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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미사

제목 [전례] 침묵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1,928 추천수0

[전례 상식] 침묵

 

 

“거룩한 표징”이라는 저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로마노 과르디니는 또 다른 저서 “미사”에서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전례 생활을 시작하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침묵을 배우는 데서 시작한다고 답변할 것이다. 침묵을 배우지 않고는 모든 것은 진실성을 결여한 채 무의미해진다……. 이 침묵은 모든 거룩한 행위의 첫째 조건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의 전례적 체험은 과르디니의 이 주장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거행에서 성서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전례 헌장, 24항)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재확인하면서(전례 헌장, 7항), 전례 행위로써의 침묵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전례 안에서 재발견하는 침묵

 

전례 현장은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면서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능동적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회중의 환호, 응답, 시편 교송, 대경, 성가와 함께 행동과 동작과 몸가짐 등을 올바르게 하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합당한 때에는 거룩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전례 현장, 30항).

 

사실, 침묵에 대한 언급은 초안에는 들어 있지 않은 것이었지만 여러 학자들이 그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여 공의회에 참석했던 교부들의 요구로 추가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묵상의 시간들은 전례에 속하지 못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침묵은 신자들이 올바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전례 거행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은 기도의 절정이며, 그 성격상 참여의 정도를 들어 높인다.

 

전례 헌장으로 확립된 침묵의 중요성은 그 뒤에 나오는 여러 문서들을 통하여 거듭거듭 확인되었다.

 

 

전례적 침묵의 의미와 유형

 

우리는 여기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나온 여러 문헌들에 나타난 전례에서의 침묵의 의미와 기능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을 고려하여 일일이 구체적인 문헌들의 이름을 열거하지는 않을 것이다.

 

침묵은 전례 거행의 한 부분이다. 전례적 침묵의 일반적 동기는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침묵은 전례 거행에서 신자들을 방관자나 구경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조건이다. 침묵은 신자들에게 거행되는 신비를 깊이 이해하고 되새기게 할 뿐만 아니라 생활 안에서 실천을 다짐할 수 있게 한다. 특별히 침묵은 말씀을 듣고 묵상과 기도로 응답하도록 도와준다. 침묵은 “마음속에 성령의 음성이 온전히 울려나게 하고 개인적인 기도를 하느님의 말씀과 매우 밀접하게 일치시켜 준다”(“성무일도” 총지침, 202항). 또한 어린이들과 같이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너무 외적인 활동적 행위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 한마디로 침묵은 영성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례적 침묵은 전례 거행의 각 시기에 따라 그 성격이 다르다. 예를 들면, “참회 때와 ‘기도합시다’ 다음의 침묵은 자기 반성의 침묵이고, 독서와 강론 끝의 침묵은 들은 것을 잠깐 묵상하는 침묵이고, 영성체 다음의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 드리는 침묵이다”(“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23항).

 

여러 문헌들에 나타나는 침묵들을 유형별로 구분한다면, 개인의 기도를 위한 준비의 침묵과 주례의 기도 동안에 하는 개인적 적용의 침묵, 말씀의 선포와 강론 후에 갖는 묵상의 침묵 그리고 성체를 모시는 동안과 성체 조배를 하며 갖는 경배의 침묵 등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준비의 침묵 - 이 침묵은 모든 회중이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자기 마음속으로 개인적인 기도를 드릴 때 갖는 침묵이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짧은 반성을 하는 것이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갖는 참회식의 침묵과 본기도, 영성체 후 기도 전 ‘기도합시다’ 다음에 갖는 침묵은 그 좋은 예이다. 또 미사 때 신자들의 기도와 성무일도의 청원 기도 때에도 동방의 예를 따라 하나의 지향 끝에 후렴으로 응답하는 대신에 침묵을 지키는 방법을 병행할 수도 있다(“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47; “성무일도” 총지침, 193항). 이러한 예는 성금요일의 장엄 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개인적 적용의 침묵 - 이 침묵은 주례가 기도하는 동안에 자기와 관련된 내용에서 주례인 사제와 영적으로 일치하여 그 기도의 내용을 잘 듣고 내면화하는 침묵이다. 가장 좋은 예로 우리는 ‘성찬의 기도’를 들 수 있다.

 

3) 묵상의 침묵 - 이것은 하느님 말씀의 선포에 응답하는 침묵이다. 이 침묵은 하느님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고, 그 결과로 그 말씀에 마음으로 동의하도록 도와준다.

 

4) 경배의 침묵 - 하느님의 말씀에서 솟아나와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임을 더 잘 깨닫게 하는 이 기도하는 침묵은 성찬의 신비 안에서 더 잘 표현된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모실 준비를 하거나 모신 다음에 마음으로 주님을 찬미하거나 주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이러한 침묵을 한다. 미사 밖의 성체 조배를 통해서도 신자들은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앞에서 기도함으로써 미사 중의 영성체 때에 이루는 그분과의 밀접한 일치를 연장한다.

 

위의 네 경우에 든 예들 이외에도 여러 성사의 거행에 요구되고 실행되는 많은 예의 침묵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침묵의 중요성과 말씀의 중요성

 

전례에 있어서의 침묵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침묵은 더 이상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이다. 신자들은 이 침묵을 통해서 거행되는 전례에 흡수된다. 그럴 때 비로소 신자들은 전례의 영성을 배우게 되고 내면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침묵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서와 친숙해져야 한다. 침묵은 성서와의 친숙에서 오는 열매이다. 침묵의 중요성은 말씀의 중요성과 관련된다. 하느님께서는 침묵 중에 듣게 하신다(1열왕 19,11-13 참조). 침묵은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를 신뢰 있게 하고, 계시하시는 주님께 마땅한 공경을 드리게 한다.

 

전례 안에서 침묵은 성숙한 전례를 거행하는 징표이다. 전례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이 침묵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며 이 침묵을 통해서 은총의 순간들을 활기 있게 한다. 피조물이 침묵할 때에 성령은 말씀하신다.

 

[경향잡지, 1994년 1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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