 동시에 당신의 발걸음마다 현재에 대한 평형과 변함없는 항구함을 지키게 했다. 전례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구원 행위 안에 우리를 끌어들이는 그리스도의 현존 체험이다.

 

전례 안에서 우리는 생명이신 분의 힘있는 현존을 거행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협력자로 삼으시기 위해 세상의 역사, 구원 역사의 주님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 우리의 전례 거행이 오시는 분의 이러한 현존을 믿는 신앙의 합당한 표현이라면, “지금 여기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간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전생애가 목표로 했고, 모든 것의 성취를 이룬 ‘은총의 때’(kairos)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영광의 위대한 시간에 재림(parusia : 결정적 완성)을 앞당기셨듯이, 전례에 의해 양성된 그리스도인은 구원 역사의 전체성으로부터 분출하는 힘에 의해 매순간을 결정적 순간으로 살아간다. 전례 거행 안에 각각 결정적 순간이 임재한다. 구원 역사의 주님은 우리를 위한 길이요 생명이며 빛과 진리의 충만이시다. 그 주님께서 전례 안에 현존하신다. 그러기에 “지금”은 하루살이의 순간이 아니라 순환하는 역사의 한 지점이다.

 

전례를 거행하는 그리스도인은 역사에 의해 조건 지어진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나간 역사를 하느님의 역사로 알아들어 ‘자유’의 역사로 바꾸어 가고, “지금 여기에”를 자신의 자유를 위한 선물과 수행해야 할 과제로 경험한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역사를 이끄신 주님의 현존과 오심을 전례 안에서 거행할 때, 자유롭게 하신 주님께 자신을 개방한다.

 

 

3. 완성을 향한 발걸음

 

전례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러 오시고 우리를 구원의 신비 안으로 이끌어 들이시는 주님께서는 이미 재림(완성)의 시기를 사신다.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 안에 이미 완성이 존재한다.

 

전례 안에 사는 사람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을 향하여 방향 지운다. 그러므로 아직은 부족한 층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한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끝을 향하여 걷는 사람은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시며 말씀하신 기쁨과 활기를 충만히 느낀다(요한 15,4-12 참조).

 

전례의 삶을 통해 양성된 그리스도인에게, 윤리 신학은 더 이상 특별히 제한적 규범이라는 의미에서의 법규적 교의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 덕행은 역사의 세 차원, 즉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하고, 구세사의 충만에 기초하고 있는 매우 단단한 성서적이고 종말론적인 덕행이다. 이러한 덕행은 영과 분별의 능력도 갖추게 한다.

 

 

4. 시대의 영과 징표의 분별

 

우리를 전례에 효과적으로 참여케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전례 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의 존재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이끄신다. 그래서 살아 있는 전례의 거행과 시대의 징표에 대한 주의는 같은 것임이 확인된다.

 

우리의 기억이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감사의 정으로 돌아서면 돌아설수록, 삶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마지막 완성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은총의 부르심에 응답의 자세를 갖추면 갖출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이웃과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하느님께 받은 능력과 선물을 올바로 사용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게 된다.

 

 

5. 평정, 기쁨과 평화의 확산

 

성령께서는 전례 안에서 우리를 진복(眞福)의 산으로 이끄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골고타를 오를 힘과 용기를 주신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을 찬미하게 하고, 이러한 전례적 찬미는 우리 안에 고요한 평정을 낳는다. 이 고요는 우리가 은총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은총은 우리를 폐쇄적이지 않게 하고, 우리의 삶을 전례적 찬미로 계속되게 한다.

 

전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건너감’을 실현하도록 가르치고, 그리스도 백성을 하느님 나라를 위해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도록 가르쳐 준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헌신은 결코 강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맘몬’으로부터의 자유이고 ‘카이사르의 것’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주님은 이미 우리의 길이요, 고향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와 계신다. 이것을 깨달음이 우리에게 전례를 축제로 거행하게 하며, 고요한 미소로 주님을 기다리게 한다. 그는 이제 역사적 구원의 사명에 온전히 투신할 수 있게 된다. 완전한 전례의 삶과 그에 대한 응답이 전적인 투신과 뿌리내림으로 나타난다. [경향잡지, 1994년 8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본지 주간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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