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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미사

제목 [미사] 말씀에서 힘을 얻는 전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1,649 추천수0

[전례 상식] 말씀에서 힘을 얻는 전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개혁된 전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례 거행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핵심적인 가치와 그 역할을 크게 강조했다는 점이다. 사실 전례 거행은 말씀과 모든 분리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전례는 말씀에서 비롯하고, 그 말씀에 연결되어 있는 신경 조직과 같은 것이다. 전례는 말씀을 실현하고 말씀을 해석하며 말씀을 살아 있고 역동적이게 한다. 말씀은 단순한 윤리 권고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나 그 밖의 말씀 봉독자는 그 중요성을 다시금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1981년에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낸 “미사 독서”(Ordo Lectionum Missae = OLM) “전례 거행의 핵심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만큼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전례 거행에 대해 이야기되는 것은 곧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이야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둘 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상기시키고, 둘은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영속시키기 때문이다.”(5항)라고 말하며, 전례 거행과 하느님 말씀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우리에게 인식시키고자 한다. 또 다른 자리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실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말씀 위에 기초하고 말씀에서 힘을 얻는 전례 거행은 말씀 자체의 효과를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사건이 된다 …… 그래서 교회는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를 회상하고 있는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3항).

 

여기에서 전례와 말씀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례는 말씀에서 힘을 얻지만 또 말씀을 효과 있게 한다.

 

 

전례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

 

전례 거행 전체가 말씀으로 수행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전례 거행 전체를 넓은 의미의 ‘말씀의 전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독서’라는 이름으로 성서의 말씀을 봉독하고, 그때마다 우리는 “이는 주의 말씀입니다.” 하고 선포함으로써 ‘말씀의 전례’는 미사 안에서 성찬의 전례와 짝을 이루는 말씀의 식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의 의미를 지닌 ‘말씀’이 전례 안에서 지니고 있는 참뜻은 무엇인지, 다음의 세 관계를 통해서 살펴보자.

 

 

1. 말씀과 사건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는 다르게, 발설되는 것을 실제로 이룩하는 말씀이다. 말씀에서 하느님의 속생각과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이 밝혀진다. 뿐만 아니라 드러난 모든 것은 그 자리에서 실현된다. 말씀은 단순한 언어적인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을 드러내고 실현하는 ‘생산적인 사건’이다. 하느님께서는 행위로써 드러내시고, 드러내시며 일하신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사건, 곧 행동하는 말씀을 뜻하는 것이 된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저자는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4,12). 한마디로 살아 있는 말씀이고 행동하는 말씀, 행동으로 계시하고, 계시하며 실행하는 말씀이다.

 

 

2. 말씀과 현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 현존하시게 하는 힘이다. 행하는 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행위 안에 현존하신다.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말씀이 행하는 주체가 되어 현존하신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은 말씀하시는 하느님이 된다.

 

성서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말씀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출애굽의 사건은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실 때에도 그들 안에 현존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은 울리는 데 머물지 않고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전능한 현존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이 점은 말씀의 육화에서 잘 드러난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이 되어 볼 수 있게 되었고, 말씀은 사람들 가운데에 사시기 위해 오셨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1요한 1,1).

 

성서의 저자들은 말씀이 눈으로 볼 수 있게 현존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행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힘과 생명을 얻는 말씀에 대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전례 헌장’은 이렇게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 안에도 현존하시니,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말씀하시는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7항).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며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말씀은 현존으로 힘을 얻는다. 말씀의 봉독자가 전례 안에서 성서를 읽고 “이는 주의 말씀입니다.” 하면, 그것은 곧 지금 봉독한 말씀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며 친히 말씀하셨다는 뜻이 된다.

 

 

3. 말씀과 성취(완성)

 

행위의 말씀, 하느님께서 주제가 되시어 행동하는 계시인 말씀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말씀이다. 말씀은 인간들에게 선포되는 순간부터 하느님께서 이룩하시는 행위와 인간의 응답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성숙시킨다. 말씀의 작용은 한마디로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이루는 행위이다. 구세사는 곧 말씀이 작용하는 역사라 할 수 있다. 이 역사는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을 보았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구세사를 완성으로 이끄셨다. 이 죽음과 부활은 전례 거행을 통해서 선포되고 재현된다. 오늘날 이 선포와 재현은 또다시 말씀으로 성취된다. 우리는 ‘말씀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모든 전례 거행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독서’라는 이름의 말씀의 선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전례 동작을 동반하고 그 행위들이 효과를 발하게 하는 모든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서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도 그 말씀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건네 오시는 ‘말씀’을 느끼고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때 말씀을 ‘말씀 안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에서 전례가 생겨나고 성사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기에 우리는 말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경향잡지, 1994년 3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본지 주간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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