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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12.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04 조회수1,282 추천수6 반대(0) 신고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2021년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 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2001년 9월 11.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

두 대의 비행기가 뉴욕 세계 무역 센터

쌍둥이 빌딩에 돌진해서 거의 3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폭력은 종교에서

나온다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상 암으로 죽은 이들보다

종교 때문에 죽은 이들이 더 많다.”

그러나 어떤 종교도 살인,

폭력이 정당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원천과 교리를

거스르는 짓이었습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를 신의 뜻인 것처럼

꾸미는 것입니다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언제나

사랑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에 많은 폭력적인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신약성경과

분리해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완성된 구원 역사의

틀 안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때문에 폭력이 난무하는 것일까요?

그보다는 세속적인 생각이

폭력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참 종교인은 사랑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의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하신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일과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쳐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파견하는 제자들에게

기적의 권능을 주십니다.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수확은 하느님 일의 완성을 상징하는

구약 사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완성하는데

협조할 일꾼이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참 종교인이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살인과 폭력으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거짓 종교인이 아닌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실천하는 참 종교인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런 참 종교인을 통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더 큰 은총과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완성할 일꾼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야 오늘 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실현될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이사 30,19)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누구에게든 가장 좋은 결심은

완벽한 결심이 아니라 용기 내어

한 번 더 해내는 결심입니다(박성혁)

별을 봐야 합니다.

지금 스스로 최악의 어려움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점을 보게 됩니다.

1) 객관적으로 보면

본인들이 인지하는 만큼

최악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2)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상황을 악화하는 일만 반복하여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보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단정하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기가 더 힘듭니다.

모든 방법을 다 해봐도 안 되는데

어떻게 최악의 상황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로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까요?

우선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마음부터

없애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방법을 동원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안 될 텐데.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라는 생각을 하고 행동하면

결과는 뻔해집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나만 힘든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1cm 더 나아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별을 보고 있습니까?

시궁창을 보고 있습니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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