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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독서자의 직무와 영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2,740 추천수0

[전례 상식] 독서자의 직무와 영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말씀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는 것은 이미 밝혔던 사실이다. 공의회는 말씀의 전례가 성찬의 전례와 함께 ‘오직 하나인 흠숭 행위’를 이룬다고 천명하였다(전례 헌장 56항). 또한 공의회는 전례 개혁의 주요한 목표로 내세웠던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를 위하여, 공의회 정신의 실행 과정에서 평신도들에게도 직접 말씀의 봉사직을 맡기게 되었다. 1972년의 개혁 전까지 전례 중의 말씀의 봉독은 성직자들(혹은 소품의 성직자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는 라틴 교회의 봉사직에 대한 자의교서 “어떤 봉사직”(Ministeria quaedam : 1972년 8월 15일 발행)을 통해 신품의 단계를 개정하면서 당시까지 소품의 성직자들이 수행하던 직무를 평신도들도 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개정은 당시까지 ‘소품’이라 부르던 직분들을 ‘봉사직’으로 바꿔 부르게 했다.

 

이 글에서는 말씀의 봉독직을 수행하는 평신도들이 교회로부터 전례 거행의 주체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과 이러한 직무 수행의 기초가 되는 영성을 간략하게 제시할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가 말씀 봉독의 직무를 평신도들에게도 위임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풍요로움과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공동 사제직 수행을 강조한 공의회 정신을 반영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봉사직’(ministeria)은 더 이상 ‘소품’(ordines minores)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대한 교회의 봉사인 것이다.

 

과거에는 말씀의 봉사직이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만 유보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앞에서 지적하였다. 그러기에 ‘성무일도’와 같은 탁월한 전례 기도는 성직자나 수도자만이 할 수 있던 ‘공식 기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의 공식 기도라는 표현 대신 ‘교회의 기도’라고 함으로써 이 기도 말씀은 더 이상 서품이나 서원으로 이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사람들에게만 유보된 직무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성무일도’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더 깊이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므로 말씀의 봉독자는 전례 중에 하느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자신의 세례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 된다.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신자는 각자 이 사제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말씀 봉독자(독서자)의 직무

 

말씀 봉독자의 직무는,

 

- 회중의 한 사람으로서 전례 거행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봉독한다.

- 이 직무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교육적인 일들을 수행한다.

- 응송 등을 노래할 사람이 없을 때 그 직무를 대신한다.

 

1) 말씀의 봉독

 

말씀 봉독자의 첫째 직무는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회중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말씀의 봉독자로 드러내셨다. 루가 복음 4장 16절에서 21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시고 회중에게 말씀을 선포하시며 “이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말씀의 선포가 지니는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가장 좋은 예이다. 선포된 말씀은 이 말씀을 들은 회중 안에서 새롭게 실현된다. 이것이 말씀의 선포가 지닌 ‘신비’이다.

 

전례 거행은 단순히 옛날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옛날의 기억이 전례 거행을 통해 ‘지금 여기에’ 사건으로 실현되는 신비이다. 말씀의 봉독자는 이 신비를 이루시는 주님의 지상 도구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단순히 책을 읽는 식으로 말씀을 봉독해서는 안된다. 그는 자신의 입을 통한 전례적 말씀 ‘선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2) 교육의 직무

 

이 기능은 말씀 봉독의 의무를 직무로 수행하는 이들에게 관계된 것이다. 회중 가운데서 ‘갑자기’ 불려 나와 말씀을 봉독하게 되는 일반 평신도들은 수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무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더라도 이 교육의 직무에 대해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더욱 책임있게 말씀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와 어른들을 신앙으로 교육하고, 외적인 예식의 ‘껍질’을 벗기고 그 안으로 들어가 합당하게 성사를 받도록 그리스도인을 이끌며, 하느님의 말씀을 선교 차원에서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신자들도 전례 중에 언제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그들을 교육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선교와 교육적인 책임감과 함께 어린이와 어른의 교리 교육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3) 응송의 노래

 

응송 전담자(psalmista)나 합창대(cantor)가 없을 때 봉독자는 응송의 시편을 선포할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서도 단순히 기계적으로 읽는 것은 이 직무를 올바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응송은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 합당하게 응답한다는 내적인 자세를 가지고 응송을 노래하거나 염경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이는 신자들의 기도에서 지향을 말할 수도 있는데, 이때는 기도를 바치는 교회의 신원을 분명히 의식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참으로 ‘보편 기도’ 또는 ‘공동 기도’라고 말하는 ‘신자들의 기도’를 바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 봉독자의 영성

 

영성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파견하여 수행하도록 맡기신 구체적인 일에서 발생하고 제각기 그 일에 합당한 것이어야 하기에 일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영성의 역사를 보면 어떤 수행자의 삶이라는, 모두가 똑같은 삶의 조건을 모방하려는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음을 자주 확인하게 된다. 소명이 다르면 그 영성도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는 자신의 소명에 따른 영성을 가져야 한다. 가정의 소명은 사제나 수도자의 소명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기에 그 영성도 각기 다르다. 말씀 봉독자의 영성은 그 자신의 독특한 역할에서 나온다.

 

말씀의 봉독자는 말씀을 봉독할 뿐만 아니라 선포하고 전해 주는 예언자이다. 성서적인 개념의 ‘예언자’는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의 입술 또는 입을 빌려 드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봉독자는 ‘하느님의 입’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입술이 되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는 성서의 말씀에 자신을 내어 놓고 겸손과 순명하는 자세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초자연적인 명령을 듣고 전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성서의 말씀을 통해 다만 영원한 진리를 계시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을 나누어 주신다. 따라서 말씀의 봉독자는 가능한 대로 깊이 완전히 말씀에 젖어 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다만 학문적으로 그 말씀을 깨우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말씀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봉독자의 영성이다. 이러한 영성이 전례 안에서 육화할 때에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 말씀의 봉독자는 모든 이에게 말씀을 선포하여 하느님께서 목적하신 목표에 이르게 하고 교회의 구체적인 삶으로 말씀을 성장시키는 도구이다.

 

[경향잡지, 1994년 4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본지 주간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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